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사회주의 붕괴에… "거봐, 내가 뭐랬어"

입력 : 2017.06.23 03:10

[하이에크와 자유시장]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하이에크, 정부에 시장 개입 권한 부여 반대
"계획 경제는 비참한 결과 초래"
케인스주의 맞서 시장 자유 강조 "뉴딜로 대공황 극복 증거 없어"
방임 vs 개입, 여전히 논쟁 중이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1930~1940년대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극의 시대였어요. 1930년대 중반 소련에서는 독재자 스탈린이 반대 세력을 말살해버려요. 1937년과 1938년에 무려 68만명을 사형에 처했고 강제수용소로 보낸 사람도 63만명이나 됐다고 해요.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주도하는 전체주의가 득세했어요. 히틀러는 유대인이 반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유대인 600만명을 죽였어요.

이런 비참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정부의 권력 강화가 얼마나 커다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체감하고 자유주의를 신봉하게 된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7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예요. 하이에크는 사회주의나 전체주의 같은 체제는 개인의 자유를 빼앗을 수밖에 없고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봤어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를 계획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장기판의 말과 같은 처지라고 그는 비유했어요. 특히 '계획 경제'를 펼치는 사회주의를 배척했죠.

하이에크는 시장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고 정부는 일절 개입해선 안 된다고 믿었어요. 경제적 자유 없이는 개인의 자유도, 정치적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고 본 것이죠. 자유 시장이 경제 효율성을 높여 번영에 이르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의 자유까지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운 경제철학이죠. 이 때문에 하이에크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했던 케인스와 첨예하게 대립했어요. 케인스는 대공황이라는 전례 없는 시장 실패를 극복하려면 정부가 적극 개입해 시장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반면 하이에크는 자유 시장에 믿고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죠.

운동화를 예로 들어 하이에크의 주장을 생각해볼까요. 운동화를 사면서 우리나라 전체의 운동화 수요와 공급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개인은 그냥 어떤 운동화가 싼지 또는 비싼지 생각하고 선택할 뿐이죠. 소비자와 생산자는 제각각 의사 결정을 하고 있지만 운동화 거래가 반복적으로 이뤄지면서 시장가격이 형성되죠. 그러면서 새로운 정보가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전달되고, 소비자와 생산자는 그 새 정보에 반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조화가 이뤄져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다양한 경제활동을 조화롭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시장밖에 없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결론이에요.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 미국 정부의 '뉴딜' 정책에도 하이에크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이 자연스레 회복한 것이지 정부 개입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아니라고 봤어요.

미국 애리조나주와 네바다주 경계에 있는 후버댐은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어렵던 1930년대 미국 정부가 4900만달러(현재 가치로 약 8000억원)를 투입해 건설했어요. 미 정부는 후버댐이나 금문교 같은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해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했죠. 반면 하이에크를 비롯한 자유시장주의자는 “시장 스스로 회복하게 놔둬야지 정부가 개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어요.
미국 애리조나주와 네바다주 경계에 있는 후버댐은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어렵던 1930년대 미국 정부가 4900만달러(현재 가치로 약 8000억원)를 투입해 건설했어요. 미 정부는 후버댐이나 금문교 같은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해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했죠. 반면 하이에크를 비롯한 자유시장주의자는 “시장 스스로 회복하게 놔둬야지 정부가 개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어요. /블룸버그
하이에크는 "전지전능하면서 자비로운 지도자(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 사람의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도 수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 조각 수천만 가지의 합을 능가할 수 없으므로 정부에 시장 개입이라는 막대한 권한을 부여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했어요. 그는 정부 개입을 경고하는 주장을 담은 자신의 저서에 '노예의 길'이라는 제목을 달았어요. 사회주의가 인류를 노예로 만드는 이념이자 진보를 가장한 '악'이라는 주장을 담은 것이죠. 물론 시장도 실패할 수 있지만 정부 역시 마찬가지이며, 시장이 실패하는 경우에 비해서 정부가 실패하는 경우에는 더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정부는 일반 상황에 적용되는 규칙을 만드는 일만 하고 나머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했어요.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사회주의 몰락을 예언했던 하이에크는 간단히 한마디 합니다. "거봐, 내가 뭐랬어." 덩샤오핑은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결단하면서 하이에크를 초청해 조언을 구했어요. "어떻게 하면 중국 인민들을 굶주림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이에크는 단순 명료하게 답했죠.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은 농민들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하세요."

시장을 완전히 자유롭게 놔두는 게 옳은가 아니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옳은가, 하이에크와 케인스의 논쟁은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뜨겁게 진행되고 있답니다.




한진수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