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장소]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소 앞에서 뛰어야 용기 인정 받아요

입력 : 2017.07.11 03:13

팜플로나

500㎏에 육박하는 거대한 황소 여러 마리가 사람들과 뒤섞여 골목길을 뛰어가는 장면, TV나 인터넷에서 한 번쯤은 봤을 거예요. 사람들은 소뿔에 받히지 않기 위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뛰고, 성난 황소들이 그 뒤를 바짝 쫓아요. 위험하기 그지없는 이 장면은 스페인 팜플로나의 명물 소몰이 행사예요.

팜플로나는 스페인 북부 나바라 주의 주도(州都)예요. 기원전 1세기 로마군이 건설했죠. 주민 대부분이 바스크족이라 스페인어와 바스크어를 공용해요. 실제 10~16세기 독립 나바라 왕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리다가 1513년 스페인 왕국에 병합됐어요. 팜플로나를 세계에 알린 것은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예요. 1926년 출간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가 소개되면서 이 도시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했습니다.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7일 열린 산 페르민 축제 중 소몰이 행사에 나선 참가자들이 달려오는 소의 뿔을 피해 죽기 살기로 뛰고 있어요.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7일 열린 산 페르민 축제 중 소몰이 행사에 나선 참가자들이 달려오는 소의 뿔을 피해 죽기 살기로 뛰고 있어요. /EPA 연합뉴스
산 페르민 축제가 열리는 이맘때면 팜플로나에서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나요. 인구 20만 고즈넉한 중소도시 팜플로나에 전 세계에서 100만명 이상 관광객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뤄요. 공식 축제 기간인 7월 6일부터 14일까지는 숙박업소가 모자라, 잔디 광장은 노숙하는 사람들로 가득해요. 이 축제엔 팜플로나의 수호성인 성(聖) 페르민을 기리는 종교적 의미와, 투우 경기를 중심으로 하는 상업적 의미가 뒤섞여 있습니다. 축제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13~14세기로 추정돼요.

축제의 절정이자 가장 유명한 행사는 '엔시에로(encierro)'라 불리는 소몰이에요. 저녁에 예정된 투우 경기를 위해 사육장에 있는 소들을 투우 경기장까지 몰고가는 데서 유래했어요. 축제 기간 아침 여덟 시, 산 페르민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지정된 사육장에서 소들을 풀어줘요. 투우 경기에 내보내기 위해 전혀 길들이지 않은 난폭한 소들이죠. 12~14마리 소는 갑자기 좁은 길로 풀려 나와 매우 흥분한 상태로 거리를 돌진합니다. 이를 기다리고 있던 약 1000여 명 참가자는 달려오는 소를 피해 투우 경기장까지 굽이굽이 꺾인 골목길을 냅다 뛰는 거예요. 참가자들은 소의 바로 앞에서 뛸수록 용감함을 인정받아요. 사육장에서 투우 경기장까지는 825m 정도밖에 되지 않아 실제 소몰이 시간은 3분도 채 안 걸리죠. 그러나 씩씩대는 소의 뿔 앞에서 뛰는 사람에겐 세상에서 가장 긴 3분일 겁니다.

위험하지 않냐고요? 당연히 매우 위험합니다. 지금까지 15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매년 수십 명이 다쳐요. 그래도 헤밍웨이처럼 산 페르민 축제에 매료된 사람들이 매년 100만명씩 팜플로나를 찾는 이상 축제는 계속될 전망이에요.


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