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녹음기·음반 등장에 클래식 거장들이 보인 반응은?
[음반 녹음과 클래식 음악]
굴드, 공연 접고 음반 활동만 고집… 테너 파바로티는 녹음 울렁증 겪어
전설적인 지휘자 첼리비다케, 현장 음악만 진정한 예술로 인정
거장 리흐테르도 녹음 꺼렸죠
19세기 독일 작곡가 브람스는 선배 작곡가 베토벤을 매우 존경했습니다. 특히 베토벤의 교향곡을 아주 좋아했고, 베토벤처럼 훌륭한 교향곡을 작곡하기 위해 노력했지요. 그런데 브람스가 정작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제대로 감상한 횟수는 고작 네 번입니다. 당시에는 녹음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녹음기가 발명되기 전인 19세기 말까지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교향곡을 들으려면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음악회를 손꼽아 기다려야 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회에 가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하기도 했고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1877년 최초의 녹음기라 할 수 있는 축음기를 만들었지만, 그가 만든 축음기는 불편한 점이 많아 대중화되지는 못했어요. 독일 출신 미국 발명가 에밀 베를리너가 그래머폰(Gramophone)이라는 녹음기를 발명하고 이후 'SP(Standard Playing record)'가 등장하면서 녹음기와 녹음 음반이 대중화되었지요. 그 후로 녹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비닐 디스크 LP(Long Playing record)와 카세트테이프, CD, DVD 등이 등장하였고요. 이런 녹음 기술의 발달은 클래식 음악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녹음·음반 활동만 고집한 글렌 굴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1913년 헝가리 출신 유명 지휘자 어르투르 니키슈가 최초로 녹음을 하였어요. 이보다 약 10년 전인 1902년에는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오페라 '팔리아치'에 나오는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를 녹음하였고요. 이렇게 클래식 음악을 녹음한 음반이 속속 등장하면서 클래식 애호가들의 음악 감상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과거처럼 음악회나 공연에 갈 뿐 아니라 명반(名盤·훌륭한 음반)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경우도 늘어난 것이죠.
- ▲ 19세기 말~20세기 초 오케스트라 악단이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이 당시에는 마이크가 없었기 때문에 마이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큰 금속관을 앞에 두고 녹음을 하였어요. /미 의회 도서관
굴드는 공연보다 여러 번의 녹음과 편집을 통해 최대한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오히려 더 위대한 예술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자기기나 최첨단 녹음 기술에도 큰 관심을 가졌지요. 바흐를 비롯해 모차르트와 베토벤, 쇤베르크 등 여러 거장의 곡을 연주하고 녹음한 그의 음반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낸 최상의 녹음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반면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스리 테너(three tenor)'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탈리아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는 가벼운 '녹음 울렁증'이 있었어요. 정작 그의 음반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파바로티는 평소 "무대 공연보다 녹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어요. 주로 많은 관중이 있는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파바로티는 아무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죠. 고심 끝에 그가 떠올린 묘안은 스튜디오의 조명을 모두 끄고 중앙에 강한 핀 조명 하나만 자신을 비추도록 한 것입니다. 마치 콘서트홀이나 오페라 극장에서 노래하는 분위기를 연출해 보다 자연스럽게 녹음을 한 거예요.
◇녹음을 꺼렸던 클래식 거장들
반면 '녹음된 음악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녹음을 거부한 클래식 음악가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루마니아 출신의 전설적인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19 12~1996)가 대표적이지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명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예술감독으로 오랫동안 활약한 그는 생전에 단 6개의 음반과 공연 실황 음반 정도를 남겼어요. '오직 현장에서 듣는 음악만이 진정한 예술'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와 라이벌 관계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889)이 여러 음반과 공연 영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것과 대조됩니다.
피아니스트 중에서 녹음을 싫어한 거장으로는 스비야토슬라프 리흐테르(1915~1997)가 있습니다. 과거 소련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던 리흐테르는 어린 시절 독학으로 피아노 연주를 익혔고, 천재적인 두뇌와 엄청난 연습량을 통해 연주하지 못하는 레퍼토리가 없었던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였어요.
첼리비다케와 달리 리흐테르는 적지 않은 스튜디오 녹음 음반을 남겼지만, 생전에 늘 "녹음된 음악은 살아있는 음악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녹음을 꺼렸어요. 그는 "내가 음악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분석을 하는 일인데, 스튜디오 녹음은 여러 번 끊어 편집하고 나누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분석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음반을 들어보면 스튜디오 녹음보다 공연 실황을 담은 것이 더 훌륭해요.
녹음 기술 발달로 오늘날에는 스마트폰 등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음반·공연에 상관없이 늘 생명력 가득 찬 음악으로 감동을 주려는 연주자들의 노력은 변하지 않았지요. 과거 브람스가 '합창' 교향곡을 감상하며 느낀 그 뜨거운 감격을 재현하기 위해, 지금도 연주자와 지휘자들은 연습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