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한국 현대 조각 네 거장의 작품들 한자리에

입력 : 2017.06.10 03:03 | 수정 : 2017.06.10 15:24

['성북의 조각가들' 展]

권진규作 '인물 두상' 최초 공개
최만린, 생명의 아름다움 담아내

김종영,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
제자 송영수는 조각에 용접술 접목

한국 현대 조각의 네 거장(巨匠)-김종영, 권진규, 송영수, 최만린을 소개합니다. 이 네 사람은 우리나라가 어렵던 1960년대 예술혼(魂)을 교류하며 긴밀하게 이어진 사이인데요. 한국 현대 조각의 개척자라 할 수 있을 만큼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네 사람 다 한때 서울 성북구에서 작업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해요. 성북구립미술관에서는 이들을 기념해 6월 18일까지 '성북의 조각가들'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어요.

조각은 '만들기'와 가장 관련 깊은 예술 분야입니다. 인간은 도구를 이용해 뭔가 만들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호모 파베르(Homo Faber·만드는 인간)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죠. 호모 파베르의 역사는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 시대 구분에서 잘 나타납니다. 어떤 도구를 만들고 이용했나에 따라 인류 역사가 나뉘는 것이죠. 생존과 방어의 치열한 역사를 살던 인간에게,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농기구와 주변의 약탈자를 이겨낼 무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어요. 인간은 농기구와 무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어요. 틈틈이 찰흙으로 귀여운 동물 인형을 빚거나, 돌을 깎고 쪼아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도 만들었어요. 그렇게 '조각'이 탄생하게 됩니다.

작품1~5
작품 1은 권진규(1922~1973)가 흙으로 만들어 구운 것이에요. 말이 머리를 뒤로 돌려 자기 등에 탄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간 모습입니다. 소년은 말과 아주 친한 사이인 듯 보여요. 권진규는 일본에서 조각을 공부했습니다. 불행히도 그동안 한국에서는 6·25전쟁이 터지고, 서울에서 보내주는 학비도 끊기고 말죠. 그는 마네킹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영화 제작을 위한 세트와 도구를 만들면서 어렵사리 버텼죠. 점차 그의 작품은 일본 미술계에서 극찬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은 한국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결국 그는 고독하게 작업하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말았죠.

작품 2는 1960년대 권진규가 성북구 동선동의 작업실을 방문한 최만린에게 직접 선물한 인물 두상으로,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에요. 자식 같은 작품까지 건네준 것을 보면, 권진규는 작품의 진가를 알아주는 예술적 동지를 만나서 너무나 기뻤나 봅니다.

둘의 관계는 옛 중국 춘추시대의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를 떠오르게 해요. 백아가 거문고를 연주하면 종자기는 소리만 들어도 백아가 어떤 생각을 음에 담아내는지 알아챌 정도라고 했어요. 속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뜻하는 '지음(知音·소리를 이해함)'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지요.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해요.

작품 3은 최만린(1935~ )이 석고로 만든 것인데, 거친 표면이 마치 힘겨운 삶의 흔적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나라가 전쟁이 남긴 잿더미에서 불끈 일어서려 하던 시절에 만든 작품이에요. 전쟁이 인간의 역사에서는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미술가들에게는 생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심어준 계기가 됐죠. 조각가 최만린은 '삶이란 처절할 수 있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작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김종영(1915~1982)과 송영수(1930~1970)는 스승과 제자 사이입니다. 김종영은 한국 추상조각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어요. 작품 4에서 보듯 돌이나 나무 등 재료 본래의 특성을 잘 살려내는 단순한 조각을 만들었어요. 스승에게서 추상조각을 배운 송영수는 철을 용접하는 방식을 조각에 이용해서, 작품 5와 같이 선이 중심이 되는 조각을 선보였어요. 가벼워 보이지만, 둔탁하고 날카로운 철을 잘라내고 그것을 용접봉의 뜨거운 불길로 녹이고 붙여 조각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송영수는 마흔이라는 짧은 생애를 자신의 작품처럼 뜨겁게 불꽃처럼 살았습니다. 평소처럼 열심히 일한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쓰러졌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 됐답니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인간은 도구를 만드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만들어 간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매일매일 고민하고 느끼며 서서히 변화해가는 과정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더 멋진 자신을 창조하고자 애쓰는 삶의 조각가들이랍니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