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인구 증가는 재앙" 빗나간 예언이 남긴 교훈은?

입력 : 2017.06.02 03:07

[맬서스의 인구론]

18세기 말 영국서 빈곤 인구 늘자 맬서스, 인구론 써 원인·해법 제시
"인구 증가가 식량 증가보다 빨라" 인구·임금 통제하는 사회개혁 주장
비관적인 그의 예측 빗나갔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 중요성 알렸죠

2011년에 개봉한 영화 '인 타임(in time)'은 150년 후 '시간이 돈이 된 세상'을 보여줍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25세가 되면 더는 늙지 않게 됩니다. 대신 물건을 사고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시간을 대가로 지불해야 해요. 버스를 타면 자신의 수명 2시간을 내놓아야 하고, 하룻밤 호텔에 묵으려면 수명 2개월을 지불해야 하는 식이죠.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해 '시간'을 벌어야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다 지불 수단인 시간이 부족하면 물건을 사지 못하게 되고, 시간이 다 떨어지면 죽게 되죠.

이런 세상에선 시간을 많이 확보한 사람이 부자입니다.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수백 년, 수만 년까지도 살 수 있어요. 빈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하루 24시간이 똑같이 주어지는 오늘날 세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어쩌면 더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인 타임' 속 세상은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자원 부족 문제의 심각성도 보여줘요. 인구가 점점 늘어나 식량과 에너지 등 자원이 부족해지자 부자들은 자신들의 생존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부자 몇몇이 모여 일부러 물가를 높여 인구가 늘어나는 걸 막으려는 음모를 꾸며요.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물가가 높아지면 평범한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돼 일찍 죽게 됩니다. 그러면 자원을 사용하는 사람이 줄어들게 되고, 수명이 긴 부자들은 더 많은 자원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참 무시무시한 생각이죠?

‘인구론’을 쓴 영국 경제학자 맬서스의 초상화예요.
‘인구론’을 쓴 영국 경제학자 맬서스의 초상화예요. /Wellcome Images

◇맬서스가 인구론을 쓴 이유

그런데 18세기 말 영화 '인 타임'에 등장하는 과잉 인구와 자원 부족 문제를 먼저 얘기한 사람이 있었어요.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Malthus·1766~1834)입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된 맬서스는 '빈곤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기 힘든 현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산업 생산성이 급격히 높아지고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구도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그만큼 빈곤 인구도 많이 늘어났지요. '인구가 너무 빨리 늘어난 탓에 사람들이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맬서스는 불과 32세에 인구론(人口論·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이라는 책을 발간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제시했답니다.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1, 2, 4, 8, 16…)으로 늘어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1, 2, 3, 4, 5…)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충분한 식량을 확보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인구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그중 상당수는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기아와 질병, 가난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게 된다고 예상했지요. 그래서 맬서스는 인구 증가를 '악의 근원이자 재앙'이라고 표현했답니다.

맬서스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그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식량 이상으로 인구가 늘어나지 않게 인구 통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리고 그 방법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주면 노동자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게 되어 인구가 늘어나고, 인구가 늘어난 만큼 노동자가 늘어나면 임금은 다시 떨어지게 되지요. 아무리 좋은 의도로 임금을 올려주어도, 장기적으로는 노동자의 삶은 개선되지 않고 인구만 늘어나 수많은 사람이 식량을 구하지 못하고 기아와 질병, 가난에 시달린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맬서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런 맬서스의 주장은 당시에도 큰 논쟁을 일으켰어요. 이 무렵 영국에서는 인구가 늘수록 노동자도 늘어나 생산도 늘어나고 산업이 발전해 국가의 부를 늘릴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죠. 영국 철학자 토머스 칼라일(Carlyle)은 "맬서스는 비관론자"라고 비판하면서 맬서스가 연구했던 경제학까지 '우울한 과학'이라고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18~19세기 영국 경제학자 맬서스의 인구론은 오늘날에도 ‘인구가 급증하면 식량과 여러 자원이 부족해지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18~19세기 영국 경제학자 맬서스의 인구론은 오늘날에도 ‘인구가 급증하면 식량과 여러 자원이 부족해지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연합뉴스

하지만 맬서스가 우울하고 비관적인 전망과 해법을 내놓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요. 당시 통계를 보면 18세기 전까지 영국 인구는 100년마다 100만명 정도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으로 산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18세기에만 인구가 300만명이 늘어났어요. 맬서스는 이렇게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도 식량 생산은 그만큼 늘어나지 못한다고 전망했기 때문에 냉혹하고 비관적인 주장을 한 것입니다.

다행히도 맬서스의 극단적인 예언은 빗나갔어요. 맬서스가 두 가지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경제성장으로 사람들의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여성이 많아지면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걸 예상하지 못했어요. 근래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선진국은 맬서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출산율이 너무 낮고 인구가 줄어드는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지요. 또 하나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 생산성의 증가 속도가 맬서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랐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식량을 비롯해 여러 제품의 생산량은 인구 증가 속도를 웃돌 정도로 크게 증가했어요.

그런데도 맬서스의 인구론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고전'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비관적이고 냉혹한 전망과 분석이 오늘날에도 여러 교훈을 주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생산성도 높아지는 만큼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고, 이에 따라 실제로 식량을 비롯한 여러 자원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요. 특히 인도와 중국 등 10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의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앞으로 엄청난 양의 식량과 자원이 더 필요하게 되고 특정한 자원이 급격히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답니다. 다소 잔혹해 보이는 맬서스의 주장은 오늘날 '인류는 자원을 절약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어요.


한진수 경인교대 교수(사회교육과)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