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실지왕'이 서명한 양피지, 근대 헌법의 뿌리 됐어요

입력 : 2017.03.16 03:08

[마그나카르타와 헌법]

과도한 세금에 불만 폭발한 귀족들, 존 왕에 맞서 마그나카르타 만들어
국왕의 과세권과 체포권 등 제한… 근대 헌법 탄생에도 기여
최초의 성문헌법인 미국 헌법, 기본권 지키기 위한 투쟁 결과예요

지난 1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어요.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지요. 헌재는 파면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로 "헌법수호의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파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국가의 통치 방법을 규정하는 최상위 법입니다.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국민은 반드시 헌법을 지켜야 하지요. 모두가 헌법을 지키고 통치 행위도 헌법을 벗어나지 않아야 시민이 가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민주주의 국가도 한 공동체의 모든 생활이 헌법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입헌주의를 따릅니다. 이렇게 여러 나라에서 헌법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를 역사를 통해 알아볼까요?

◇실지왕(失地王)의 폭정에 재갈을 물리다

13세기 초 영국에서는 국왕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어요. 1199년 왕좌에 오른 존(1167~1216) 왕이 연이어 전쟁을 일으켰지만 번번이 패배했기 때문이죠. 존 왕의 아버지인 헨리 2세가 국왕일 때 영국은 프랑스 영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존 왕이 번번이 전쟁에서 진 탓에 그 땅을 대부분 잃어버리고 말았답니다. 화가 난 영국 사람들은 존 왕을 가리켜 '땅을 많이 잃은 왕'이라는 뜻의 '실지왕'(John The Lackland)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어요.

존 왕이 마그나카르타에 서명하는 장면을 상상해 그린 그림이에요.
존 왕이 마그나카르타에 서명하는 장면을 상상해 그린 그림이에요. /위키피디아

하지만 존 왕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야 한다"며 전쟁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답니다. 급기야 전쟁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몇몇 귀족이 "더 이상 병사나 세금을 내놓지 않겠다"며 존 왕에게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귀족들은 선대 왕인 리처드 1세의 십자군 원정 탓에 많은 세금을 내어 불만이 많았는데, 존 왕이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하자 참았던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한 것이죠.

그럼에도 존 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을 일으켰고,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또 패배하고 말았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귀족들은 기사들을 이끌고 존 왕이 있는 런던으로 달려갔습니다. 인기기 땅에 떨어진 존 왕은 귀족들의 무력시위에 굴복해야 했고, 결국 그들이 내민 양피지에 서명을 했지요.

1297년 에드워드 1세가 발행한 개정판 마그나카르타 원본이에요. 이 원본은 지난 2007년에 열린 경매에서 2130만달러(약 200억원)에 거래됐어요.
1297년 에드워드 1세가 발행한 개정판 마그나카르타 원본이에요. 이 원본은 지난 2007년에 열린 경매에서 2130만달러(약 200억원)에 거래됐어요.

1215년 존 왕이 서명한 이 양피지가 바로 근대적 헌법의 토대로 여겨지는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대헌장)'입니다. 마그나카르타에는 귀족 의회 승인 없이 국왕이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할 수 없고, 재판이나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사람을 체포하거나 국외로 추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어요. 사고뭉치 실지왕이 더 이상 폭압적인 통치를 하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린 것이죠.

그 전까지 영국 국왕은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스스로 어겨도 되는 초월적인 존재였지만, 마그나카르타가 등장하자 상황이 달라졌어요. 왕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왕보다 더 높은 법이 만들어진 것이죠. 또 사람들은 "시민은 왕도 침해할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그나카르타는 오직 귀족의 권리만 보장했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후 300여 년간 국왕을 견제하고 귀족과 평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영국 의회제도가 발전하는 기틀이 되었어요. 훗날 평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부당한 왕의 통치에 저항할 때에도 마그나카르타는 그 근거가 되었고요. 영국 국왕이 의회와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재차 보장한 권리청원과 권리장전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근대적 헌법도 마그나카르타처럼 전제정치에 맞서 개인의 생명과 재산 등 기본권을 지키는 과정에서 탄생했어요.

◇최초의 성문헌법은 미국 헌법

1787년 마련된 미국의 헌법은 세계 최초의 근대적 성문헌법(문자로 적어 표현하고 문서의 형식을 갖춘 헌법)입니다. 그 전에도 여러 성문법이 있었지만, 미국 헌법처럼 통치 조직을 규정하는 동시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고 명확하게 적어 놓은 법은 없었어요.

미국의 헌법도 개인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산물입니다.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던 시절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종교적 자유와 일정한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었어요. 그런데 1763년 경제 사정이 나빠진 영국이 아메리카 식민지에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답니다. 식민지 사람들은 "우리가 동의하지 않은 부당한 세금을 낼 수 없다"며 맞섰고, 이는 1776년 독립선언과 영국과의 독립전쟁으로 발전하였어요. 이 전쟁에서 식민지 민병대가 승리를 거두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한 것이죠.

영국 정부의 강압을 딛고 독립을 이끈 당시 미국의 지식인들은 미국 정부가 영국 정부처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통치 조직을 분산하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문헌법을 택한 것이죠. 이렇게 헌법은 오늘날에도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규칙이자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김승호 인천하늘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