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땅에 살던 고래의 조상… 어떻게 바다에 적응했을까

입력 : 2017.03.29 03:14 | 수정 : 2017.03.29 10:22

[고래의 진화]

5500만년 전 고래의 조상… 먹이 다툼 심해지자 바다로 이동
물의 저항 줄이려 뒷다리 사라지고 앞다리는 가슴지느러미로 변해
물고기와 다르게 공기주머니 없어 골밀도 낮춰 물에 뜨는 힘 얻어요

바다에 사는 고래는 물고기와 비슷할까요, 사람과 비슷할까요? 사는 곳과 생김새를 보면 물고기를 더 닮은 듯하지만, 사실 고래는 사람과 더 비슷한 포유류입니다. 알 대신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고, 아가미가 아닌 허파로 숨을 쉬어요.

사실 고래의 먼 조상은 육지에 살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둘 바다로 나아갔고, 바다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오늘날 고래로 진화한 것이죠. 생물학자들은 "육상 생활을 하던 포유류가 급격한 진화를 거쳐 해양 생활에 완벽히 적응한 것은 극히 드물고 놀라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최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진은 고래가 어떻게 바다 생활에 적응했는지 알 수 있는 근거들을 찾아냈어요. 고래의 조상이 어떻게 바닷속 생활에 적응하며 고래로 진화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먹이 다툼 피해 바다로 뛰어들다

지금으로부터 약 5500만년 전 지구는 신생대 기간 중 가장 따뜻한 시기였어요. 육지에는 소, 돼지, 낙타, 하마, 사슴 같은 포유동물이 번성하고 있었는데, 이 중에는 고래의 조상인 파키케투스(Pakicetus)도 있었지요. 파키케투스는 늑대를 닮았는데 네 다리에는 소처럼 발굽이 달려있었어요. 사실 고래와 소는 같은 조상에서 갈라졌답니다.

[재미있는 과학] 땅에 살던 고래의 조상… 어떻게 바다에 적응했을까
/그래픽=안병현
파키케투스는 점차 오늘날 지중해인 테티스해로 나아갔어요. 육지에 포유동물이 너무 많아 먹이 다툼이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바다에는 다른 포유동물이 없어 먹이를 구하기 쉬웠어요. 특히 테티스해는 수심이 얕고 물이 따뜻해 헤엄을 치며 먹이를 잡고 새끼를 낳아 기르기에 좋은 환경이었지요.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파키케투스의 주둥이는 점점 길어졌고, 이빨은 더 날카로워졌어요. 물고기를 잡기 편하도록 진화한 것이죠. 물고기를 잡는 데 익숙해진 파키케투스는 용기를 내어 점점 더 깊은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000만년 정도가 지나자 파키케투스는 바실로사우루스(Basilosaurus)와 도루돈(Dorudon)이라는 동물로 진화했어요. 바실로사우루스는 몸길이는 최대 24m, 몸무게는 최대 60t으로 동시대에 가장 덩치가 큰 흉포한 포식자였습니다. 같은 조상에서 갈라진 도루돈을 사냥해 잡아먹기도 했고, 대형 어류는 물론 육지에 사는 짐승도 종종 사냥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루돈은 몸길이 5m로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았던 것으로 보여요.

두 동물은 덩치와 생김새가 달랐지만, 꼬리가 지느러미 형태로 진화했고, 뒷다리는 작은 크기로 퇴화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깊은 바닷속 생활에 적응하며 헤엄치기 편하게 진화한 것이죠.

◇바닷속 생활에 적응한 고래


바실로사우루스와 도루돈도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했고, 약 500만년 전 오늘날 고래와 돌고래가 출현하였어요.

고래를 찬찬히 살펴보면 오랜 세월 진화한 흔적들이 잘 나타납니다. 고래는 귓바퀴와 뒷다리가 없어요. 몸에 털도 나지 않습니다. 모두 물속 저항을 줄이기 위한 진화의 결과예요.

대신 청력은 더 발달했습니다. 공기 중보다 물속에서 소리가 더 빨리, 멀리 나가는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지요. 사람은 15~20㎐, 박쥐는 175㎐까지 들을 수 있는데 고래는 무려 100~400㎐의 소리에도 반응합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뒷다리는 고래의 뼈를 살펴보면 몸속에 퇴화한 흔적이 남아있어요.

파키케투스의 앞다리는 시간이 흘러 고래의 가슴지느러미가 되었습니다. 가슴지느러미는 배의 키처럼 헤엄치는 방향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요. 이런 변화들은 육지 대신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택한 바다표범과 물개, 바다코끼리 등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물고기의 부레 대신 골밀도를 조절

어류는 공기주머니인 '부레'라는 기관으로 물에 뜨는 힘인 부력을 얻습니다. 포유류인 고래는 부레가 없기 때문에, 부레 대신 골밀도(뼈의 밀도)를 낮추어 부력을 얻는 방향으로 진화하였어요. 뼛속에 공간을 만들고 무게는 낮춘 것이죠.

그동안은 고래의 골밀도가 낮아지는 이유를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최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팀이 밍크고래 등을 조사해 고래의 'FGF23' 유전자가 골밀도를 낮춘다는 사실을 밝혀냈답니다.

이에 따르면 고래가 물속 생활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FGF23 유전자가 활성화되었고, 이 유전자가 고래의 신장이 칼슘(Ca)을 몸 밖으로 많이 배출하도록 하여 골밀도를 낮추었어요. 고래가 대양에 나가 오랜 시간 잠수를 하면 FGF23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골밀도가 낮아진답니다.

고래가 오래 잠수를 해도 장기 손상을 입지 않는 이유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어요. 고래는 한 번 숨을 쉬면 1시간 가까이 잠수할 수 있는데, 다른 육상 동물은 이렇게 오래 잠수를 하면 저산소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 몸에 산소가 들어오면 세포 조직이 파괴되어 치명적인 장기 손상을 입어요. 반면 고래는 저산소 상태에 있다가 다시 숨을 쉬어도 장기 손상을 입지 않습니다.

연구진은 고래의 뇌와 심장에 유독 많이 분포한 'FGF11' 유전자에 그 비밀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어요. 저산소 상태에서도 FGF11 유전자가 계속해서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 뇌와 심장에 산소를 공급해 장기 손상을 막는다는 것이죠. 이런 고래의 신기한 특징과 진화의 비밀이 밝혀지면 향후 뇌 손상이나 심장 질환을 겪는 환자를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