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뇌가 보낸 전기 신호 분석해 손·팔 움직이게 해요
[신경 보철 장치]
교통사고로 전신 마비된 환자… 뇌에 센서, 팔·손가락에 전극 이식
센서가 뇌파 포착해 컴퓨터로 전송
환자가 원하는 동작 알아내고 손·팔 움직이도록 전기자극 보내
기계 팔 이식·사이보그에 활용될 듯
최근 개봉한 영화 '공각기동대'의 주인공 '메이저(스칼릿 조핸슨)'는 뇌와 척수 일부를 제외한 신체가 기계로 이루어진 사이보그입니다. 특수요원으로 활동하며 강력 범죄와 테러 사건을 해결하는데 필요에 따라 기계 몸을 바꾸기도 하고, 뇌에 든 정보를 곧장 컴퓨터로 전송해 저장하거나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뇌에 직접 입력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영화 속 사이보그가 현실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지난달 28일(미국 현지 시각) 발표되었어요. 2006년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 빌 코체바(56)씨가 지난해 11월 '몸을 움직인다'는 생각만으로 자신의 손과 팔을 움직여 혼자 커피를 마시고 으깬 감자를 떠먹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팔을 펴 물건을 잡거나 손가락으로 코를 긁는 동작을 하기도 했지요. 이는 다른 전신마비 환자들에게도 큰 희망을 주는 소식이기도 했습니다. 대체 코체바 씨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끊어진 신경을 전극으로 잇다
약 2년 전 코체바씨는 자신의 뇌에 센서를, 마비된 팔과 손가락에 전극을 심는 수술을 받았어요.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연구팀이 전신마비 환자를 위해 개발한 '신경 보철(補綴·상한 부위를 고쳐 바로잡거나 여러 재료로 대체물을 만들어 빈곳을 메움) 장치'를 이식받은 것입니다.
코체바씨의 뇌에 부착된 센서는 대뇌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포착해 컴퓨터로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대뇌는 우리 몸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부위고, 뇌파는 뇌에서 신호가 전달될 때 발생하는 전기 흐름이에요. 코체바씨가 몸을 움직이려고 생각하면 대뇌에서 이런 지시를 내리는 뇌파가 발생하는데, 센서가 이 뇌파를 포착해 컴퓨터로 보내는 것입니다.
- ▲ 그래픽=안병현
코체바씨의 손가락과 팔꿈치, 어깨 근육에는 36개의 전극이 이식되었는데, 전극들은 전선과 연결되어 각 부위에 전기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외부에서 전극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그 부위의 근육이 수축되면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팔목에는 보조 기계를 설치해 코체바씨가 더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왔어요.
신경 보철 장치는 코체바씨의 뇌파를 분석한 다음, 코체바씨가 원하는 동작을 알아내어 그에 맞는 신체 부위가 움직이도록 전기 자극을 보냈어요. 가령 코체바씨가 엄지와 검지로 컵 손잡이를 잡으려고 생각하면, 이때 발생하는 뇌파를 포착해 코체바씨의 엄지·검지에 전기 자극을 주어 두 손가락이 움직이도록 한 것이죠. 이렇게 코체바씨는 12번의 움직임을 시도하여 11번 자신이 원하는 동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과학과 환자의 훈련이 만들어낸 기적
신경 보철 장치는 '인공 신경'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손상된 신경을 대신해 두뇌의 지시와 신체 부위를 연결해주었으니까요. 연구팀은 신경이 손상되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더라도, 뇌의 운동영역은 정상적으로 작동된다는 점을 활용해 이런 장치를 만들 수 있었어요.
하지만 코체바씨가 신경 보철 장치를 이식받자마자 곧바로 움직일 수 있었던 건 아니에요. 신경 보철 장치를 활용하기 위해 4개월간 가상현실(VR)에서 손목을 비틀거나 손을 움켜쥐는 생각을 하는 훈련을 받았어요. 또 18주간 하루 8시간씩 근육에 연결된 전극을 통해 근육을 자극하는 훈련도 하였고요. 그 결과 한 번 움직일 때 20~40분이 걸렸지만, 코체바씨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기적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신경 보철 장치를 이식받은 지 717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죠.
코체바씨는 "앞으로 집에서도 신경 보철 장치를 쓴다면 매일 신나게 새로운 일을 시도할 것"이라는 벅찬 소감을 밝혔어요. 전문가들은 "코체바씨가 앞으로 팔을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기계 팔 이식·사이보그도 등장할까
신경 보철 장치 기술은 아직 완벽한 수준은 아니에요. 코체바씨도 12번 중 1번은 원하는 동작을 하지 못했고, 동작을 취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상황입니다. 스티브 펄머터 미국 워싱턴대 의대 교수는 "뇌 신호를 컴퓨터에 보내주는 기술과 인공관절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신경 보철 장치가 전신마비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습니다.
앞으로 이 기술이 더 발전하면, 마비 환자도 정상인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일이 가능해질지 몰라요. 현재 신경 보철 장치는 센서와 외부 전선, 컴퓨터로 이루어져 있어 활동에 제약이 따르지요. 하지만 각 장치의 부피를 줄여 두뇌와 근육에 이식하고, 장치들이 모두 무선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마비 환자도 정상인과 다름 없이 활동할 수 있게 될 거예요.
나아가 기계로 만든 팔·다리를 사람의 몸에 이식하고 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처럼 두뇌와 척수를 제외한 신체가 기계로 이루어진 사이보그가 실제로 등장할 가능성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