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로시니, 플루트로 빗방울 소리 표현했어요

입력 : 2017.07.08 03:04

[비와 클래식]

비발디 협주곡 '사계' 중 '여름', 천둥·번개·비바람을 음악으로 표현
쇼팽은 일정한 음으로 빗방울 연주… 드뷔시, 어린 날 빗속의 추억 담아
비의 노래가 상상력 자극했어요

우리나라의 7월 초는 일년 중 제일 비가 많은 시기죠. 우산을 쓰고 나가도 바람에 흔들리며 다가와 얼굴을 간질이는 빗방울들은 마치 장난꾸러기 같아요.

작곡가 중에도 비를 좋아했던 인물이 참 많았죠. 그들은 인간의 마음이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심을 가졌어요. 비가 내리는 모습이나 비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변하는 하늘의 모습, 비가 내리고 난 뒤의 풍경 등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표현한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천둥 번개가 영감을 준 멜로디

먼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발디 작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여름'입니다. 유명한 네 곡의 협주곡 '사계' 는 제목 그대로 네 계절 자연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들어 있는데요. 작품마다 악보와 함께 시가 쓰여 있어요. 그중 '여름'의 1악장은 타는 듯한 열기에 사람과 동물 모두가 지친 가운데 갑작스레 몰아친 소나기를 맞는 것으로 끝이 나죠. 느린 2악장은 파리와 모기가 날아다니는 가운데 간간이 천둥이 치는 모습이고, 3악장에서 본격적인 폭풍우가 다가옵니다. 프레스토(매우 빠르게)라는 속도 지시어가 붙어 있는 3악장은 촘촘히 붙어 있는 음표들이 쉴 새 없이 내리는 빗줄기와 휘몰아치는 강한 바람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죠. 거친 악센트(악보에 강세를 지시하는 것)들은 번개 치는 모습을, 곡의 마지막에 더욱 격렬해지는 음표들은 비가 우박으로 바뀌어 내리는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3악장 악보에 있는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을 두 쪽으로 가르는 번개. 그 뒤에 우박이 쏟아진다. 잘 익어가던 곡식이 회초리를 맞은 듯 쓰러진다' 음악을 들으면서 시를 읽으면 그 묘사가 더 실감 나요.

횡단보도 위를 건너는 알록달록한 우산이 마치 악보와 음표 같지 않나요? 쇼팽과 비발디 등 천재 음악가들은 비 내리는 소리와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후대에 길이 남을 명곡을 여러 개 작곡했어요.
횡단보도 위를 건너는 알록달록한 우산이 마치 악보와 음표 같지 않나요? 쇼팽과 비발디 등 천재 음악가들은 비 내리는 소리와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후대에 길이 남을 명곡을 여러 개 작곡했어요. /장련성 객원기자

오페라 서곡 중에도 비바람을 묘사한 곡이 있어요. 바로 조아치노 로시니가 작곡한 '빌헬름 텔' 서곡입니다. 빌헬름 텔은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스위스의 전설적인 영웅이죠.

오스트리아의 압제로부터 독립하는 데 공을 세운 명궁 빌헬름 텔의 이야기는 희가극으로 성공을 거둔 로시니의 작품 중에서 드물게 발표된 심각한 오페라인데요. 그래서인지 오페라 자체는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앞에 연주되는 서곡은 인기가 많아요.

서곡은 모두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중 두 번째 부분이 '폭풍우'입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스위스의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갑자기 들려오는 천둥 번개와 강한 비바람은 오스트리아군의 갑작스러운 침공을 비유하고 있기도 하죠.

저음 악기들과 팀파니가 으르릉거리는 천둥을 묘사하고 플루트 음표들은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을, 트롬본을 포함한 금관악기들은 모든 것을 무너뜨릴 듯한 폭풍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다행히 혼란스러움은 곧 지나가고 다시 평화롭게 갠 하늘에서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때 멀리서 들려오는 유명한 스위스 병사의 행진곡이 시작되죠. 서곡은 명랑하고 흥겨운 행진곡으로 마무리됩니다.

◇빗속에서 피어난 상상력

피아노곡으로는 쇼팽이 만든 24개의 전주곡 중 15번째 곡 '빗방울'이 잘 알려졌어요. 앞의 두 곡이 무서운 폭풍과 비바람이었다면 이 곡은 조용히 내리는 비와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수 소리를 그렸어요. 전반적으로 조금 느리게 연주되는데, 왼손과 오른손이 하나의 음을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연주하는 모습이 똑똑 소리를 내며 일정하게 떨어지는 낙수의 소리를 묘사하고 있죠.

쇼팽이 폴란드 귀족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어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일정하게 떨어지는 낙수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했죠.
쇼팽이 폴란드 귀족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어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일정하게 떨어지는 낙수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했죠. /위키피디아
그 위에 연주되는 서정적인 선율도 무척 아름다운데요. 중간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조금 어두워집니다. 이 부분은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 작곡가 쇼팽이 꾸는 어지러운 꿈처럼 느껴지는데요. 깊이 든 잠이 아니어서인지 낙수 소리는 계속 이어지죠. 한 차례 격정적인 장면이 지나간 후 빗소리는 다시 부드럽게 변하고, 작품은 달콤한 휴식을 취하듯 끝납니다.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는 물과 관련된 피아노곡을 많이 썼어요. 1903년 쓰인 모음곡 '판화' 중 세 번째 곡은 '비 오는 정원'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요. 가랑비처럼 아주 작은 빗방울들이 내려오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이 곡은 기교적으로 빠른 손놀림이 필요한 연습곡에 가까운데, 비가 내렸다가 멈추고, 다시 햇살이 비춰 나뭇가지들 사이에 있던 빗물이 말라가는 모습까지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에요.

드뷔시는 이 곡을 쓰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빗속을 뛰어다니며 놀던 추억을 되살렸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프랑스 어린이들이 자주 부르는 동요의 멜로디를 작품 속에 넣었어요. 음악 속에서 내리는 빗줄기는 아주 신나고 들뜬 느낌으로 다가오고, 결국 투명한 햇빛이 쨍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밝게 끝을 맺습니다.

저마다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을 들어보니 작곡가들의 상상력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내리는 비와 날씨보다 더 복잡 미묘하고 다양했던 것 같아요. 여러분도 각자의 상상력을 발휘해 지금까지 없었던 자신만의 멜로디를 내리는 빗줄기에 맞춰 만들어 보세요. 비에 관한 또 다른 걸작이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