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하나! 둘! 셋! 넷!…" 응급환자 살리는 '4분의 기적'

입력 : 2017.04.12 03:11 | 수정 : 2017.04.13 10:20

[심폐소생술]

심장 박동 멈춘 지 3~6분 지나면 산소 공급 끊겨 뇌 신경세포 손상
환자 발생 4분 안에 응급조치해야

고개 뒤로 젖혀 기도 열어주고 1분에 100~120회 가슴 압박하면 환자 생존율 2~3배 높아진대요

지난달 27일 천안에서 열린 '아디다스 U-20 4개국 축구대회' 대한민국과 잠비아의 경기에서 아찔한 장면이 있었어요. 대한민국 정태욱 선수가 상대 선수의 어깨에 얼굴을 부딪혀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이죠. 다행히 이상민 선수와 김덕철 심판이 달려와 사고가 난 지 10초 만에 응급조치를 취했고, 덕분에 정태욱 선수는 큰 부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가리켜 '4분의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의식을 잃고 심장이 멈춘 응급 환자에게 4분 안에 응급조치만 해주어도 생존율이 2~3배 높아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13.1%(2015년 기준)로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응급조치의 중요성을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심정지 후 3~6분 지나면 뇌 손상 발생

심장과 폐는 우리 몸 구석구석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하는 중요한 기관이에요. 폐는 호흡을 통해 몸 안에 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새로운 산소를 혈액에 공급합니다. 산소는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게 되는데, 혈액이 몸 구석구석으로 잘 퍼지려면 심장이 규칙적으로 펌프질을 해줘야 하지요.

 /그래픽=안병현
/그래픽=안병현
이렇게 호흡과 혈액 순환이 유지되어야 몸에 있는 세포들이 산소를 공급받아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할 수 있어요. 만약 호흡이 잘 안 되거나 혈액이 돌지 않으면 세포들은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게 되고,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세포는 죽게 됩니다.

특히 생명 활동을 총괄하는 뇌는 산소 공급이 중요한 기관입니다. 뇌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채로 3~6분이 넘어가면 뇌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뇌 신경세포가 손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면 뇌 신경세포가 모두 파괴되어 뇌사에 이르거나 목숨을 잃게 돼요.

119구급대가 아무리 빨리 출동해도 보통 사고 현장에 도착하려면 4~5분이 걸리기 때문에 의식이 없거나 호흡·맥박이 없는 응급 환자는 주변에 있는 사람이 신속하게 응급조치를 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잃거나 심한 뇌 손상을 입어 큰 후유증을 앓을 수 있어요.

◇숨 통로 확보하고 흉부 압박

의식 없는 응급 환자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119에 신고하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에게 119 신고를 부탁하고 자동 제세동기를 찾아와달라고 말한 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요. 의식이 있는지, 호흡과 맥박은 정상인지 살펴야 합니다. 맥박은 뛰는데 의식이 없는 경우라면 기도(氣道)만 확보해주어도 뇌 손상을 막을 수 있어요. 기도는 입에서 마신 공기를 폐로 전달하는 통로인데, 뇌에 큰 충격을 받은 환자의 경우 혀와 아래턱이 뒤로 넘어가면서 기도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입을 벌려 이물질을 제거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 기도를 확보할 수 있어요. 정태욱 선수가 쓰러졌을 때도 이상민 선수가 정 선수의 입을 벌리고 혀를 꺼내어 기도를 확보해준 덕분에 큰 부상을 막을 수 있었지요. 일반적으로는 고개를 뒤로 젖히기만 해도 기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맥박이 없다면 심장이 멈춘 상태이기 때문에 기도를 확보하고 흉부 압박까지 해주어야 합니다. 우선 환자를 최대한 평평하고 단단한 바닥에 반듯하게 눕혀요. 단 목뼈나 등뼈가 부러졌을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최대한 옮기지 않은 상태로 응급조치를 해야 합니다. 목뼈나 등뼈가 부러진 환자를 무리하게 옮기면 신경이 손상되어 전신 마비 등이 올 수 있기 때문이죠.

환자를 옮긴 뒤에는 기도를 확보하고 환자의 코를 막고 입으로 2~3회 숨을 불어넣습니다. 그다음 환자의 가슴뼈 아래쪽 중심 부위를 깍지 낀 손으로 빠르고 깊게 눌러 심장 쪽을 압박해줍니다. 이렇게 숨을 불어넣고 흉부 압박 30번을 반복하면 환자의 뇌와 주요 장기에 산소를 공급할 수 있어요.

흉부를 압박할 때는 팔꿈치를 굽혀서는 안 되고, 체중을 실어 가슴 아래 5㎝까지 누른다는 느낌으로 1분에 100~120회를 유지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숨을 불어넣지 않고 흉부 압박만 잘 해주어도 생명을 지키고 뇌 손상도 막을 수 있어요.

◇제세동기 있다면 최대한 활용해야

응급환자가 발생한 장소 부근에 자동 제세동기(除細動器)가 있다면 환자를 살릴 가능성이 더 커져요. 제세동기는 전기 자극을 통해 심장이 원래 리듬을 되찾도록 하여 환자가 혈액 순환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기계입니다.

정상적인 심장에는 미세한 생체 전류가 흐르는데, 이 전류가 심장이 일정하게 뛰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심정지가 나타난 환자는 생체 전류가 불규칙해져 심장이 펌프질하지 못하고 미세하게 떠는 '세동(fibrillation)'이 나타나요. '제세동'은 이 세동을 없애 심장이 제대로 작동하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제세동기를 환자의 몸에 설치해 작동하면 제세동기가 환자의 심장 리듬을 자동으로 점검합니다. 이때 세동이 있다고 확인되면 버튼을 눌러 심장에 전류를 흘려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심장 근육이 수축하면서 혈관으로 혈액을 내뿜고, 전류가 심장이 정상적인 리듬을 되찾도록 도와주지요.

단 제세동기는 외부 자극을 주어도 반응이 전혀 없고 호흡이 없는 심장마비 환자에게만 사용해야 합니다. 또 제세동기는 2분마다 전류를 흘려보내는데, 그 사이에는 심폐소생술을 계속해주어야 하고요. 이런 응급조치만으로도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하니, 심폐소생술과 제세동기 작동법은 꼭 익혀두어야겠지요?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