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2000년 전 중국 비단이 로마로 건너간 6400㎞ 길

입력 : 2017.05.18 03:11

[실크로드]

중국 한나라 때 개척된 실크로드, 고대부터 중동·유럽까지 이어져
동·서양 문명간 교역의 축… 13세기 몽골 제국 때 교류 번창
동양서 발명된 종이·화약·나침반… 실크로드 거쳐 서양에 전해졌어요

최근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대규모 경제·외교 프로젝트 참여를 권유하고 있어요. 과거 동양과 서양이 실크로드로 이어졌듯이, 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나아가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육로와 해로를 잇고 철도와 송유관 등을 설치해 경제 협력을 넓혀가자는 겁니다. 그래서 일대일로를 '신(新) 실크로드'라고도 부르지요.

지난 14일부터 이틀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 포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약 8500억위안(약 138조 5500억원)을 이 프로젝트에 추가로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큰돈을 써가며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건과 한 무제가 교역로를 열다

실크로드가 문을 연 건 고대 중국 한나라의 무제 때입니다. 중국 북쪽 고원·사막지대를 차지하고 있던 유목민족 흉노족과 대립하던 한나라는 흉노보다 더 서쪽에 있는 '월지'라는 나라가 흉노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에 한 무제는 월지와 손을 잡고 흉노를 치기로 결심하였지요.

과거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이었던 중국 간쑤성 둔황 부근 밍사산의 모습이에요.
과거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이었던 중국 간쑤성 둔황 부근 밍사산의 모습이에요. 과거에는 교역 상인들이 이 부근을 지나다녔지만, 최근에는 밍사산을 구경하려는 관광객이 더 많지요. /조선일보 DB
하지만 월지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게다가 중국 서쪽은 티베트 고원과 높은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월지로 가려면 흉노족이 차지하고 있는 고원·사막지대를 반드시 지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하도 선뜻 월지에 사신으로 가겠다고 나서지 않았지요.

이때 장건(?~기원전 114년)이라는 신하가 월지에 사신으로 가겠다고 나섰어요. 무제의 허락을 받은 장건은 100여 명의 병사를 데리고 월지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흉노족에게 붙잡혀 억류되고 말았어요. 그렇게 10여년간 흉노족과 어울려 살던 장건은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흉노족 땅을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가 아닌 서쪽으로 향했어요. '월지와 동맹을 맺고 오겠다'는 한 무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수십 일간 여러 나라를 거쳐 파미르 고원을 지난 장건은 마침내 월지에 도착하였지요. 이 무렵 월지는 흉노와 주변 강대국을 피해 오늘날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비옥한 땅과 평화로운 생활에 젖은 월지 사람들은 흉노족과 전쟁할 마음이 사라져버린 상태였습니다. '한나라와 힘을 합쳐 흉노를 공격하자'는 장건의 제안도 거절하였지요.

어쩔 수 없이 장건은 한나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흉노족에 붙잡혔다 1여년 만에 탈출한 장건은 '월지와 동맹을 맺겠다'며 떠난 지 13년 만에 한나라 수도 장안에 도착하였어요. 장건은 한 무제에게 13년간 자신이 직접 살펴본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대해 자세히 보고했습니다.

실크로드
장건의 말을 들은 한 무제는 군사를 일으켜 흉노족을 더 북쪽으로 몰아내고 중앙아시아로 나아가는 길을 개척했어요. 이어 중앙아시아에 있던 여러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고 교역을 시작했지요. 이렇게 장건과 한 무제가 개척한 교역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번창했고, 서아시아와 유럽의 로마 제국까지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크로드예요. 총 길이 약 6400㎞에 이르는 실크로드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유라시아 대륙의 동과 서를 잇는 교역로로 번창했습니다.

◇로마 제국까지 전해진 중국의 비단

이 길이 실크로드로 불리게 된 건 수많은 교역품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비단이 이 교역로를 통해 서역으로 많이 수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아시아 여러 나라뿐 아니라 로마의 귀족도 비단의 뛰어난 품질과 아름다운 자태에 홀딱 빠졌거든요. 비단이 얼마나 인기가 높았던지 1세기 무렵 로마의 지식인 플리니우스는 "비단 수입에 엄청난 돈이 낭비되고 있다"며 한탄했고,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재정난을 막기 위해 비단 수입을 규제하고 황후도 비단 옷을 입지 못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이미 실크로드에서는 수많은 교역품과 어마어마한 돈이 오갔던 거예요.

4~8세기 무렵에는 이란계 소그드 상인이 실크로드로 활발히 무역을 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지요. 소그드 상인은 중국 서북쪽 지역까지 진출해 근거지를 마련하고 아예 중국에 정착해 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강, 석, 안 등을 자신의 성씨로 삼았는데, 8세기 중반 중국 당나라의 몰락을 열었던 '안사의 난'(755년)의 주인공 안녹산(安祿山·703?~757년)도 바로 소그드 상인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안록산 본인도 6개 국어에 능통하고 실크로드를 통해 한족과 이민족 간의 중개 무역을 하던 상인이었고요.

◇동서 문명 교류의 축이 되다

실크로드는 동양 문명과 서양 문명이 각자의 문물을 전하는 문화 교류의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 발명된 제지술이 이슬람 세계와 유럽에 전해진 것도 실크로드 덕분이었어요. 8세기 무렵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와 중국 당나라가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의 주도권을 두고 맞붙은 탈라스 전투에서 당나라 제지 기술자들이 포로로 붙잡힌 것이 계기가 되어 종이가 중동 지역에 전파되었습니다. 제지술이 다시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비로소 서양 문명도 종이를 사용하게 되었지요.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무역이 더 활발해졌습니다. 베네치아 출신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 원나라에 도착해 쿠빌라이 칸을 만난 것도 이 시기였지요. 더불어 이 시기에 중국에서 발명된 화약과 나침반이 유럽에 전해졌고, 이는 15세기 대항해 시대의 근간이 되었어요.이때부터 동양 문명에 뒤처져 있던 서양 문명이 힘과 기술을 길러 훗날 동양 문명의 힘을 앞지르게 되었지요.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과 교류가 동서 문명의 힘의 균형을 뒤집어버린 셈입니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내세우는 것도 어쩌면 새로운 실크로드로 국제사회의 중심을 다시 아시아로 돌리려는 건 아닐까요?

윤형덕 공주 한일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