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예술가의 독특한 일상, 사진에 담아냈어요

입력 : 2017.05.20 03:07

[토드 셀비의 '즐거운 나의 집' 展]

미국 사진작가 토드 셀비
동료 예술가의 작업실, 일상생활… 사진과 숨겨진 이야기 함께 소개

괴짜 영화감독 로이드 코프먼부터 친환경 디자이너 콘로이까지
익살스러운 모습 잘 잡아냈죠

미술관에 전시된 근사한 작품을 보면 '이 작품은 대체 어떻게 만든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리고 예술가가 어떤 작업실에서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작품을 만들지 않는 일상생활에선 어떤 모습일지 슬쩍 궁금해집니다. 아마 예술가의 작업실은 전시장과는 완전히 다를 거예요.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여기저기 낙서와 밑그림이 붙어 있을 거고, 만들다가 관둔 작품들과 온갖 잡동사니 물건이 널려 있을지도 몰라요.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전시회 'The Selby House: #즐거운_나의_집' 이 오는 10월 말까지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열린답니다. 전시회에 가면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사진작가 겸 예술가 토드 셀비(Todd Selby)의 그림과 사진, 설치물을 통해 여러 예술가가 작업하는 모습과 그들의 작업실 풍경, 일상적인 공간들을 볼 수 있어요. 미술관에서 예술가들의 개인 공간을 구경할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기회랍니다.

작품1~4
[작품1] '자신의 농장에 있는 암비카 콘로이', Woodridge, 뉴욕, 2013년. [작품2] '자신의 레스토랑에 있는 에릭 워너', Hartwood, Tulum, 멕시코, 2011년. [작품3] '트로마 본부에 있는 로이드 코프먼', 뉴욕, 2016년. [작품4]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양이와 다른 동물들', 2016년, 일러스트레이션.
셀비는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해요. 특히 패션 디자이너, 음악가, 모델, 수집가, 작가, 배우 등 창조적인 일을 하는 친구들의 방이나 작업 공간, 부엌, 서재의 모습을 사진에 담지요. 셀비는 친구들의 일상적 공간을 담은 사진과 공간에 숨겨진 이야기를 적어 웹 사이트에 소개하면서 인기를 얻고 유명해졌답니다.

셀비는 남들이 포착하지 못하는 재미있는 표정이나 이야깃거리를 잡아내는 재능이 있어요.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이미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사진작가로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냈답니다. 그럼 셀비가 찍은 친구들의 공간을 구경해볼까요?

작품3의 주인공은 '트로마 영화사' 대표이자 괴짜 영화감독인 로이드 코프먼(L. Kaufman)입니다. 영화 소품에 둘러싸여 마치 장난감 가게에 온 어린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이에요. 코프먼은 영화를 만들 때 주어진 예산, 배우의 연기력, 좋은 대본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그럼 도대체 뭘 신경 쓰며 영화를 만드냐고요? 이런 질문에 코프먼은 "끝을 내는 것"이라고 답했어요. 어떨 때는 "화장실이 얼마나 편리한가가 영화 제작의 핵심"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지요. 괴짜 감독다운 답변이죠?

코프먼의 이런 엉뚱한 모습에 영감을 얻은 셀비는 그의 사진을 이렇게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연출했습니다. 사진의 액자에 들어간 그림은 셀비가 직접 그린 거예요. 그림 속 괴물들은 훗날 코프먼이 만들 영화에 등장할지도 모르죠.

작품2의 주인공은 멕시코에서 야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리사 워너(E. Werner)예요. 음식을 요리하는 주방이 탁 트인 하늘 아래 자리하고 있습니다. 밤이 되면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요리할 수도 있대요. 작업대 위에는 조리되지 않은 음식 재료가 놓여 있고, 워너의 등 뒤로 장작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레스토랑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낮에는 햇빛, 밤에는 달빛과 장작불, 등잔불을 이용한대요. 이 레스토랑에 가면 문명화되지 않은 자연에서 독특한 음식과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을 거 같아요.

작품1의 주인공 콘로이(A. Conroy)는 친환경 방식으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입니다. 콘로이는 털이 많은 동물 열여섯 마리와 함께 살고 있어요. 토끼, 염소, 양도 있고 앙고라도 키운대요. 콘로이는 매년 자신과 함께 사는 동물들의 털을 깎아 실을 만들고 모자와 스웨터를 짭니다. 털옷을 염색할 때도 천연 재료를 사용하지요. 작품 속에서 콘로이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고집스레 버티는 양을 끌고 있어요. 콘로이의 양은 주인에게 털을 뺏기고 싶지 않은가 봐요.

작품4는 셀비가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동물마다 특징을 살려 개성 있게 표현한 그림이 참 정겹게 느껴져요. 셀비가 대상의 특징과 개성을 얼마나 잘 포착하는지도 알 수 있고요.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도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인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어요.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