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 주의 책] 책 나와라 뚝딱… 글 써주는 기계가 있다면?
입력 : 2017.07.14 03:12
'자동 작문 기계'
- ▲ /녹색지팡이
학교에 다니다 보면 한 번쯤은 드는 생각이죠. 사람에 따라서는 매일같이 드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네요.
가까운 미래에 가능해질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이미 바둑을 지구에서 제일 잘 두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 '알파고'이니까요. 알파고는 작년에는 한국 대표 바둑기사 이세돌을 꺾고 지난 5월에는 중국 대표 커제를 상대로 승리했어요. 사람보다 글을 잘 쓰고, 문제도 잘 푸는 기계도 나오지 말란 법 없어요. 그날이 오면 기계가 일기도 써 주고, 숙제도 해줄 테니 즐겁겠다고요?
이미 이런 미래를 상상했던 작가가 있어요. 공상과학소설(SF) 작가가 아니군요. 주인공은 영국 작가 로알드 달(1916~1990)이네요. 영화로도 인기를 끌었던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를 썼던 바로 그 작가. 그는 1980년대 초 펴낸 단편소설 '자동 작문 기계(Great Automatic Grammatizator)'에서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그렸어요. 소설에서 기계를 개발한 아돌프 나이프는 이렇게 말해요. "이 기계만 있으면 어떤 종류의 글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원하는 단추만 누르면 되죠." 연애소설, 풍자소설, 역사소설 가릴 것 없이 그럴싸한 글을 써내요.
기계를 개발한 나이프는 사실 작가 지망생이었어요. 전자계산기를 뚝딱 만들어내는 뛰어난 기술자였지만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었지요. 결과는 실망스러웠어요. 10년 동안 단편소설 566편을 썼는데 여러 출판사가 모두 퇴짜를 놨거든요. 그래서 나이프는 장기를 살려서 대신 소설을 써줄 기계를 개발하기로 해요.
기계는 처음에는 의미 없는 문자를 쏟아내기도 하고, 띄어쓰기가 안 된 글을 뱉어내기도 했지만 차차 문제점이 고쳐지죠. 마침내 파이프오르간을 닮은 기계를 완성해요. 주제를 정하고, 등장인물 숫자를 정하는 등 조작을 하면 그럴싸한 글이 나와요. 나이프는 작가로 데뷔하고 이름을 날리지요.
다른 유명작가들은 이 사실을 알고 어떻게 했을까요? "기계로 글을 쓰는 건 반칙"이라고 외쳤을까요? 천만에요. 기계가 쓴 글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기로 해요. 기계가 자신보다 글을 잘 쓴다는 걸 인정해버린 것이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 50명 중 70% 이상이 자기 이름을 빌려준답니다. 돈은 나이프와 나눠 가지고요.
로알드 달이 이 이야기를 쓸 당시만 해도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은 공상에 불과했어요. 지금은 인공지능이 사람 일자리를 빼앗을까 봐 고민하는 시대죠. 자동 작문 기계의 영문 머리글자를 모으면 개그(Gag·농담)예요. 로알드 달이 1980년대 건넨 농담이 지금도 재밌기만 한지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