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주도권 다툰 두 강대국, 전쟁으로 같이 무너졌어요

입력 : 2017.04.13 03:09

[투키디데스 함정]

패권국 스파르타와 신흥국 아테네… 주도권 두고 펠로폰네소스전쟁
시칠리아 원정 실패한 아테네, 페르시아 손잡은 스파르타에 항복
스파르타가 다른 도시국가 괴롭혀 고대 그리스 세계 몰락했어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가졌어요. 이번 회담에 앞서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와 시진핑은 어떻게 전쟁에 빠져들 수 있는가'라는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이 글에서 앨리슨 교수는 "두 강대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두 나라 간 관계를 잘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서 기존의 강대국이 새로운 강대국을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주장을 압축한 말입니다. 투키디데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벌어졌던 펠로폰네소스전쟁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대요. 펠로폰네소스전쟁 무렵 그리스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아테네의 부상을 두려워한 스파르타

기원전 5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는 여러 도시국가(폴리스)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이 중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특히 강력했습니다. 아테네는 기원전 5세기 초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급격히 힘을 키운 신흥 강국이었어요. 아테네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도시국가들을 모아 델로스동맹을 만들고 맹주가 되었습니다. 그러곤 에게해에 있는 델로스 섬에 동맹국의 공동 자금을 모아 관리하였는데, 아테네 지도자 페리클레스(Perikles)는 이 자금으로 아테네 공직자의 임금을 올리고 대함대를 만들어 아테네를 해상 제국으로 발전시켰어요.

이렇게 아테네가 급격히 성장하자 스파르타는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리는 공포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에 '기회가 되면 아테네를 공격해 기세를 꺾어놓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전쟁에 대비해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동맹 자금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도시국가들을 끌어들여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펠로폰네소스동맹을 더 강화하였어요.

그러던 차에 도시국가 '케르키라'와 '코린토스' 간에 분쟁이 일어났고, 두 나라의 요청으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분쟁에 개입하면서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일어났어요. 그리스의 주도권을 두고 두 강대국은 20년 넘게 전쟁을 이어갔습니다.

◇전염병과 시칠리아 원정 실패

당시 아테네는 막강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스파르타는 그리스 내에서 가장 강력한 육군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에 페리클레스는 육상에서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해전으로 스파르타를 꺾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에 아테네의 모든 주민을 성채 안쪽으로 피난시켜 성 안에서 스파르타의 육군을 막고, 바다에는 아테네 대함대를 출격시켰지요.

이 전략은 잘 먹히는 듯했지만 아테네 성채 안에 전염병이 퍼지면서 전세가 역전되었어요. 전염병으로 아테네 인구 약 3분의 1이 죽었고, 전쟁을 지휘하던 페리클레스도 전염병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죠.

전쟁의 주도권을 쥔 스파르타는 맹공을 퍼부었지만 아테네도 끈질기게 저항하였어요. 지지부진한 전쟁에 지친 두 나라는 일시적으로 휴전을 맺었고, 이 시기에 아테네는 다시 국력을 회복하며 스파르타를 공격할 새로운 방법을 궁리하였어요.

그렇게 새로 나온 전략이 이탈리아반도 아래에 있는 시칠리아 섬을 공격하는 것이었어요. 당시 스파르타는 시칠리아 섬에서 식량을 보급하고 있었는데, 이곳을 아테네가 점령하면 스파르타는 식량이 부족해져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명문가 출신의 알키비아데스가 지휘하는 아테네 원정군이 시칠리아 섬 공격에 나섰어요. 알키비아데스는 페리클레스의 조카이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출신으로 화려한 말솜씨와 빼어난 용모를 갖고 있어 인기가 아주 높았어요. 하지만 그만큼 그를 시기하는 사람도 많았지요.

이런 알키비아데스가 지휘관이 되어 아테네를 떠나자 그를 시기하던 사람들이 "알키비아데스가 사실은 큰 죄를 지었다"고 고발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알키비아데스는 처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적국 스파르타로 망명하고 말았어요. 그는 스파르타에 아테네가 세운 작전을 모두 알려주었고, 그 결과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패배한 전쟁

다시 승기를 잡은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공격하였지만, 아테네는 쉽사리 항복하지 않았어요. 스파르타는 결국 페르시아 함대를 끌어들여 아테네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나서야 아테네의 항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한때 나라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벌였던 페르시아 군대를 내전에 끌어들여 승리한 것이죠.

펠로폰네소스전쟁 도중 스파르타 해군과 아테네 해군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에요.
펠로폰네소스전쟁 도중 스파르타 해군과 아테네 해군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에요. /Getty Images 이매진스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패한 아테네는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어요. 델로스동맹은 해체되었고 그리스 내 주도권은 기존의 패권국이었던 스파르타가 홀로 쥐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스파르타는 전쟁 전보다 더 가혹하게 다른 도시국가를 다루었고, 스파르타의 횡포는 또 다른 분쟁을 일으켰어요. 이는 고대 그리스 세계 전체가 모두 몰락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은 승패와 무관하게 그리스 전체가 패배한 전쟁이 된 것이죠.

아테네 장군으로 펠로폰네소스전쟁에 참가했던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책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서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어요. 아테네가 급부상하면서 그리스 내 힘의 균형이 무너졌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스파르타가 전쟁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투키디데스 함정이에요.

투키디데스 함정을 언급한 앨리슨 교수는 "제1·2차 세계대전 등 역사 속 큰 전쟁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여러 이슈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전통의 강대국 미국과 신흥국 중국이 신중하게 갈등을 풀어가도록 우리 정부도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겠어요.



김승호 인천하늘고 역사 교과 교사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