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800년 지배한 이슬람 세력, '공존의 문명' 꽃피우다
[스페인의 이슬람 문명]
타 종교·민족 포용하는 관용 정책
전성기엔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3대 종교가 공존하며 문화 융성
메스키타·알람브라 등 유산 남기고 1492년 가톨릭 연합군에 멸망했어요
국제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가 지난달 말 이라크 모술에서 이라크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면서 '알누리 모스크'를 파괴해버렸다고 해요. 알누리 모스크는 1170년 건설된 이라크의 대표적 문화유산이에요. IS를 위시한 극단 이슬람주의 세력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문화유산을 마구 파괴해 지탄을 받았는데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쿠란의 가르침을 과도하게 해석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다고 알려졌어요.
이슬람 문명이 남긴 찬란한 문화유산은 다행히 세계 각지에 여럿 남아 있어요. 특히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이나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그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졌죠. 그런데 이상하죠. 분명 스페인은 유럽 가톨릭 국가인데 왜 여기 이슬람교의 유적이 있는 걸까요?
◇관용으로 통치한 스페인의 이슬람 왕국
7세기 무함마드가 이슬람 공동체를 건설한 뒤, 이슬람 세력은 '우마이야 왕조'의 지휘 아래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아라비아반도를 제패한 뒤 중동 전역과 북아프리카를 거쳐 8세기 유럽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까지 진출했죠.
이베리아반도는 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곳이에요. 우마이야 가문 출신의 기병대장 아브드 알라흐만은 756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중심 도시 코르도바를 점령하고 자신의 왕조를 세워 알라흐만 1세로 즉위했죠. 이를 아라비아반도의 우마이야 왕조와 구분하기 위해 '후기 우마이야 왕조'라고 부릅니다.
-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알람브라 궁전은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 남부를 지배하던 13세기 그라나다에 지어졌어요. 알람브라 궁전은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건축양식을 지칭하는 ‘무어 양식’ 건축물 가운데 최고봉으로 꼽힙니다. /위키피디아
알라흐만 1세는 자신이 정복한 지역에서 종교가 다른 주민들을 억압하기보다 관용으로 통치했어요. 관용은 넓은 아량으로 남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죠. 자신들이 소수 세력이란 현실적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종교·민족·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대립하면 결국 발전할 수 없다는 철학이 밑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알라흐만 1세는 종교와 부족의 경계를 넘어 인재를 채용했어요. 당시 이베리아반도에 많이 거주했던 유대인을 경제, 행정, 학문 분야에 널리 발탁했어요. 1200년 전이란 점을 상기하면 더욱 놀랍죠. 알라흐만 1세의 통치 철학은 관용과 공존을 뜻하는 '콘비벤시아(Convivencia)'로 불려요.
- ▲ 스페인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모스크)는 원래 후기 우마이야 왕조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지어졌으나, 가톨릭 왕국에 정복된 후 성당으로 바뀌었어요. 지금도 안에는 두 종교의 건축양식이 공존하고 있어요. /코르도바=박승혁 기자
콘비벤시아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후기 우마이야 왕조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가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하는 '공존의 문명'을 꽃피웠어요. 수도 코르도바는 기존 이슬람권의 중심 도시 바그다드나 다마스쿠스와 맞먹을 정도로 번성했어요. 유럽 각지에서 학자와 학생들은 찬란한 이슬람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코르도바로 몰려들었어요. 당시 코르도바는 인구가 수십만에 달하는 거대 도시였으며, 농업·상업·수공업이 발달해 그야말로 유럽에서 가장 강성한 도시였습니다.
후기 우마이야 왕조는 서기 1000년쯤 최전성기를 구가했어요.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차지하고 프랑스 바로 아래 피레네산맥까지 세력을 떨쳤어요. 코르도바 메스키타(스페인어로 이슬람 사원이란 뜻) 등 화려한 이슬람 유적도 이때 세워진 것이죠.
◇찬란한 유산 남기고 소멸하다
후기 우마이야 왕조는 내부 분열로 1031년 멸망하고 수많은 이슬람 제후의 공국으로 분열되기에 이릅니다. 이들은 북쪽에서부터 하나둘씩 가톨릭 세력의 재정복 운동에 의해 멸망했어요.
1230년쯤엔 나스르 왕조의 그라나다만이 이베리아반도 최남단에 남아 버티고 있었어요. 나스르 왕조는 재정복 운동을 주도하던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디난드 3세에게 복속할 것을 약속하고 속국으로 살아남았죠. 카스티야로서는 그라나다를 멸망시키는 것보다는 이슬람 국가들과의 연결 통로로 삼아 무역을 하는 것이 더 큰 이득일 거라 생각해서 그라나다를 남겨뒀어요.
하지만 15세기에 포르투갈이 바다를 통해 서아프리카와의 교역로를 개척하면서 카스티야 왕국 입장에서는 그라나다의 중요성이 떨어졌어요. 결국 1492년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연합군에 의해 그라나다가 함락됐어요. 800년 동안 이베리아반도에서 찬란하게 꽃을 피웠던 이슬람 문명은 소멸됐습니다.
화려하기로 이름난 알람브라 궁전은 바로 이 그라나다의 왕족이 거주하던 궁전이었어요. 이 궁전을 두고 19세기 미국 작가인 워싱턴 어빙은 "사실과 허구에 근거한 수많은 전설 아라비아와 스페인의 사랑·전쟁·기사도를 그린 수많은 노래와 발라드가 모두 동방의 이 궁전과 관련되어 있다!"고 노래했죠. 알람브라 궁전에 갈 일이 있다면, 이베리아반도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이슬람 문명을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윤형덕 공주 한일고 교사·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