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비스마르크가 흘린 '가짜 뉴스', 전쟁의 도화선으로
[엠스 전보 사건]
독일 통일 꿈꾼 재상 비스마르크
왕이 보낸 전보 내용 조작해 통일 반대하던 프랑스와 전쟁 유도
전쟁 시작 두 달 만에 승리 거두고 독일 제국 수립하며 통일 이뤘죠
최근 전 세계가 '가짜 뉴스(fake news)'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가짜 뉴스란 넓게는 거짓 정보나 조작된 사실이 담긴 뉴스, 좁게는 기사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 해 거짓 정보나 조작된 사실을 퍼트리는 뉴스를 뜻합니다. 온라인을 통해 기사를 접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여론을 선동하거나 사람들을 속일 목적으로 가짜 뉴스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죠.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거나 '힐러리 클린턴이 테러 단체에 무기를 판매했다'는 가짜 뉴스가 퍼졌고, 우리나라에서도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이 반기문 전 총장은 대선 출마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는 등 여러 가짜 뉴스가 퍼져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어요.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선동해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됩니다. 역사를 살펴봐도 거짓 정보나 조작된 사실이 사람들을 속여 큰 문제를 일으킨 일이 많았어요. 150여 년 전 프랑스는 조작된 사실이 담긴 뉴스에 속아 전쟁을 일으켰다가 큰 낭패를 보기도 했지요. 오늘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이를 촉발한 엠스 전보 사건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비스마르크, 독일 통일에 나서다
19세기 중엽 유럽에는 민족주의가 퍼지면서 한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려는 통일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어요. 중세부터 늘 여러 나라로 찢겨 있던 독일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나타났답니다. 그 중심에는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이 있었어요. 비스마르크는 강한 군사력을 양성해 무력 통일을 추구하는 '철혈정책'을 추진했고, 그 결과 독일 지역에 번번이 간섭하던 덴마크와 오스트리아를 제압한 뒤 1867년 북독일 연방을 결성하는 데 성공했어요. 독일 통일이 가까워진 것이죠.
하지만 완전한 통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었어요. 강대국 프랑스였습니다. 덴마크,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독일 통일에 부정적이었어요. 통일된 독일은 향후 프랑스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를 간파한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를 꺾어야만 독일 통일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며 프랑스와 전쟁을 벌일 명분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명분을 찾을 만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868년 스페인에서 왕정을 무너뜨리고 입헌군주정을 세우려는 혁명이 일어난 것이죠.
◇왕이 보낸 전보를 본 비스마르크의 선택
당시 스페인 혁명정부는 이사벨 2세를 몰아내고 프로이센 왕가의 사람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프랑스 왕 나폴레옹 3세(나폴레옹의 조카)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어요. 프로이센 왕가가 스페인을 차지할 경우 프랑스가 서쪽과 동쪽 양쪽에서 프로이센의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프랑스의 강한 반대에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1세는 스페인 왕위를 받는 건 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스페인 혁명정부의 제안을 거절하였어요.
하지만 프로이센을 믿지 못한 나폴레옹 3세는 재차 빌헬름 1세에게 "스페인 왕위를 탐내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다짐하라"고 요구했답니다. 이에 비스마르크는 "이미 사양했기 때문에 그런 요구는 불필요하다"고 답했어요. 마음이 놓이지 않은 나폴레옹 3세는 급기야 빌헬름 1세가 휴양 차 온천을 즐기던 엠스(오늘날 바트엠스·Bad Ems)로 대사를 파견하며 '제대로 된 다짐을 받아오라'고 지시했어요.
- ▲ 1866년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에 나선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와 재상 비스마르크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빌헬름 1세가 엠스에서 보낸 전보를 조작해 프랑스와 전쟁을 일으켰어요. /AFP
엠스에서 보내온 전보를 받은 비스마르크는 이때부터 '외교의 천재'다운 모략을 벌이기 시작했어요. 전보 내용을 조작해 전쟁의 명분을 만들기로 한 것이죠. 비스마르크는 전보에 적힌 문장 일부를 덜어내어 '프랑스 대사가 무례하게 다짐을 요구했고, 분노한 국왕이 프랑스 대사와의 접견을 거부했다'는 수정된 내용의 전보를 언론에 공개했어요.
◇여론이 격화되며 전쟁이 시작되다
비스마르크가 조작한 전보가 뉴스를 통해 알려지자 프로이센에서는 '늙은 국왕이 무례한 프랑스 대사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여론이 불붙었습니다. 재미난 건 프랑스에서 더 격한 분노의 여론이 일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프랑스 신문사들이 외신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번역을 하는 바람에 '프랑스 대사가 정중하게 질문을 하였으나 빌헬름 1세가 하급 관리를 시켜 대사를 문전박대하고 모독했다'는 식으로 기사가 났기 때문이죠.
비스마르크가 의도한 대로 두 나라의 여론이 격화되면서 프로이센과 프랑스는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프로이센 군대는 파죽지세로 프랑스 영토를 점령했고, 프랑스는 두 달도 버티지 못하고 항복을 선언했어요. 오래전부터 전쟁을 준비한 프로이센과 달리 프랑스는 여론에 휩쓸려 급하게 전쟁을 벌인 탓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승전국 프로이센은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의 수립을 선포하고 빌헬름 1세를 독일 제국의 초대 황제로 추대하는 제위식을 열었어요. 독일로서는 역사상 첫 통일 국가를 이룬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지만, 반대로 프랑스 역사에서는 가장 치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힙니다.
엠스 전보 사건은 비스마르크의 지략을 잘 보여주는 일로 유명하지만, 프랑스 입장에서는 가짜 뉴스로 나라가 비참한 운명을 맞은 비극의 시작이었어요.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요즘 우리도 가짜와 진짜를 분별하는 지혜를 길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