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기계와 인간의 만남'… 인류의 미래 그린 걸까

입력 : 2017.04.22 03:06

[기계를 사랑한 예술가들]

현대미술의 혁명가 마르셀 뒤샹, 인간의 동작을 기계처럼 표현
'튜비즘' 창시한 프랑스 화가 레제, 기계가 만들 장밋빛 미래 그려
기계·생명의 융합 다룬 작품들… 4차 산업혁명 아이디어 담겨있죠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 생명과학의 발전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 인간과 기계는 더 가까워질 듯합니다. 지능을 가진 똑똑한 기계들이 등장하고 우리 몸에 초소형 기계나 칩을 심는 일도 가능해질 거예요.

예술가 중에서는 일찍이 인간의 특성과 기계의 특성이 융합(融合·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쳐짐)될 것을 내다보고 자신의 작품에 표현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현대미술의 혁명가'로 불리는 마르셀 뒤샹(Marc el Duchamp·1887~1968)입니다.

뒤샹이 그린 작품2는 한 여자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표현한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아닌 기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하는 기계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은 뒤샹은 이렇게 인간의 몸동작을 금속기계가 작동하듯 표현했어요.

작품1~4
[작품1] 페르낭 레제, 기계공, 캔버스에 유채, 92X70㎝, 1920. [작품2] 마르셀 뒤샹, Nude Descending a Staircase(No. 2), 캔버스에 유채, 147 x 89.2㎝, 1912. [작품3] 최우람, Custos Cavum, metalic material, machinery, custom CPU board, LED, 220(h)x360(w)x260(d)㎝, 2011. [작품4] H.R.기거, Necronom IV, 나무에 아크릴 채색, 150x100㎝, 1976.
뒤샹이 활동하던 20세기 초는 기계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기였어요. 뒤샹은 이때 등장한 기계의 형태와 강함, 단순함과 규칙성, 에너지와 속도, 편리함에 매혹되었지요. 그래서 여러 작품을 통해 '기계미(機械美·기계가 지닌 기능성·합리성 등에서 생겨나는 아름다움)'를 나타냈습니다.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Fernand L�ger·1881~1955)도 뒤샹처럼 기계의 매력에 푹 빠졌던 인물입니다. 레제가 그린 작품1에는 기계를 점검하고 정비하는 기술자가 있어요. 레제는 기술자의 모습을 실제 모습대로 그리지 않고 마치 금속로봇처럼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레제가 기계적 특성으로 사람을 표현한 것을 미술사에서는 '원통주의(튜비즘·Tubisme)'라고 불러요.

1920년대에 활동했던 레제는 기계가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기계 덕분에 인간은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고,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이룰 거라 예상한 것이죠. 이 그림을 통해 레제는 기계와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가 새로운 시대의 주축이 될 것이라는 자신의 이상을 표현하였어요.

스위스의 작가 한스 루디 기거(Hans 'Ru edi' Giger·1940~2014)는 한발 더 나아가 인간과 기계를 합쳐 괴기한 생명체를 창조했어요. 작품4는 인체의 해부학적 특성과 기계공학적 특성이 융합된 생명체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SF(science fiction·공상 과학) 영화 '에일리언(Alien)'을 본 적이 있다면 이 괴물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기거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외계생명체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에도 참여하였어요. 예민하고 내성적이었던 기거는 어릴 적부터 자주 무서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본 이미지와 심해에 사는 갑각류 동물 등의 형태를 결합해 이렇게 무시무시한 괴생명체를 만들어냈어요. 기거의 '에일리언'은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두려움과 공포를 상징합니다.

영화 '에일리언'이 전 세계에 흥행하면서 기거는 1980년 아카데미 영화제 시각효과상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기거는 '바이오메카닉스(Biomechanics·생물체의 움직임과 기계공학적 원리를 혼합)의 창시자' '에일리언의 아버지'라는 찬사를 받고 있어요.

한국의 최우람 작가는 '기계생명체'를 창조했어요. 작품3은 금속으로 만든 작품이지만 살아 있는 생물로 착각할 만큼 숨도 쉬고 관절을 움직여 이동하기도 합니다. 최 작가는 이 기계생명체에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 um·구멍의 수호자)'이라는 학명(學名·학술적 편의를 위해 동식물 따위에 붙이는 라틴어 이름)도 지어줬어요. 쿠스토스 카붐은 최 작가가 스스로 만들어낸 신화 속에서 다른 두 세계를 잇는 구멍이 닫히지 않도록 지키는 수호자입니다.

최 작가의 할아버지 최무성은 한국 최초의 자동차인 '시발(始發)차'를 만든 엔진 기술자였어요. 최 작가의 부모님은 서양화를 전공하였고요. 자연히 최 작가는 어릴 적부터 과학과 예술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로봇을 좋아해 로봇과학자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의 로봇 사랑은 변함이 없었어요. 로봇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2년간 로봇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면 우리 주변의 풍경도 많이 달라질 거예요. 그리고 달라진 일상 풍경은 예술의 새로운 소재가 될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 기계들이 명작에 등장하게 될지 몹시 기대돼요.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