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놀이, 창의성과 감성의 원천으로 떠올라
[Let's Play 展]
발명왕 에디슨 "난 하루도 일 안 했다, 그것은 재미있는 놀이였을 뿐"
인간의 본질은 '호모루덴스'… '놀이를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어린이 놀이방식 주제로 한 전시회, 여름방학 때 편안히 즐기기 좋아요
'공부하다'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아마 '놀다'를 떠올릴 거예요. 무언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유로 공부는 중요한 것이고, 놀이는 그 반대되는 개념으로 하찮게 인식돼 왔어요. 그러니까 놀이는 공부나 노동 외 행해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여분의 행위를 의미했답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잘 살아보자'며 밤낮 없이 성실하게 일하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게는 노는 것은 곧 게으름이나 무책임을 뜻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어디까지 놀이이고 어디서부터 공부나 일인지 정확하게 구별하기란 어렵습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나는 평생 단 하루도 일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재미있는 놀이였다"고 말했어요. 놀이하듯 즐기면서 연구하는 태도가 그를 발명왕으로 만든 것입니다. 오늘날 놀이는 지성과 감성의 균형을 위한 교육 방식으로 적극 활용되는가 하면, 활력 있는 사회생활을 위해서도 강조되고 있답니다. 무엇보다 놀이는 각종 창의적인 활동 및 문화의 에너지원이라는 차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어요. 서울 여의도 63스카이아트 미술관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아 'Let's Play'라는 전시를 선보입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따르는 긴장감이나 학습에 대한 부담을 덜고, 편안하게 즐겨보자는 전시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은 본래 놀이를 좋아한다는 '호모루덴스(home ludens)' 개념을 내세우며, 놀이를 문화예술과 직접적으로 관련 지은 사람은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입니다. 하위징아는 놀이의 '목적 없음'을 이야기하면서, 놀이는 저절로 시작했다가 저절로 끝나며, 현실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무관심한 특성을 가진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런 특성 때문에 오히려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죠.
- ▲ 작품1. 김계현, ‘앵무새 케이지’, 2017, ABS 플라스틱.
이번 전시에서는 어린이의 놀이를 소재·주제로 한 창작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작품 1의 앵무새를 만든 김계현은 플라스틱 블록을 다양한 형태로 조립해, 미술작품을 커다란 장난감으로 만날 수 있게 해줘요. 미술을 즐거운 놀이 환경으로 연출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보입니다.
- ▲ 작품2. 김용관, ‘PUTTO’, 2016, 레고를 비롯한 여러 블록 장난감.
작품 2의 김용관은 레고(LEGO) 블록과 자신이 만든 블록 등 다양한 블록을 결합한 조형물을 보여줍니다. LEGO는 '잘 논다(play well)'는 뜻의 덴마크어이고, 라틴어로는 '합쳐 만들다, 함께 짓다(put together)'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김용관은 자신의 조형물을 여럿이 같이 놀면서 함께 만든다는 의미로 'PUTTO'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 ▲ 작품3. 서효정, ‘새장 속 파랑새’, 2008, 인터렉티브 비디오 설치.
미술과 놀이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참여자와 관람자가 함께 반응하고 공감할 때 비로소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에요. 서효정의 작품 3은 사람의 그림자에 미디어가 반응하도록 설치되어 있습니다. 내가 손짓하면 화면 속의 파랑새가 파르르 날아가기도 하고, 내가 움직이면 그걸 보고 화면 속에 숨어있던 요정들이 나타나기도 해요. 이 작품에서는 관람자의 참여가 작품의 완성에 크게 관여하게 됩니다. 손짓으로 화면이 바뀌는 과정, 즉 사람의 자극과 작품의 반응이 이 작품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지요.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는 미술작품이 미술관에 모셔져 일상생활로부터 동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경험'에서도 멀어지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듀이가 언급한 경험이란 매일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것, 장기를 두는 것, 글을 쓰는 것처럼 하나의 시작과 하나의 마무리가 있는 상황을 일컫는 것이에요.
- ▲ 작품4. 황혜선, ‘풍선들’, 2012, 스테인리스스틸, LED 조명.
창의적인 놀이는 창의적인 미술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과정을 품은 경험을 우리에게 남겨주게 되며, 그런 놀이 경험으로 가득 찬 삶은 결코 게으르거나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알차고 풍부하다고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