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사랑·정열 상징한 '色의 王'… 가장 눈길 끄는 색
[미술 속 빨강 이야기]
긍정·부정 의미 모두 가진 '빨강'… 채도 높아 눈길 끄는 효과 뛰어나
동양에선 지위·권력을 나타냈으나 한국 현대사에선 금기의 색 취급도
뉴먼, 빨강으로 숭고한 느낌 표현… 색의 마술사 마티스도 즐겨 썼어요
- ▲ 작품1. 이한철, 유숙 추정, ‘이하응 초상 금관조복본’, 1869.
빨강은 채도가 매우 높은 순색으로 다른 색보다 눈길을 끄는 효과가 뛰어나요. 빨강의 상징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두 가지가 있어요. 생명, 사랑, 정열, 쾌활함, 에너지, 태양, 불 등은 긍정적 측면, 죽음, 위험, 공포, 폭력, 피 등은 부정적 측면입니다. 색의 왕으로도 불리는 빨강은 동양권에서는 힘과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어요. 보물 1499-2호로 지정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초상화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죠.
흥선대원군은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아버지로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오른 고종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렸던 당대 최고 권력자였어요. 금관조복을 입은 작품1은 대원군의 높은 지위와 막강한 힘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어요. 금관조복은 조선의 문무백관이 나라의 경축일이나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내는 중요한 날에 입었던 예복을 말해요. 조복을 입을 때 금관을 머리에 썼다고 해서 금관조복이라고 부릅니다. 조선시대 금관조복 초상화를 대표하는 이 그림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대원군이 입은 화려한 '적초의'예요. 적초의는 당시 벼슬자리에 오른 관료들이 조복의 겉옷으로 입었던 빨간 옷이죠. 그림 속 화려한 '적초의'는 빨강이 고귀한 신분이나 권력을 상징하는 색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 ▲ 작품2. 바넷 뉴먼, ‘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 1950~1951.
미국의 화가 바넷 뉴먼은 빨강을 초자연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색으로 사용했어요. 뉴먼의 대표작인 작품2에는 오직 빨간색 한 가지만 칠해졌어요. 그러나 그림을 자세히 살피면 캔버스 위아래를 가로지르는 낮은 채도로 색칠된 길고 가는 수직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뉴먼은 이 수직선을 '지퍼'라고 불렀어요. 수직선은 두 가지 역할을 해요. 빨간색만 칠해진 그림에 색의 변화를 주고 빨강의 채도를 높여 더욱 강렬하게 보이도록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뉴먼은 왜 강렬한 빨간색만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을까요? 관객이 커다란 빨간색 그림 앞에서 두려운 감정과 벅찬 감동을 동시에 느끼기를 바랐어요. 바로 숭고의 감정이죠. 예를 들어 나이아가라폭포처럼 거대하고 웅장한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은 자신이 참으로 작은 존재라고 느끼게 되죠. 그럴 때 숭고의 감정을 경험합니다. 뉴먼은 빨간색이 숭고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힘을 가졌다고 믿었어요.
- ▲ 작품3. 이세현, ‘붉은 산수 015APR04’, 2015.
한국 작가 이세현은 한국인의 정서와 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는 빨간색에 대한 거부감을 작품3에 담았어요. '붉은 산수'라는 제목의 그림을 감상하면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이 듭니다. 현실 세계가 아닌 이상향을 표현한 우리의 옛 그림인 전통산수화 기법과 자연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린 서양풍경화 기법을 한 화폭에 결합했기 때문입니다.
왜 강렬한 빨간색 한 가지만 사용해 산수화 같은 풍경화를 그렸을까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리한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을 빨간색으로 나타냈어요. 아울러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6·25 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서 빨간색이 금기의 색이 된 배경도 일깨워줍니다. 우리나라에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빨갱이'로 부르는 이들이 간혹 있어요. 빨갱이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부르는 말인데요, 빨간색에 대한 거부감도 담겨 있지요.
붉은 산수화에는 서로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치·지역·세대 갈등을 일으키기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답니다.
- ▲ 작품4. 앙리 마티스, ‘붉은 화실’, 1911.
정육점에서는 고기가 더 붉게 보이도록 빨간색 조명을 쓴다고 해요. 빨간 조명 아래서는 고기가 더 신선해 보이는 효과가 나타나거든요.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빨강은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