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오이 싫어하는 사람 의외로 많다는데… 왜?

입력 : 2017.06.14 03:12

[유전자와 미각]

오이 맛과 향 싫어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른 유전자 보유
독 구분 위해 진화했다는 설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지 못해요

오이의 계절인 여름이 찾아왔어요. 무더운 날씨에는 시원한 오이 냉채를, 무기력할 때는 시큼한 오이 피클을 찾는 사람이 많아요. 사각사각한 식감도 일품이에요. 오이는 수분을 비롯해 비타민, 칼륨 등 영양소가 풍부하고 열량이 아주 낮아서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제격이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맛 좋은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페이스북에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오싫모)'이라는 모임이 생겨, 10만명 이상이 회원으로 가입했어요. 오싫모 회원들은 김밥이나 비빔밥에 나오는 오이를 모두 골라낼 정도로 오이라면 질색한다는데요. 심지어 참외나 수박 등 오이의 '친척'들도 안 먹을 정도라고 하네요. 단순히 오이가 싫다는 반찬 투정을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들이 오이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가 있는 걸까요?

◇오이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

오싫모 회원들이 오이를 싫어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예요. 오이 특유의 쓴맛과 냄새 때문입니다. 오이를 비롯한 박과 식물들은 대개 양쪽 꼭지 주위에서 쓴맛이 나는데요. 쓴맛의 원인은 쿠쿠르비타신(cucurbitacin)이라는 물질이에요. 오이가 해충이나 초식동물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수단이죠.

쿠쿠르비타신의 쓴맛에 유달리 예민한 사람이라면 오이를 싫어할 거예요. 실제로 사람은 염색체 7번에 위치하는 특정 유전자(TAS2R38)의 종류에 따라 '쓴맛에 민감한 사람'과 '쓴맛에 둔감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어요. 오이의 쓴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유전자 특성상 쓴맛에 민감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오이 설명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오이를 씹을 때 나는 향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죠. 향의 주성분은 알코올의 일종인 '노나디에날'과 '노나디에놀'이에요. 이런 알코올 성분 때문에 오이를 피부 마사지용으로 쓰기도 해요. 단, 아직까지 노나디에날과 노나디에놀을 감지하는 후각 수용체가 알려져 있지 않아서, 사람들이 오이 향을 싫어하는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유전자에 따라 특정한 냄새를 더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에요.

실제로 유전자 종류에 따라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향신료로 쓰이는 '고수'인데요. 고수는 쌀국수 같은 동남아 음식에 많이 사용되는 채소예요. 사람에 따라 극심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재료지요. 그런데 미국 실리콘밸리의 개인 맞춤형 유전자 진단 업체 '23andMe'에 따르면, OR6A2 유전자의 종류에 따라 고수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대요. OR6A2는 사람의 11번 염색체에 위치한 유전자로 알데히드 분자의 냄새를 맡아요. 고수에도 알데히드 성분이 들어있답니다.

◇쓴맛을 싫어하는 것은 진화의 결과?

과학자들은 쓴맛을 연구하기 위해 PTC라는 쓴맛이 나는 화학물질을 개발했어요. PTC는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은 아니지만, 과학자들은 PTC를 이용해 '미맹(味盲)'을 판가름해요. 보통 사람은 대개 PTC를 맛보면 약한 쓴맛을 느껴요. PTC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쓴맛에 민감한 '수퍼 테이스터'로 분류되죠. 쓴맛 이외 다른 맛을 느낀다면 미각 이상, 아무 맛도 못 느낀다면 '미맹'으로 분류해요. 수퍼 테이스터는 PTC뿐만 아니라 양배추, 케일, 커피, 콩 등 쓴맛이 조금이라도 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요. 즉, 아직 과학적으로 이유가 분명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수퍼 테이스터 등 일부 사람은 남들보다 쓴맛에 매우 민감한 것이죠.

그렇다면 왜 일부 사람만 특별히 쓴맛을 더 싫어하게 된 걸까요? 이 또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어요. 다만 과학자들은 쓴맛을 싫어하는 경향을 진화와 관련해 설명하기도 하는데요. 자연에서 독성을 띤 물질은 대개 쓴맛을 내요. 예를 들어 양배추나 상추 등에서 쓴맛을 내는 '고이트린'을 많이 섭취할 경우 우리 몸속에서 독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진화론적으로 우리 몸은 쓴맛을 구분해 자연스레 독을 피하게 됐죠. 최근에는 쓴맛을 구분하는 TAS2R38 수용체가 몸에 해로운 세균을 감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어요. 쓴맛을 잘 구분하는 능력이 우리 몸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죠.

선천적으로 쓴맛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쓴맛을 극복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아주 쓴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도 우유나 설탕의 도움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열을 가하는 등의 조리법으로 쓴맛을 내는 물질을 제거할 수도 있죠. 아예 음식 맛이 아닌 또 다른 보상을 찾아내서, 기분 나쁜 맛을 극복하는 훈련을 할 수도 있어요. 어른들이 쓴맛에도 각성 효과를 위해 커피를 마신다든지,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맛없는 술을 마시는 것이 좋은 예죠. 여러분도 어떤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쉽게 포기하지 말고 다른 도움을 받아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송준섭·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