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행복·사랑·그리움… 가족을 작품에 담은 예술가들

입력 : 2017.05.13 03:06 | 수정 : 2017.05.24 17:43

[예술가와 가족]

스웨덴 국민화가 칼 라르손, 가족과의 아침 식사 화폭에 담아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의 '가족상', 청동으로 진한 가족애 표현
19세기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은 혁명가 기다린 가족의 모습 그렸죠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어릴 적 가족과 함께한 경험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결정한다"고 말했어요. 가족이 한 개인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주며, 우리 모두 행복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예술가도 예외가 아니지요. 뛰어난 예술가들은 가족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고, 작품 속에 가족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작품1은 '스웨덴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칼 라르손이 자신의 가족을 그린 그림입니다. 라르손의 가족이 정원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평화롭게 아침 식사를 하고 있군요. 한눈에 봐도 단란하고 행복한 모습입니다. 반려견도 나란히 식탁 의자에 앉아 식사하는 모습이 정겨워요.

[작품1] 칼 라르손,‘ 큰 나무 아래서의 아침 식사’, 1896년. [작품2] 배운성,‘ 가족도’, 1935년. [작품3] 헨리 무어,‘ Family group’, 1949년. [작품4] 일리야 레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1888년.
[작품1] 칼 라르손,‘ 큰 나무 아래서의 아침 식사’, 1896년. [작품2] 배운성,‘ 가족도’, 1935년. [작품3] 헨리 무어,‘ Family group’, 1949년. [작품4] 일리야 레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1888년.
그림 속 소박하고 아름다운 집은 라르손이 실제로 살았던 집입니다. 라르손은 7명의 자녀가 자유롭게 뛰어놀며 자랄 수 있게 평범한 목조 전원주택의 외관과 실내 장식을 아내와 함께 고쳤어요. 지금도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라르손 양식'이라고도 부르는 스칸디나비아식 전통 목조 주택과 가구, 실내 장식을 보기 위해 라르손의 집을 찾고 있답니다.

가족을 몹시 사랑한 라르손은 행복한 가족생활을 그림에 담아 '나의 가정'이라는 책을 펴냈어요. 이 그림책은 인기가 아주 많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군인들이 성경과 이 책을 보며 '언젠가 행복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라고 위안을 받았다는 일화도 전해져요.

작품2는 등록문화재 제534호로 지정된 배운성 화가의 그림입니다. 한국의 전통 주택과 한 대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한가운데 집안의 최고 어른인 할머니가 손주를 안고 앉아 있습니다. 할머니를 중심으로 자식과 손주들이 둘러서 있고 반려견의 모습도 보여요.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였던 1935년 독일에 있던 배 화가가 후원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린 거예요. 그림 속 사람들은 배 화가의 후원자와 그 가족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배운성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독일에 유학을 가 미술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유럽으로 유학 간 최초의 한국인 화가가 되었지요.

이 작품은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한국인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사료이기도 합니다. 그림 왼쪽 남자와 할머니 옆에서 신발끈을 매고 있는 소년은 한복을 입었지만 신발은 서양식 구두를 신었어요. 이 무렵 우리의 전통문화와 서양 문물이 만나 뒤섞여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 근대 조각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헨리 무어(1898~1986)는 '가족은 한 핏줄이며 사랑의 공동체'라는 메시지를 작품3에 담았어요. 아빠와 엄마가 사랑스러운 아기를 품에 안고 정답게 벤치에 앉아 있는 조각상입니다. 이 조각상을 보고 있으면 한 쌍의 젊은 부부가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아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느껴져요.

청동으로 만든 이 조각상은 모나거나 거친 느낌이 들지 않아요. 무어는 인체의 부드러운 곡선을 조각상에 그대로 담아 정겹고 포근한 느낌을 살렸습니다. 눈·코·입과 몸은 단순하고 간결하게 표현해 생명의 에너지가 더 잘 느껴지도록 강조했어요. 이렇게 선과 모양, 재료의 조화를 통해 무어는 진한 가족애를 감동적으로 표현했어요.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세 사람은 마치 한 몸처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아빠의 오른손은 엄마의 왼쪽 어깨에 다정하게 얹혀 있고, 왼손은 아이의 다리를 살며시 붙들고 있어요. 엄마는 두 팔로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 무어는 "엄마와 아빠의 팔이 아이의 몸에 3개의 매듭을 짓는 모양새가 된다. 3개의 매듭은 가족 간 단결을 의미한다"고 말했답니다.

작품4는 19세기 말 러시아 거장 일리야 레핀(1844~1930)이 그린 그림입니다. 한 남자가 거실에 들어오는 순간 방에 있던 가족이 깜짝 놀라거나 당황하고, 기뻐하는 극적인 모습을 그렸어요. 방에 들어온 남자는 차르(과거 러시아제국을 다스리던 황제)의 전제정치에 맞서 싸웠던 혁명가입니다. 오랜 시간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집에 돌아온 것이죠.

이 무렵 러시아에서는 많은 지식인과 학생이 차르의 전제정치에 맞서 자유주의 운동을 펼치며 개혁을 요구했어요. 그러다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하거나 머나먼 시베리아로 유배되기도 했습니다. 그림 속 가족은 생사를 알 수 없던 혁명가가 집에 돌아오니 놀라는 동시에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는 듯합니다. 남자는 담담해 보이지만 그림을 쭉 보고 있으면 불의에 맞서는 강인한 혁명가도 가족의 품을 그리워했다는 걸 느낄 수 있지요.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에게 가족은 피난처이자 휴식처'임을 깨닫게 해주는 그림입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