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휴대폰 있는데 왜 또 새 휴대폰을 살까요?

입력 : 2017.06.16 03:10

[세이의 법칙]

'공급이 수요 창출' 세이의 법칙
20세기 초까지 세계 경제 중심 이론, 대공황으로 한계 드러난 듯했지만…
정보화 시대 인터넷, 스마트폰 등 창의적이고 쓸모있는 신제품 공급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경제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립된 학문이에요. 경제문제는 왜 발생하는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가격은 어떻게 형성되며 변화하는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백 년 고민한 결과죠. 다만 경제 이론은 자연법칙처럼 '절대 불변'은 아니에요. 경제 환경이 변화하면 경제 이론도 덩달아 달라질 수 있어요. 예전에 통했던 이론이 갑자기 통하지 않다가 또 시대가 바뀌어 다시 주목받기도 하는데요. '세이의 법칙'이 좋은 예입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세이의 법칙’을 정립한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
‘세이의 법칙’을 정립한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 /위키피디아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Jean Baptiste Say·1767~1832)는 산업혁명 태동기의 사업가이자 언론인·경제평론가예요. 그는 '사람들의 경제 행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를 꾸준히 연구했어요. 세이가 살던 시기는 한창 산업혁명이 일어난 때라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죠.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소득 수준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물건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팔리는 시절이었어요. 세이는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판로설(販路說·세이의 법칙)을 정립했어요. 물건을 만들어 내놓기만 하면 같은 양의 수요가 생기게 돼 있어 '생산 과잉'은 일반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불황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론이죠. 세이의 법칙은 다른 말로 '쓸모의 법칙' 또는 '가치 효용설'이라고 해요. 기업이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곧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이라고 정리한 것이죠. 이에 따라 기업들은 부지런히 제품을 만들었어요. 세이의 법칙은 20세기 초반까지 경제학의 중심 이론 역할을 하며 미국·유럽의 경제성장을 이끌었어요. 덕분에 인류는 처음으로 공급이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됐어요.

그러나 1920년대 말 세계 대공황이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져요. 이미 만들어 놓은 상품은 팔리지 않고 재고로 쌓였죠. 공장이 문을 닫고 수많은 사람이 실업자로 전락했어요. 대량생산 체제가 정착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버렸기 때문이에요. 세이의 경제 이론으로는 이러한 공급 과잉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어요. 이때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세이와 정반대로 "총수요의 크기가 총공급을 결정한다"는 '유효수요의 원리'를 주장했어요. 정부가 능동적으로 개입해 소득 재분배와 일자리 창출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죠. 케인스 이론이 대공황 극복에 크게 기여하면서 세이의 법칙은 잊혔어요.

◇창의적인 신제품이 수요를 만들어요

최근 '디지털 혁명'으로 제조업 중심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바뀌면서 세이의 법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어요.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끊임없이 개발되는 새로운 물건들이 우리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이죠. 무조건적인 공급보다는, 창의적이고 쓸모 있는 신제품이 공급과 함께 수요를 창출하고 있어요.

인터넷을 예로 들어 볼까요? 지금은 세계 모든 사람의 필수품이지만 1980년대 초 인터넷이 처음 나오고 한동안은 소비자들이 그 쓸모를 알지 못했어요. 공급이 되니까 뒤이어 수요가 발생한 것이죠. 처음부터 인터넷의 대중적 수요가 공급의 크기를 결정한 것이 아니에요. 휴대폰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손에 들고 다니는 전화가 나온 것을 보고 모두들 신기하게 여겼지만 그 쓸모를 느끼지는 못했답니다. 언제 어디서나 통화는 물론 사진도 찍고, 인터넷도 하고, 신용카드 기능까지도 갖추게 되면서 소비자들이 그 쓸모를 인식하게 됐고 새로 수요를 이끌어낸 것이죠. 우리나라 제조업체가 만드는 스마트폰은 가격이 꽤 비싼데도 독특한 디자인과 우수한 성능으로 세계시장을 제패했어요.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2017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에서 참석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어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 정보화 시대 창의적이고 쓸모 있는 신제품은 공급과 함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요.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2017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에서 참석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어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 정보화 시대 창의적이고 쓸모 있는 신제품은 공급과 함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요. /블룸버그
스마트폰뿐 아니라 스마트 TV,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새로운 기능의 제품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수요가 크게 늘어요. 멀쩡한 휴대폰을 이미 갖고 있음에도 1~2년 만에 새 제품으로 바꾸기도 하죠. 따라서 '세이의 법칙'도 재평가를 받는 것이에요. 공급이 '쓸모'를 만들어주면 그 쓸모가 스스로 새로운 수요를 거듭 이끌어내면서, 자원이 새롭게 분배되고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죠.

이제 "공급이 먼저냐, 수요가 먼저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보여요. 훌륭한 과학자나 개발자가 쓸모 있고 창의적인 새 상품을 개발해서 시장에 공급하면 그 상품의 수요가 창출되고, 그렇게 창출된 수요가 모여서 다시 총공급의 크기를 좌우하는 식으로 공급과 수요가 긍정적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경제가 발전한답니다.



천규승 미래경제교육네트워크 이사장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