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악귀 쫓으러, 일탈 즐기러 가면 썼어요
[세계의 가면문화 展]
초자연·주술적 목적에서 쓰기 시작
북청사자놀음은 질병 쫓는 의식, 멕시코에선 죽은 자와 만나는 길
카니발엔 가면 쓰고 일탈 즐겼어요
"이 세상은 하나의 무대. 남자나 여자나 인간은 모두가 배우로다. 그들은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희극 '당신이 좋으실 대로'에서 쓴 글입니다. 세상은 연극이 상연되는 무대고,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젊은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다 죽음으로써 퇴장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배우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더 잘 어울리도록 분장을 합니다.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도 있어요.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이 가면을 쓴 예라고 할 수 있지요. 한참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도 배우들이 가면을 썼어요. 처음엔 청동으로 만든 가면을 썼지만 너무 무거워서 연기하기 불편하자, 점차 나무나 종이 등 가벼운 재료로 가면을 만들어 썼어요. 서울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는 오는 7월 말까지 다양한 재료로 만든 세계의 가면들을 전시하고 있어요.
가면은 본래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거나 소망을 이루려는 주술적인 목적에서 사용되었어요.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혼을 선한 것과 악한 것으로 구별하고,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바로 이 선한 혼과 악한 혼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사람이 병에 걸려 열이 펄펄 나는 이유도 악한 귀신이 몸에 붙어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 악귀를 쫓아내려면 힘세고 무시무시한 가면으로 겁을 줘야 했을 거예요.
- ▲ 작품1 북청 사자놀음의 ‘사자 가면’, 종이, 한국 함남. /고려대학교 박물관 ‘주술·상징·예술: 세계의 가면문화’展
작품1과 작품2를 보세요. 북청사자놀음에서 사자춤을 출 때 쓰이는 사자 가면도 질병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 사자는 음력 1월 4일부터 14일까지 놀이패와 함께 방울을 딸랑딸랑 울리며 온 마을을 돌아다닌대요. 가끔 딱딱 소리를 내며 귀신을 잡아먹는 시늉도 해요. 그러면 집 안 구석구석에 숨어 가족을 괴롭히던 질병 귀신이 겁이 나서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간대요.
- ▲ 작품2 - 북청 사자놀음의 ‘사자 가면’, 종이, 한국 함남(사진 왼쪽). 작품3 - ‘마하 콜라 산니 야카 가면’, 나무, 스리랑카(사진 오른쪽)
질병을 쫓아낼 뿐 아니라, 건강을 지켜주고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가면도 있어요. 스리랑카 신할리족의 '산니' 가면이 그래요. 산니는 신할리어로 병을 뜻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병을 퍼뜨리는 것이 산니 잡신들의 소행이라고 믿어요. 작품3을 보세요. 이것은 산니를 대표하는 우두머리 무당이 쓰는 가면으로, 양옆에 아홉 개씩 총 18개의 가면들을 하인처럼 거느리고 있어요. 가면 18개는 각각 정신병, 설사병, 팔다리 통증, 짜증, 배고픔, 열병 등을 사람 얼굴로 표현한 것이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들을 사람에 빗대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당들은 한 명씩 각 질병에 해당하는 가면을 쓰고 나와서, 그 질병의 특성을 보여주는 연기를 하며 환자들과 실랑이를 벌입니다. 보이지 않는 병균은 잡을 수 없고 싸워 이기기도 어렵지만, 가면을 씌워 사람처럼 보이게 해놓으면 한번 겨루어 볼 만한 상대로 바뀌게 되겠죠. 그런 식으로 환자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질병을 떠나보내거나 물리친다고 해요.
- ▲ 작품4 - ‘칼라카 가면’, 나무, 멕시코(사진 왼쪽). 작품5 - ‘카니발 가면’, 종이, 섬유, 깃털, 이탈리아(사진 오른쪽).
가면에는 변신의 속성이 있습니다. 내가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그 가면의 인물이 된다는 뜻이에요. 축제 때 가면을 쓰는 배경에는 지금의 나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사람이 돼 본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작품5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 때 쓰는 가면이에요. 카니발 기간에 이곳 사람들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신나게 놀았어요. 카니발은 더 나은 삶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일상의 질서에서 벗어나도록 허락된 기간이죠. 가면축제에 참가하면 변신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면 뒤에 숨어서 실컷 해방감을 맛볼 수도 있고, 그러는 동안 내가 알지 못하던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거든요. 셰익스피어보다 몇 백 년 후에 등장한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일 때 가장 솔직하지 못하다. 가면을 건네주면 그는 진실을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