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부자 아빠 둔 화가의 화실, 인상주의의 아지트였죠
[예술가의 작업실]
19세기 프랑스 화가 바지유
파리 시내에 넓은 작업실 마련, 인상주의 꽃피운 모임 장소로 활용
낮에는 햇빛 받으며 그림 그린 고야, 밤에는 모자에 양초 꽂고 작업
작업실 자체가 예술품 되기도 해요
- ▲ 작품1 - 프란시스코 고야, 작업실에서의 자화상, 1790 ~1795.
최근 전시회를 가면 작품과 함께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놓은 것을 볼 수 있어요. 관객들은 그림을 그리다가 만 캔버스와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 그 외 여러 미술 재료와 도구를 신기하다는 듯 살펴봅니다. 예술가의 작업실은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거나 만드는 예술의 산실인 동시에 작가의 주변 환경과 성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작품1에서는 18세기 가장 위대한 스페인 화가로 평가받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업실을 살펴볼 수 있어요. 고야의 작업실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군요. 크고 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환한 햇빛을 받으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고야가 보입니다. 그림을 보니 고야가 패션에 무척 신경을 썼다는 것도 알 수 있네요. 멋스러운 모자에 수놓은 주름 장식이 달린 조끼를 입었고, 다리에는 딱 달라붙은 스타킹을 신었어요.
자, 고야가 쓴 모자의 챙을 자세히 보세요. 챙 끝에 뾰족하게 서 있는 금속 막대는 양초를 꽂을 수 있는 촛대입니다. 당시에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들이 밤에 그림을 그릴 때 이런 촛대 모자를 쓰고 양초를 모자에 꽂아 어둠을 밝혔어요.
영국 미술평론가 로라 커밍은 고야의 아들 하비에르의 말을 빌려 자신의 책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답니다. "고야는 투명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작업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인공적인 불빛에서 그림을 마무리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시절 다른 화가도 촛대 모자를 쓰고 작업을 했지만, 촛대 모자를 쓴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오직 고야뿐이었다." 이 그림은 고야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이기도 합니다.
- ▲ 작품2 - 장 프레데리크 바지유, 콩다민 거리에 있는 바지유의 아틀리에, 1870.
작품2는 인상주의 화가 장 프레데리크 바지유가 프랑스 파리 바티뇰 지구 콩다민 거리에 있던 자신의 작업실을 그린 그림이에요. 그림 속 그의 작업실은 아주 넓고 깨끗해 보입니다. 바지유와 친하게 지낸 인상주의 화가 대부분은 화실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낡고 좁았어요. 당시에는 인상주의 그림이 잘 팔리지 않아 화가들이 몹시 가난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바지유는 부자 아버지 덕분에 파리 시내에 이렇게 크고 멋진 화실을 마련할 수 있었답니다.
마음씨 착한 바지유는 자신의 화실을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임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지요. 그림 속 작업실에도 모임이 열린 듯 여러 명의 인상주의 화가가 등장합니다.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바로 바지유예요. 계단 아래 탁자에 앉아 있는 화가는 르누아르고요. 바지유의 그림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은 마네와 모네입니다.
재미나게도 바지유는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을 마네에게 그려달라고 부탁했어요. 당시 인상주의 화가 모임에서 리더 격이던 마네에게 이런 부탁을 함으로써 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 것이죠. 이 그림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새로운 미술에 관해 토론하며 서로를 격려한 덕분에 훗날 인상주의가 꽃피울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 ▲ 작품3 - 마네, 아르장퇴유 보트 화실에서 그림 그리는 클로드 모네, 1874.
마네가 그린 작품3에는 물 위를 떠다니며 이동하는 작업실이 등장합니다. 배를 탄 채 파리 센 강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사람은 모네예요. 배 안에서 모네를 바라보는 여인은 모네의 아내 카미유고요.
물과 빛을 무척 사랑한 모네는 강물의 일렁임과 빛의 변화, 시시각각 변하는 강변의 풍경을 직접 보면서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배를 사서 개조해 선상 화실을 만들고, 강에서 보이는 순간적인 인상과 감각을 현장에서 곧장 그렸던 겁니다. 인상주의가 혁신적이라고 평가받았던 이유 중 하나가 실내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던 과거와 달리 모네와 마네처럼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이죠.
- ▲ 작품4 - 유현미, 작업실의 소우주, 2013.
유 작가는 실제 작업실 안에 그림을 그린 사물들을 배치하고 사진으로 촬영해 이 작품을 완성했어요. 실내 인테리어와 조각, 그림과 사진이 결합해 우주 작업실이 탄생한 것이죠. 유 작가는 작품 의도에 대해 "과학적인 우주가 아닌 내 생각의 우주이며, 내 작업실이 하나의 소우주라고 생각하며 작업했다"고 말했어요. 이렇게 예술가의 작업실은 그 자체로 멋진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