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 주의 책] 매일이 '어린이날'인 아홉 살의 당당함을 만나다

입력 : 2017.06.30 03:09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시공주니어
"난 이미 어린이집에 살고 있는걸요. 난 어린이이고 여긴 내 집이에요. 그러니까 이 집은 어린이집이죠."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는 어른에게 당돌하게 말하는 꼬마가 있네요. 어린이집에 갈 필요 없다고요.

'삐삐 롱스타킹'은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을 하고 코 주변에 주근깨가 점점이 박힌 아홉 살 소녀예요. 엄마는 하늘의 천사, 아빠는 식인종의 왕이라고 말하고 다녀요. 장래 희망은? 해적이라네요. 스웨덴 한 마을에 있는 '뒤죽박죽 별장'에 사는데, 말도 번쩍 들어내고 서커스 최고의 씨름 장사도 땅바닥에 눕혀버리는 힘을 가졌어요. 왠지 익숙하다고요? 영화 '말괄량이 삐삐'로도 유명한 친구니까요.

삐삐의 진짜 이름은 '삐삐로타 델리카테사 윈도셰이드 맥크렐민트 에프레임즈 도우터 롱스타킹'.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삐삐'라고 부르죠. 삐삐는 어린이집에도 학교에도 안 가요. 집에서 원숭이 닐슨씨와 놀고 빵을 굽고 심심하면 말을 타고 밖을 달려요. 잘 때는 침대 베개에 두 발을 올리고 머리는 그냥 매트리스에 대고 자지요. 그래야 편하대요. 한마디로 매일이 '어린이날' 같은 친구예요.

부모님이 두 분 다 안 계시지만 주눅이 들지도 우울해하지도 않아요. 돌아가신 어머니는 '하늘의 천사'이고 배를 타다가 바다에 빠져 사라진 아버지는 '식인종의 왕'이 됐다고 믿죠. 책은 삐삐가 뒤죽박죽 별장에 살게 되면서 이웃집 아이 아니카와 토미랑 매일같이 신나게 노는 이야기예요. 벽에다가는 마음대로 낙서를 하고, 팬케이크를 만든다며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들죠. 어른들이 올라가면 안 된다고 하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 어른들이 아이들은 마시면 안 된다고 하는 커피를 마셔요. 그래도 괜찮아요. 즐거우니까요.

그렇다고 삐삐가 학교를 땡땡이치고 누굴 골려줄 생각만 하는 불량소녀라고 생각하면 착각이에요. 아이를 따돌리는 불량배 무리는 혼쭐을 내고, 삐삐가 가진 금화를 노리고 집에 들어온 도둑은 한바탕 골탕먹여서 쫓아내죠. 자유분방하지만 정의롭지요.

스웨덴 아동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이 1945년 펴낸 첫 동화 속 주인공이에요. 스웨덴에서 책이 나오기까지 어려운 과정을 겪었다고 해요. 어른에게 꼬박꼬박 말대답하고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는 여자아이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교육적이지 않다는 이유였죠. 그렇지만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삐삐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인기예요. 보통 아이라면 하지 못할 이야기, 할 수 없는 일들을 삐삐가 대신해주기 때문 아닐까요.

학교 숙제, 학원 숙제하느라 맘껏 놀지도 못하고, 선생님에게 말대꾸하면 혼나기 십상이죠. 그럴 때 이 책을 읽는 건 어떨까요. 삐삐가 당당하고 쾌활하게 사는 모습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될 거예요.


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