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단옷날 창포물은 조상들의 '트리트먼트'

입력 : 2017.05.31 03:12

[단옷날과 창포물]

머리카락 보호하는 기름 성분 피지, 시간 지나면 먼지·비듬 달라붙어
비누로 감으면 피지 잘 씻어내지만 머리카락 약해지고 머릿결도 상해
창포 삶은 물에 든 타닌 성분, 상한 부분 메워 머릿결 회복시켜요

오늘은 음력 5월 5일 단옷날이에요. 우리 조상은 단옷날이면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았답니다. 고전소설 '춘향전'에서도 단옷날 춘향이가 창포물에 머리를 감은 뒤 그네를 타요. 이몽룡은 그 모습을 보고 첫눈에 춘향이에게 반했지요.

옛 여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단옷날에는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머리숱이 탐스럽게 자라기를 기원하였고요.

요즘은 머리를 감을 때 대부분 샴푸를 사용합니다. 샴푸에 든 성분이 두피와 머리카락에 묻은 먼지와 기름, 땀 등을 씻어내기 때문이지요. 그럼 우리 조상님이 창포물에 머리를 감은 건 창포가 샴푸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일까요? 단옷날을 맞아 창포물에 머리를 감은 이유를 함께 알아보도록 합시다.

◇샴푸와 비누로 머리를 감는 이유

사람의 머리카락은 80~90%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쉽게 건조해지고 갈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의 뿌리를 감싸고 있는 주머니(모낭)에서 기름 성분의 피지가 분비되어 머리카락이 상하는 걸 막아줘요. 우리 조상이 들기름이나 나무 열매의 기름을 머리에 바른 것도 머리카락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피지와 기름은 머리카락이 손상되는 걸 막아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머리카락을 상하게 할 수 있어요. 피지와 기름이 끈적끈적해지면 먼지와 비듬이 머리카락에 달라붙고 세균이 생길 수 있거든요. 피지는 기름 성분이라 맹물에 머리를 감아도 잘 씻기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샴푸나 비누로 머리를 감아야 피지 성분을 잘 씻어낼 수 있어요.

그럼 비누가 없던 옛날에는 어떻게 피지를 씻어냈을까요? 우리 조상은 식물을 태울 때 나오는 수산화칼륨이 든 잿물에 머리를 감았어요. 잿물에 든 염기성 성분이 피지를 씻어내는 효과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잿물의 효과는 샴푸나 비누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창포물 설명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잿물과 달리 비누는 세척력이 아주 뛰어나요. 비누는 동식물의 기름을 수산화나트륨과 반응시켜 만드는데, 물에 잘 녹는 성분과 기름에 잘 녹는 성분을 모두 가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어떤 물질도 잘 씻어낼 수 있지요. 비눗물에 머리를 감으면 기름에 잘 녹은 성분이 피지 안쪽을 감싸고, 물에 잘 녹는 성분은 피지 바깥쪽을 감싸 머리카락에서 떼어내요. 그래서 비눗물로 머리를 감으면 피지를 말끔히 없앨 수 있답니다.

하지만 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상하는 문제가 생겨요. 염기성을 띤 비눗물이 머리카락에 닿으면 머리카락을 이루는 단백질을 분해하거든요. 그럼 머리카락이 약해지고 쉽게 끊어지게 됩니다.

비누로 머리를 감고 나면 머릿결이 푸석해지고 윤기도 사라지죠? 비누 성분이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무광택의 얇은 막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감을 때 비누 대신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함께 사용하는 건 피지나 세균을 씻어내면서도 머리카락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지요.

◇창포는 손상된 머리카락 회복시키는 트리트먼트

창포물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비누와 같은 세척 성분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창포물이 피지나 먼지, 비듬을 씻어내는 데에는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럼 조상들이 창포물로 머리를 감은 건 무슨 이유일까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한서대학교 연구팀이 20~30대 여성의 머리카락을 구해 탈색으로 머리카락을 일부러 상하게 했어요. 이렇게 손상된 머리카락을 분석해보니 일반 머리카락보다 탄력성이 약 24% 줄어들었답니다. 연구팀은 이 머리카락을 창포 추출액에 넣고 현미경을 통해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관찰하였어요.

결과는 놀라웠어요. 3분이 흐르자 손상된 머리카락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15분이 흐르자 손상된 부분이 모두 회복되어 일반 머리카락과 같은 수준이 되었습니다. 19분이 지나니 일반 머리카락보다 탄력성이 더 높아졌어요. 창포물이 손상된 머리카락을 회복시키고 머릿결을 좋게 해주는 효과를 보인 것이죠. 연구진이 분석한 결과, 창포물에 든 타닌(Tannin) 성분이 머리카락의 손상된 부위를 메워주는 영양분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이렇게 보면 창포물은 샴푸나 비누가 아니라 머리카락에 영양분을 공급해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트리트먼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조상은 잿물로 머리카락에 붙은 피지나 먼지, 비듬을 씻어내고 창포물에 머리를 담가 잿물로 상한 머릿결을 회복시켜 머리카락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관리한 것이죠.

☞꽃창포와 창포는 같은 식물?

마트나 시장에 가면 창포가 들어 있다고 홍보하는 비누나 샴푸를 쉽게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창포가 아닌 식물을 창포라고 홍보하는 제품도 있답니다. 창포는 천남성과에 속하는 식물로, 잎 사이로 비스듬히 원기둥 모양의 황색 꽃을 피워요. 그런데 시중에 판매되는 창포비누나 창포샴푸 중에서는 창포가 아닌 꽃창포를 그려넣은 제품들이 있습니다. 이름이 비슷하다 보니 창포와 비슷한 식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꽃창포는 붓꽃과 식물로, 창포와는 거리가 먼 식물이에요. 단옷날 전통 체험을 하는 행사에서는 창포 대신 노란꽃창포를 푼 물에 머리를 감기도 하는데, 노란꽃창포도 붓꽃과 식물로, 창포와 전혀 다른 식물입니다.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