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사자 로봇·박쥐 비행기… 상상 가득한 다빈치의 노트

입력 : 2017.03.18 03:06

['기록된 미래, 다빈치 코덱스' 展]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술 외 다양한 분야 관찰·연구… 37년간 노트 3만 장에 세세히 기록

꽃을 품은 기계 사자·비행기구 등 현대 과학기술에 아이디어 제시
그의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죠

명화 '모나리자'로 유명한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와 함께 '르네상스 3대 거장'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다빈치는 '화가'로 한정 지을 수 없는 인물이에요. 그는 그림뿐 아니라 인체 해부학, 기계 공학, 수학과 기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겨 오늘날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인물'로 불립니다.

생전에 다빈치는 늘 자신이 상상하고 연구한 것을 그림과 설명을 곁들여 노트에 기록하였어요. 37년간 그렇게 쓴 노트만 무려 3만 장에 이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다빈치 코덱스(codex·두루마리가 아닌 책 모양으로 된 고문서)'지요. 다빈치 코덱스는 다빈치가 생전에 어떤 것을 관찰하고 탐구하였는지 살펴볼 수 있는 사료인 동시에 50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수많은 이들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보물창고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다빈치는 죽기 전 자신이 쓴 노트를 제자에게 맡겼고, 제자는 이 노트를 소중하게 보관하였어요. 하지만 제자가 죽고 난 뒤 후세 사람들이 관리를 잘하지 못해 그만 노트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지요. 이 중 일부가 근래 경매에 올라왔는데, 빌 게이츠가 이를 3100만달러(약 300억원)에 사들였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빌 게이츠가 다빈치 코덱스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는 일화지요. '문화역서울 284'에는 다빈치 코덱스에서 영감을 얻은 미술 작품과 다빈치의 상상을 현실로 만든 발명품들이 다음 달 16일까지 전시될 예정입니다.

작품1~4
작품1은 다빈치가 출산 직전 목숨을 잃은 임신부를 해부해 그린 그림입니다. 이렇게 다빈치가 해부를 통해 그려둔 여러 장의 인체 그림은 훗날 해부학 교재에 사용될 정도로 아주 상세하고 정확했어요.

다빈치는 관찰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코덱스를 보면 매일 꽃이 피는 과정이나 동물의 움직임을 아주 세세하게 살펴 꼼꼼히 메모하고 그렸다는 걸 알 수 있지요. 다빈치가 이렇게 세심한 관찰을 했던 이유는 풍부한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사람을 그릴 때도 다빈치는 피부 밑에 있는 근육이나 혈관, 내장 기관은 어떻게 생겼을지 몹시 궁금해했지요. 당시에는 시체를 해부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는데, 호기심이 많았던 다빈치는 교황으로부터 특별히 허락을 받아 시체를 해부해 그림으로 남긴 거예요. 작품4는 김상배 박사가 다빈치의 관찰 방식대로 치타의 움직임을 살펴 만들어낸 치타 로봇입니다.

기계공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다빈치는 비행기 발명에 도전했답니다. 큰 새가 날개를 양옆으로 펴고 날아가는 모습을 세세하게 관찰해 하늘을 나는 기구를 정밀하게 설계했어요. 작품3은 그가 남긴 설계대로 만든 비행기구인데, 꼭 박쥐 날개가 달린 생김새입니다. 근래 다빈치의 설계를 분석한 결과 당시 힘 좋은 동력장치만 있었다면 실제로 하늘을 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비행기구는 과학적이고 정교한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아쉽게도 다빈치가 살아있을 때는 비행기구를 띄울 수 있는 동력장치가 없었지만, 그가 남긴 설계는 먼 훗날 비행기가 탄생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어요.

이번 전시회에 선을 보이는 기계들은 '엘뜨레(L3)'라는 모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다빈치를 연구하는 이탈리아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로 구성된 엘뜨레는 1998년부터 전 세계에 흩어진 다빈치 코덱스를 살펴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과거에는 실현 불가능했던 다빈치의 아이디어를 현대 과학과 기술을 통해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이죠.

작품2도 이런 맥락으로 만든 기계 사자입니다. 다빈치는 비행기구 외에도 여러 발명품을 만들었는데, 그중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이 바로 이 기계 사자였대요. 다빈치는 프랑스 왕 루이 11세 앞에서 처음 기계 사자를 선보였는데, 기록에 따르면 기계 사자가 몇 발 앞으로 걸어나간 뒤 뒷발로 일어서자 가슴이 열리며 백합이 와르르 쏟아졌다고 합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루이 11세와 궁궐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박수와 환호를 멈추지 않았대요.

다빈치가 발명한 기계 사자는 자동제어장치를 갖춰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최초의 기계이자 최초의 '움직이는 조각'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다빈치가 기계 사자를 그린 설계도와 작성한 기록들이 사라져 버린 탓에 어떤 동력장치로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니 참 아쉬운 일이죠.

매일 쪽잠을 자며 부지런히 연구와 창작에 몰두하던 다빈치는 1519년 병에 걸려 숨을 거두었습니다. 죽기 전 다빈치는 자신의 노트에 "나는 계속할 것이다"라고 적었어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더 창의적인 것을 추구했던 그의 정신을 알 수 있는 문장이지요. 그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지만, 오늘날에도 수많은 예술가와 과학자가 다빈치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 (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