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우디·라따뚜이… 만화 속 주인공들 모두 모였어요

입력 : 2017.04.29 03:03

[픽사 애니메이션 30주년 특별전]

디즈니사 그만두고 나온 존 래시터
스티브 잡스와 함께 '픽사' 설립… '토이 스토리' 등으로 대성공

조이트로프와 스토리보드 등 캐릭터가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예술과 기술이 협동한 작품이죠

만화나 인형이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장면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animation)'에 푹 빠진 소년이 미국에 있었어요. 디즈니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빠짐없이 챙겨보며 자란 이 소년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께 "어른이 되면 디즈니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지요.

디즈니가 세운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 입학한 소년은 주말이면 디즈니랜드에서 손님을 안내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디즈니사에 들어갔습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 존 래시터(John Lasseter). 오늘날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래시터는 '디즈니사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이뤘지만, 정작 디즈니사에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매번 받아들여지지 않아 크게 좌절했어요. 결국 디즈니사를 그만두고 다른 영화사에서 일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마침 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가 그 영화사의 컴퓨터그래픽 팀을 인수하려고 했어요. 이때 래시터를 만난 잡스는 그의 재능을 확신하고 컴퓨터그래픽 팀을 인수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독립시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Pixar)'가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되었어요.

작품1~4
[작품1] 워런 트레제밴트(Trezevant) 디자인, 로렌 카펜터(Carpenter) 기술, 마이크 크럼회프너(Krummhoefener) 외 11인 모형제작,‘ 조이트로프’, 2005. [작품2] 할리 제섭(Jessup) 그림, 엔리코 카사로사(Casarosa) 색채배치,‘ 컬러스크립트습작: 라따뚜이를 만드는 레미’,‘ 라따뚜이’, 2007. [작품3] 제임스 로버트슨(Robertson) 그림, 앤드루지메네즈(Jimenez) 불빛효과,‘ 스토리보드: 덤프’, ‘토이 스토리3’, 2010. [작품4] 앨버트 로자노(Lozano),‘ 슬픔이’,‘ 인사이드 아웃’, 2015.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픽사 애니메이션 30주년 특별전’
이후 래시터는 픽사 스튜디오에서 자신이 꿈꾸던 애니메이션을 마음껏 만들었고,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비롯해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사이드 아웃' 등 숱한 인기 애니메이션을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래시터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제작자가 되었지요.

지난 15일부터 오는 8월 8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픽사 애니메이션 속에서 만났던 그리운 주인공들과 명장면들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린답니다.

작품4는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여러 감정 중 하나인 '슬픔이'라는 인물을 색연필로 그린 거예요. 단순하고 그리기 쉬워 보이는 밑그림처럼 보이지만, 이 밑그림이 나오기까지 많은 노력이 따랐어요.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수백 장의 밑그림을 그려야 비로소 탄생하곤 하거든요.

픽사에서는 컴퓨터로 모든 작업을 할 것 같지만, 사실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연필이나 파스텔로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한 후 작품2(영화 '라따뚜이'에서 쥐가 요리하는 장면)처럼 디지털 색채작업을 통해 영화에 흐르는 전체적인 색의 느낌과 조명의 분위기를 미리 살펴보지요.

평면에 그려진 그림이 어떻게 입체적인 인물로 살아나 움직이고 말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작품1은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보여주는 장치예요. 커다란 회전판에 '토이 스토리' 주인공들이 둥그렇게 놓여있는데, 회전판이 빙글빙글 돌아가면 주인공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순히 회전만 하는 게 아니라 깜빡거리는 강렬한 불빛이 어우러져 우리의 눈을 완벽하게 속이지요.

조이트로프(zoetrope)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19세기 영국에서 발명되었어요. 당시 조이트로프는 보는 이의 눈에 착각을 일으켜 정지된 인형이 움직이는 것 같은 환영을 만들어냈어요. 영화가 발명되기 전에도 사람들은 이미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활용하고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조이트로프는 미국에서도 장난감으로 판매되어 엄청난 인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야기 구성과 공간 구성도 중요해요. 작품3은 영화 '토이스토리3' 제작 과정에서 만들어진 '스토리보드(storyboard)'입니다. 그림을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배치한 판이지요. 한 판에는 여러 칸의 개별 이미지들이 있는데, 이 칸들이 마치 만화책을 보는 것처럼 서로 연결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공간 구성은 애니메이션 속 세상을 꾸미는 일이에요. 보는 사람이 그림을 입체 형태로 느낄 수 있게 디지털 기술력이 동원됩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대형 화면을 통해 아트스케이프(artscape·그림 속의 풍경) 속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해두었어요. 그림 속 세상이 깊숙하고 넓게 펼쳐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답니다.

래시터는 "예술은 기술을 발전시키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라고 말했어요. 예술과 기술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애니메이션은 예술과 기술이 창의적으로 협업하여 이루어낸 예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은 어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 싶나요?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