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잊고 싶은 기억, 마음대로 지울 수 있게 될까

입력 : 2017.06.07 03:07

[기억 조작 기술]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기억 조작, 현실로 만들려는 연구 시작
쥐 신경세포 자극해 기억 바꾸기도
머스크가 개발 중인 '뉴럴 레이스', 두뇌·컴퓨터가 자유롭게 기억 공유
기억 조작 실현 아직은 '산 넘어 산'

최근 개봉한 영화 '공각기동대'는 사람의 기억을 마음대로 지우거나 새로운 기억을 주입하는 미래 세계가 배경입니다. 영화 속 악당들은 사이보그 요원 '킬리언'의 기억을 조작해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킬리언이 살아가도록 이끌어요. 이렇게 인간의 기억을 지우거나 다른 기억을 주입하는 '기억 조작'은 여러 공상과학 영화에 단골 소재로 등장합니다.

기억 조작을 다루는 영화나 소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유는 아마도 누구나 자신의 기억을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민망한 실수를 한 기억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잊히지 않고, 중요한 약속을 깜빡 잊어버려 곤란했던 경험들이 한두 번씩은 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기억 조작을 현실로 만들려는 연구들이 시작되었어요. 컴퓨터 파일을 저장하고 삭제하듯 자신의 기억을 마음대로 바꾸는 일이 정말 가능해질까요?

◇실험용 쥐의 기억 조작은 가능

뇌와 신경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기억을 '신경세포의 조합'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뇌에는 수천억개의 신경세포(뉴런)가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며 작동하고 있어요. 이 세포 중 일부가 특정한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이 기억이라는 것이죠. 가령 커피를 마실 때 우리는 커피의 맛과 향, 온도 등을 느낍니다. 이런 감각들은 수많은 신경세포가 여러 전기신호를 주고받은 결과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커피를 마실 때마다 비슷한 신경세포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전기신호를 주고받고요. 이렇게 여러 신경세포들이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특정한 방식이 하나의 기억을 이루는 것입니다.

기억 조작 설명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2013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쥐의 신경세포를 자극해 쥐의 기억을 조작하는 데 성공했어요.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 기술로 신경세포가 작동할 때 빛을 내는 실험용 쥐를 만들어냈답니다. 그리고 이 쥐를 아무것도 없는 상자(A)에 넣고 어떤 부위의 신경세포가 작동하는지 알아냈어요. 쥐가 A 상자를 기억할 때 사용한 신경세포를 찾은 것이죠.

그런 다음 쥐를 다른 상자(B)에 넣고 전기 충격을 가해 공포스러운 기억을 주입했어요. 동시에 쥐가 A 상자를 기억할 때 사용한 신경세포들을 자극해 전기신호를 주고받도록 했답니다.

그리고 다시 쥐를 A 상자에 넣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쥐가 공포스러운 기억을 떠올린 듯 근육이 경직되고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반응을 보인 것이죠. 실제로는 B 상자에서 전기 충격을 받았지만, 신경세포를 자극했더니 A 상자에서 전기 충격을 받은 것으로 기억이 바뀐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실험용 쥐의 공포스러운 기억을 지우는 데 성공했어요. 연구팀은 실험용 쥐를 특정한 장소에 넣고 반복적으로 전기 충격을 가해 공포스러운 기억을 만든 다음 제논 가스를 들이마시게 하였어요. 가스를 마시기 전 쥐를 특정 장소에 넣으면 전기 충격을 가하지 않아도 겁에 질린 모습을 보였지만, 제논 가스를 마신 뒤에는 태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논 가스가 신경세포 활동을 억제해 공포스러운 기억을 떠올리지 않도록 한 것이죠.

◇인간의 기억도 조작할 수 있을까

실험용 쥐의 기억을 조작하는 데 성공했지만 과학자들은 "인간의 기억을 조작하려면 갈 길이 한참 멀다"고 말합니다. 쥐와 달리 인간의 기억은 세세하고 다양한 정보들이 결합되어 있어요. 따라서 인간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지우려면 수천억개에 달하는 인간의 뇌 신경세포가 제각각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모두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수천억개의 세포가 서로 어떻게 조합되어 어떤 전기신호를 주고받는지 알아내려면 그야말로 '산 넘어 태산'이라는 것이죠. 더불어 실험용 쥐는 전기 충격을 가하거나 유전자 조작 기술 등을 쓸 수 있지만 인간에게는 이런 방법을 쓸 수 없는 윤리적 제약도 따릅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컴퓨터 칩과 인간의 두뇌를 연결해 기억을 조작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7월 바이오 인공지능 기업을 설립해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연결하는 '뉴럴 레이스(neural lace·신경 연결)'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답니다.

뉴럴 레이스는 두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한 뒤 두뇌 속 기억과 컴퓨터가 가진 데이터를 서로 주고받게 하는 기술이에요. 신경세포가 주고받는 전기신호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디지털 신호로 바꾸거나 디지털 신호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두뇌와 컴퓨터가 기억과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이죠. 이 기술이 완성되면 두뇌 속 기억을 컴퓨터에 저장하거나 컴퓨터에 저장된 여러 데이터와 정보를 언제든 우리 뇌에 저장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뉴럴 레이스도 여러 난관을 넘어야 해요. 현재 인간의 기억이나 생각 일부를 알아낼 수 있지만 인간의 감정과 의식이 어떻게, 어디서 형성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또 금속으로 된 컴퓨터 칩을 뇌에 이식할 경우 뇌 세포가 죽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고요.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를 신경세포의 전기신호로 바꾸는 방법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송준섭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