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동물 이야기] 계절 따라 대륙 횡단… 한 동굴에 2000만마리 모여 살아요

입력 : 2017.04.21 03:09

'철새 박쥐'

브라질자유꼬리박쥐는 남아메리카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미국 중부 이남으로 이주합니다.
브라질자유꼬리박쥐는 남아메리카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미국 중부 이남으로 이주합니다. /ITU Pictures·Flickr
하늘을 나는 박쥐는 조류가 아닌 포유류 동물입니다. 포유류 중에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동물이에요. 지구에는 약 1000종의 박쥐가 있는데 대부분 한 지역에 머물러 삽니다. 그런데 철새처럼 계절에 맞춰 사는 곳을 옮겨다니는 '철새 박쥐'도 있어요. 남아메리카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미국 중부 이남으로 올라오는 브라질자유꼬리박쥐(Brazilian Free-Tailed Bat)가 대표적이지요.

몸길이 9㎝, 몸무게는 12.3g으로 참새의 절반 크기밖에 되지 않는 브라질자유꼬리박쥐는 한 동굴에 무려 2000만마리가 바글바글 모여 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시 변두리의 좁은 자갈길을 벗어나 선인장과 삼나무 숲을 지나면 지름 18m의 싱크홀(sink hole)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브라질자유꼬리박쥐 2000만마리가 모여 사는 브래컨(Bracken) 박쥐 동굴의 입구입니다.

해 질 녘이 되면 이 싱크홀에서 박쥐 2000만마리가 쏟아져 나와 근방 숲을 헤집고 다니며 곤충을 쏙쏙 잡아먹어요. 뼈가 아주 유연해 새보다 더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송곳처럼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로 먹이를 먹어요. 드넓은 옥수수밭에 사는 해충도 녀석들의 먹잇감입니다.

어스름한 저녁과 새벽까지 날아다니며 배를 채우다가 날이 새면 다시 동굴로 돌아가요. 동굴로 돌아오면 1㎡에 5000마리가 다닥다닥 붙어 서로의 체온으로 서늘한 동굴의 추위를 견딥니다. 이 녀석들만큼 대규모로 빼곡하게 모여 사는 포유류 동물은 없어요. 발톱을 동굴 바위틈에 끼워 오므린 뒤 거꾸로 매달려 휴식을 취합니다.

브라질자유꼬리박쥐는 다른 박쥐처럼 음파를 발사한 다음 반사된 음파를 통해 물체와 물체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날개 역할을 하는 피부막은 찢어져도 곧잘 재생되어요. 거미줄처럼 얽힌 실핏줄은 체온조절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요. 몸은 황갈색을 띠는데 햇빛을 받으면 금빛에 가까워집니다. 앞발가락은 앞발보다 더 길고, 뒷발은 아주 짧습니다. 보통 8년 정도 사는데 새끼는 태어난 지 아홉 달이 지나면 어른 박쥐가 되어요.

텍사스주 오스틴시 시내로 나가 다리에 서 있으면 브라질자유꼬리박쥐 150만마리가 하늘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장관을 볼 수 있어요. 뉴멕시코주에서도 이 박쥐가 많이 날아다니지요. 덕분에 두 곳은 박쥐를 보려는 관광객이 몰려듭니다. 2000만마리가 모여 있는 브래컨 동굴 지역은 박쥐 보전을 위해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놀랍도록 정교한 비행을 하는 박쥐지만 매나 부엉이, 주머니쥐, 스컹크, 너구리 등 천적이 많아요. 하지만 박쥐의 생존을 위협하는 건 천적보다 사람입니다. 농사를 지으며 살충제를 쓰면 곤충이 줄어 박쥐가 먹을 것도 줄어들어요. 브라질자유꼬리박쥐는 대규모로 몇 군데 모여 살기 때문에 서식지 한 곳이 파괴되기라도 하면 많은 개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옛날엔 박쥐가 흔했지만, 지금은 서식지가 파괴되어 박쥐를 보기 어려워졌어요. 해충을 잡아먹으며 어둠을 지키는 박쥐는 인간에게도 이롭고,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도 보존 가치가 큰 동물입니다.

김종민 前 국립생태원 생태조사본부장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