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옷 바꿔 입듯… 피부 변하면 내 모습도 달라져요

입력 : 2017.04.08 03:10

['내가 사는 피부' 展]

거대 파충류처럼 보이는 영상작품, 실제는 피부·뱀 표피 이미지 합성
피부만 변해도 다른 정체성 드러나…
영수증 드레스와 영국왕 패러디, '제2의 피부' 옷의 의미 보여줘요

여러분에게 피부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내 몸을 감싸는 포장지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와 세상을 나누는 경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어떤 이들은 자신의 피부가 스스로 생각한 자신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피부색 탓에 인종 간의 차별과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서울 소마미술관에서 이달 말까지 열리는 '내가 사는 피부' 전시회에 소개되는 미술가들은 피부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 위해 자신의 피부를 의심하는 태도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작품1 - 김준, ‘레드 스네이크’, 2016년, 2분 16초, 3D 애니매이션.
작품1 - 김준, ‘레드 스네이크’, 2016년, 2분 16초, 3D 애니매이션. /소마미술관 ‘내가 사는 피부’展

작품1은 영상 작품의 한 장면입니다. 거대한 파충류 동물의 붉은 몸뚱이 위로 회색의 뱀 머리 같은 것들이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어요. 사실은 사람의 몸 이미지에 뱀 표피 이미지를 컴퓨터로 덧입힌 모습입니다. 피부의 질감과 색깔만 바뀌어도 사람이 뱀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작품을 보고 있으면 우리를 사람처럼 보이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피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4 - 김일용, ‘존재 없는 존재’, 1999년, 섬유강화플라스틱.
작품4 - 김일용, ‘존재 없는 존재’, 1999년, 섬유강화플라스틱.

작품4는 뚱뚱한 사람의 몸에 직접 석고를 발라 인체의 거푸집을 만든 거예요. 안은 텅 비어 있는 이 거푸집만 봐도 사람의 형상이 떠오릅니다. 피부가 인간의 형태를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작품2 - 정혜경, ‘완벽한 껍데기’, 2017년, 영수증·스테인리스스틸·한지.
작품2 - 정혜경, ‘완벽한 껍데기’, 2017년, 영수증·스테인리스스틸·한지.

피부는 마치 포장지처럼 우리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내장 기관들은 맨눈으로 볼 수 없으니 어쩌면 우리는 늘 몸 바깥을 싼 포장지로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며 살아가는 듯합니다. 피부는 다른 사람의 피부와 닿기도 하고, 다른 물건과 부딪치기도 해요. 그렇게 피부와 피부, 피부와 표면이 서로 맞닿으면 좋은 감정이 들기도 하고 낯설고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그래서 피부는 우리가 바깥세상을 느끼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촉수와 같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과 만나는 경계에는 늘 피부가 있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속이 텅 빈 거푸집은 피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피부는 여러 모습으로 변신할 수도 있어요. 성형수술이나 문신을 하지 않더라도 피부에 화장하거나 옷만 바꾸어 입어도 나의 표면, 내 모습과 정체성까지 확 달라지죠. 그래서 옷을 '제2의 피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작품2는 종이를 붙여 만든 거대한 드레스예요. 미술가 정혜경은 돈을 쓸 때마다 영수증을 받아 모으고 꼬박꼬박 가계부에 지출 내용을 기록하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영수증을 모아도 살림은 전보다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영수증 모으기를 그만두었대요. 공들여 모은 영수증들을 불에 태워 버리려다가 한지와 함께 드레스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드레스는 그동안 돈을 아껴 썼던 작가의 삶과 모습을 담고 있어요. 작가의 정체성을 담은 '제2의 피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옷을 입으면 내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요? 작품3은 역사 속 인물의 의상을 차려입고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미술가 배찬효는 의자에 앉아 옛날 영국의 왕이었던 헨리 8세를 흉내 내고 있어요. 작품 오른쪽에는 성배를 든 손이 보이고, 왕은 성배에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듯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립니다. 현대에 사는 한국인이 옛 영국인의 옷을 입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어설픈 느낌이 들어요.

배찬효 미술가는 일부러 쏙 빼닮기 어려운 인물로 변장해 '다름'을 더 잘 보이도록 끄집어냈어요. 이런 흉내 내기를 '패러디(parody)'라고 부릅니다. 코미디언도 유명인이나 정치인, 연속극 속 주인공을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는 패러디를 하는데, 이런 패러디는 아주 심각한 장면도 가볍게 바꾸어버리는 힘이 있지요. 배찬효는 영국 역사상 가장 소란스레 여러 사람에게 형벌을 내렸던 헨리 8세의 모습을 자신의 몸에 덧입히는 패러디로 무시무시한 권력을 조롱합니다.

작품3 - 배찬효, ‘의상 속 존재-헨리8세’, 2012, C-print.
작품3 - 배찬효, ‘의상 속 존재-헨리8세’, 2012, C-print.

이렇게 우리의 몸 바깥을 둘러싼 피부와 옷이 달라지면, 우리의 모습도 달라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를 전할 수도 있어요. 작품들을 보며 나를 이루는 피부와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