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손잡느냐 맞서느냐… 두 친구의 엇갈린 외교 전략

입력 : 2017.03.30 03:10

[합종연횡]

2300년 전 중국 전국시대
소진, 힘 약한 여섯 나라가 뭉쳐 강국 진나라에 맞서는 합종 이뤄
소진 도움받아 진나라 재상된 장의, 6국 동맹 깨뜨리고 연횡책 달성
오늘날 '합종연횡'으로 전해져요

제19대 대통령 선거 날짜가 오는 5월 9일로 확정되면서 여러 정당은 각자 대선에 나갈 본선 후보를 뽑는 경선을 벌이고 있어요. 여러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면서 후보들 간에 '합종연횡(合從連橫)'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요.

합종연횡은 보통 '약자들이 뭉쳐 강자에 맞서거나, 강자가 약자들을 흩트려 자신에게 맞서지 못하게 하는 외교 전략'을 뜻합니다. 정확하게는 약 2300년 전 중국에서 등장했던 합종(合從)이라는 전략과 연횡(連橫)이라는 전략을 묶은 말이지요.

◇전국시대와 소진의 합종

기원전 4세기 중국은 일곱 나라로 나뉘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전국시대(戰國時代)였습니다. 일곱 나라 중 중국 서쪽을 차지한 진(秦)나라가 가장 강대하였어요. 법치를 중시하는 상앙(商鞅)이 재상이 되어 단기간에 국력을 크게 키운 덕분이었지요. 중국 동쪽은 연(燕)나라를 비롯해 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나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이 무렵 각 나라를 돌며 자신의 외교 전략을 설득하는 사상가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종횡가'라고 불렀어요. 종횡가 중에 가장 돋보인 활약을 펼친 주인공이 바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입니다. 두 사람은 종횡가의 시조인 귀곡자(鬼谷子) 아래에서 함께 공부한 절친한 사이였지만, 각자 주장하는 외교 전략은 전혀 달랐어요.

소진은 진나라에 대항하여 다른 여섯 나라가 정치·군사 동맹을 맺는 '합종'을 주장했습니다. 약소국이 모두 힘을 합치면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섣불리 약소국을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전국시대 7개 나라 지도
위키피디아·바이두, 그래픽=유두호 기자
여섯 나라를 설득하기 위해 소진은 연나라로 갔습니다. 연나라 제후를 만난 소진은 "연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을 받지 않는 이유는 조나라가 남쪽에서 길목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며 "연나라가 조나라를 멀리하면 결국 연나라도 위험해질 것"이라며 합종의 필요성을 논했습니다. 이 말에 설득된 연나라 제후는 소진을 재상으로 삼고 금은보화를 주어 다른 나라를 합종에 끌어들이도록 했어요.

기세등등한 소진은 조나라를 찾아가 "여섯 나라가 합치면 진나라보다 땅은 다섯 배가 크고 병사는 열 배가 많다"며 "진나라의 신하가 되느니 여섯 나라가 뭉치는 게 낫지 않으냐"고 설득했고, 시큰둥하던 조나라도 결국 합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소진은 같은 논리로 한·위·제나라를 합종에 끌어들였고, 여섯 나라 중 가장 강대한 초나라는 "합종에 참여하면 초나라가 여섯 나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고 꼬드겼어요.

그렇게 여섯 나라는 진나라에 맞서 강력한 동맹 체제를 이루었습니다. 합종을 이룬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을 모두 겸하며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게 되었지요. 이후 15년간 진나라는 소진의 합종에 가로막혀 동쪽으로 진출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합종은 소진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었어요. 소진의 라이벌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장의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기에 합종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소진이 라이벌 장의의 출세를 도운 이유

장의는 진나라가 여섯 나라와 제각각 동맹을 이루어 여섯 나라가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연횡'을 주장했습니다. 약소국을 하나씩 구슬린 뒤 분열시켜 강대국에 맞서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으로, 소진이 주장한 합종과는 반대되는 것이었어요. 즉 합종이 이루어지면 연횡이 될 수 없고, 연횡이 이루어지면 합종이 될 수 없었습니다.

장의가 세상에 나섰을 때 소진은 이미 세 나라의 합종을 이루어 재상이 되어 있었어요. 장의는 출세한 소진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를 찾아갔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소진은 장의를 무시하고 박대하였어요. 마음이 상한 장의는 "반드시 연횡을 이루어 소진을 무너뜨리겠다"는 결심을 하였답니다.

하지만 장의의 수중에는 정작 진나라로 갈 여비조차 없었어요. 이때 한 상인이 나타나 장의의 사정을 물었고, "연횡을 이루도록 도와주겠다"며 자금을 빌려주었습니다. 덕분에 진나라로 간 장의는 온 힘을 다해 진나라 제후 혜문왕을 설득했고, 마침내 진나라의 재상이 될 수 있었어요.

재상이 된 장의가 상인에게 은혜를 갚으려 하자, 상인은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소진 나리의 보좌관입니다. 소진 나리께서 일부러 나리를 박대하는 척하며 뒤로는 저에게 나리의 출세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소진은 일부러 장의를 박대해 승부욕을 불태우도록 한 뒤, 보좌관을 통해 장의를 도와 진나라의 재상이 되도록 한 거예요.

그 이유는 합종을 이루기 위해 장의의 도움이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소진이 여섯 나라를 설득하는 동안 진나라가 전쟁을 일으키면 합종이 무너질 수 있었어요. 이에 소진은 친구 장의가 진나라 재상이 되어 진나라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도와주길 바랐던 것입니다.

친구의 깊은 뜻에 감복한 장의는 한동안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그 사이 소진은 다른 세 나라를 설득하여 합종을 이룰 수 있었어요.

◇연횡의 성립과 두 종횡가의 최후

진나라가 합종에 가로막힌 지 15년이 지나자 장의는 자신이 꿈꿔온 연횡책을 펼치기 시작했어요. 위나라를 찾아간 장의는 "형제간에도 재물을 두고 다투는 데 여러 나라 간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느냐"며 "만약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면 아무도 도우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진나라의 강대한 국력을 바탕으로 위협과 설득을 병행한 것이죠.

이런 장의의 논리에 위나라는 물론 초·한나라도 합종을 포기하고 진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연횡으로 돌아섰습니다. 제나라도 "진나라에 맞서 싸워 여러 번 이긴 조나라도 수많은 군사와 땅을 잃었을 뿐"이라는 장의의 말에 연횡을 택했고요. 조·연나라도 장의의 협박과 설득에 굴복하면서 마침내 연횡이 완성되었습니다.

연횡이 완성되고 합종이 무너지면서 권세를 잃은 소진은 제나라로 몸을 피했지만, 자신을 시기한 인물에게 암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어요. 장의의 끝도 좋지 않았습니다. 혜문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장의는 재상 자리에서 쫓겨났고, 위나라로 넘어가 재상이 된 뒤 1년 만에 죽고 말았어요. 안타까운 결말이지만 라이벌이자 절친한 두 지략가가 중국 대륙을 쥐락펴락했던 이야기는 '합종연횡'이라는 말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승호 인천하늘고 역사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