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영화 속 '수퍼 돼지',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입력 : 2017.07.12 03:10

[유전자 변형 돼지]

일반 돼지보다 큰 이중근육돼지,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친환경 돼지… 유전자 변형으로 이미 개발 성공

돼지 장기의 인체 이식도 연구 중
인간 위해 생명체 조작하는 기술 신중하고 현명하게 사용해야 해요

영화 속에 '특별한 돼지'가 등장했어요. 하마만큼 덩치가 크지만, 적게 먹고 배설물도 조금만 배출해요. 무엇보다 '맛이 끝내준다'고 하니 여러모로 쓸모있겠죠? 이 돼지 중 하나가 바로 '옥자'랍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옥자는 한마디로 '수퍼 돼지'예요. 생명공학기업이 유전자를 변형시켜 필요한 부분만 강화시켰거든요. 그런데 이런 돼지를 만드는 게 현실에서도 가능할까요? 옥자만큼 완벽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눈에 띄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근육이 우락부락 '이중근육 돼지'

옥자처럼 살집이 많은 돼지를 만들 방법은 우리나라와 중국 과학자들이 찾아냈어요. 근육이 크는 걸 방해하는 유전자를 제거해 근육이 많아지도록 만든 수퍼 돼지예요. 이 돼지는 똑같이 사료를 먹어도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근육을 붙일 수 있어요. 근육 성장을 막는 유전자는 '마이오스타틴(MSTN·myostatin gene)'이에요. 이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근육세포가 많이 형성되는데요. 운동 능력이 좋은 경주마나 근육이 많은 사람은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어요.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과 옌볜대 공동 연구팀은 돼지에서 마이오스타틴 유전자를 제거해 일반 돼지보다 몸집이 큰 '이중근육 돼지'를 만든 거예요.

돼지 유전자 변형 기술, 어디까지 왔나
/그래픽=안병현
연구팀이 돼지의 마이오스타틴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 쓴 기술은 '유전자 가위'예요. 유전자 가위는 생명을 이루는 전체 유전자에서 특정 부분만 잘라주는 최신 유전자 변형 기술인데요. 우리가 원하는 부분만 싹둑 잘라낼 수 있어요. 즉, 인위적으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나타나도록 만드는 거예요.

과거에도 동물에게 어떤 특징이 나타나도록 만드는 방법은 있었어요. 우리가 원하는 특징을 가진 암컷과 수컷을 짝짓기시켜서 새끼를 얻는 거예요. 한 번에 원하는 특징을 가지고 태어나기는 어렵지만, 같은 특징을 가진 암컷과 수컷만 대를 이어 짝짓기시키다 보면 특별한 동물을 얻을 수 있어요. 이런 과정을 '육종'이라고 하는데요. 19세기 벨기에에서는 덩치가 크고 근육도 우락부락한 '벨지언 블루'를 선보이기도 했어요.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돼지

병에 안 걸리는 돼지도 있어요. 매년 수많은 돼지가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으로 목숨을 잃는데요. 이 병에 걸리지 않는 수퍼 돼지를 영국 에딘버러대에서 만들었어요. 지난 2월 대중에게 선보인 질병 저항 돼지는 유전자 가위로 특정 유전자의 일부를 잘라냈어요. 이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에 PRRS 바이러스가 달라붙는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에요. 그 덕분에 이 돼지는 PRRS에 걸리지 않죠.

돼지의 소화 능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변형시켜 사료를 적게 먹으면서 배설물도 조금만 배출하는 '친환경 돼지'도 만들 수 있어요. 2006년 캐나다 구엘프대에서 만든 '엔바이로피그(Enviropig)'가 주인공이에요.

이 돼지는 다른 돼지와 달리 곡물의 인(P) 성분을 잘 소화시킬 수 있어요. 쥐의 유전자를 돼지의 수정란에 끼워넣은 덕분에 침샘에서 인 분해 효소를 만들 수 있게 됐어요. 돼지 배설물 속 인은 강물로 흘러가면 물을 오염시키고 물고기를 해칠 수 있거든요. 환경보호 효과를 본 셈이죠. 엔바이로피그는 영화 속 옥자처럼 조금만 먹고 배설물도 적게 만드는 돼지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예요.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진 돼지 중에는 일부러 신체 기능을 약하게 만든 것들도 있어요. 대표적인 게 '치매 돼지'인데요.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살펴보는 데 쓰일 돼지예요. 돼지는 쥐보다 사람과 가깝기 때문에 새로 개발한 약의 효능을 실험하기 유용하다고 해요. 제주대 줄기세포연구센터도 최근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가진 '제누피그'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이 돼지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알려진 단백질을 많이 만들어요. 실제로 사료 먹는 것을 잊거나 자동 급수기 사용법을 잊는 등 치매 증상을 보였어요.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려는 분야에서도 유전자를 변형시킨 돼지를 써요. 이때 중요한 건 면역 거부반응을 없애는 것이에요. 종(種)이 다른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면 면역세포들이 공격을 시작해요. 몸에 해로운 게 들어왔다고 인식하기 때문인데요. 이런 면역 거부반응이 없어야 장기를 이식할 수 있어요. 과학자들은 돼지 장기에 있는 물질 중에서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위험 신호라고 판단하는 걸 찾아냈어요. 그런 다음 이 물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제거한 돼지를 만들고 있어요. 이렇게 면역 거부반응을 없애면 돼지의 장기를 우리 몸에 이식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몰라요.

이렇게 현실에서도 유전자 변형 기술은 빠르게 발달하고 있어요. 물론 생명을 인간의 뜻대로 바꾼다는 점에서 유전자 변형 기술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있죠. 그렇다고 유전자 변형 기술 자체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더 튼튼하고 이로운 동식물을 생산할 수 있고, 질병 치료에도 기여하니까요. 앞으로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현명할지 함께 생각하면 좋겠어요.


박태진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