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포켓몬 많은 경복궁에서 숨은 역사도 함께 찾아봐요

입력 : 2017.02.14 03:12

[근정전과 경회루]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 정도전, 경복궁 이름·건물 위치 직접 정해
태종이 연못에 지은 누각 '경회루'… 왕자의 난 도운 하륜이 이름 지어
게임 '포켓몬 고' 한국 출시 후 경복궁 하루 평균 입장객 30% 증가

증강 현실(AR) 게임 '포켓몬 고'가 우리나라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사용자가 700만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도심 속 여러 조형물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포켓몬을 잡으려는 사람이 늘어난 가운데 경복궁에 포켓몬이 아주 많이 나타난다고 해요. 덕분에 경복궁의 하루 평균 입장객 수도 평소보다 약 30% 늘어났답니다.

여러분도 포켓몬을 잡기 위해 경복궁에 다녀온 적이 있나요? 아직 다녀오지 않았다면 포켓몬도 찾고 경복궁에 숨어 있는 역사도 함께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경복궁을 설계한 정도전과 근정전

경복궁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다섯 개의 궁궐 중 맨 처음으로 지어진 곳이에요.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후 1394년 공사를 시작해 1395년 완성하였답니다.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은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인 삼봉 정도전이 지었어요. '큰 복을 누리리라'는 뜻이 담겨있지요.

[뉴스 속의 한국사] 포켓몬 많은 경복궁에서 숨은 역사도 함께 찾아봐요
/그림=정서용
정도전은 경복궁의 설계를 맡아 궁의 이름과 궁궐 안 건물의 이름은 물론 경복궁의 위치와 건물 배치 등을 직접 정했답니다. 그는 '궁이 사치스러우면 반드시 백성을 힘들게 하며 나라의 재정을 손상한다. 그렇다고 궁이 누추하면 조정의 위엄을 보여 줄 수 없다. 그러니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것이 아름다운 궁궐이다'라는 생각을 경복궁에 담았답니다.

경복궁 내 여러 건물 중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건물은 근정전(勤政殿·국보 제223호)이에요. 근정전은 왕의 즉위식을 비롯한 국가의 주요 행사가 열린 건물입니다. 과거시험도 근정전 앞에서 치러졌지요. 근정전 뒤로는 임금의 사무실인 사정전과 침실인 강녕전, 왕비가 있던 교태전이 들어서 있습니다.

근정전이라는 이름도 정도전이 지었어요. 태조 이성계가 근정전의 뜻을 묻자 정도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술술 풀리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얼크러지게 되는 것이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나랏일에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답니다. 이에 태조가 "어떻게 부지런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정도전은 "아침에는 나랏일을 보고, 낮에는 어진 이를 만나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근정전의 '근정(勤政)'은 이렇게 임금에게 부지런히 정치를 하도록 권하는 뜻을 담고 있어요.

◇경회루 세운 태종과 이름 지은 하륜

경복궁의 건물 중에 정도전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있어요. 근정전 서쪽에 있는 경회루(慶會樓·국보 제224호)입니다. 경회루는 정도전과 대립했던 태종 이방원이 지은 누각이에요.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은 정도전과 힘을 합쳐 조선을 세웠지만, 조선이 세워진 후에는 정도전과 날카롭게 대립하였답니다. 정도전은 재상과 신하가 중심이 되는 정치를 주장했지만 이방원은 임금이 강한 힘을 갖고 정치를 이끄는 왕권정치를 주장했기 때문이죠. 결국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과 이복형제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아 조선 3대 임금 태종이 되었어요.

경회루가 있던 자리에는 원래 작은 누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412년 태종은 "근정전 서쪽에 있는 작은 누각이 자꾸 기울어진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이에 태종은 공조판서였던 박자청에게 새로운 누각을 짓도록 명을 내렸지요. 박자청은 왕명에 따라 기울어진 작은 누각을 헐고 네모 반듯한 연못을 만든 뒤 연못 가운데에 아름답고 화려한 새 누각을 지었어요.

누각이 완성되자 태종은 하륜을 불러 누각의 이름을 짓게 하였어요. 태종을 도와 왕자의 난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하륜은 누각의 이름을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 만난다'는 뜻으로 '경회루'라고 지었답니다. 이후 경회루는 임금이 연회를 열거나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어요.

하지만 태종은 경복궁 대신 자신이 따로 지은 창덕궁에 주로 머물렀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경복궁의 위치가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고 말했지만, 자신과 대립한 정도전이 설계한 궁인 데다 왕자의 난 때 이복형제들을 살해했던 곳이라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짐작하고 있어요.

[훼손과 복원 반복된 경복궁]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이 나 무너져버렸어요. 그 이후로 270여 년간 방치되었답니다. 복구에 워낙 많은 재정과 일손이 필요해 왕실에서 복구 사업을 벌이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 선조부터 그 후대의 임금들은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 등 다른 궁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영조는 종종 무너진 근정전 터를 둘러보며 "이 궁궐은 규모가 굉장하고 원대했다"며 안타까워했지요.

오늘날 경복궁의 여러 건물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복원 공사를 벌여 1868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하지만 일제가 우리의 국권을 강탈하면서 경복궁도 다시 훼손되었어요. 일제가 광화문과 흥례문 등을 헐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웠기 때문이죠.

해방 후 조선총독부 청사는 미군정청과 정부청사, 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이용되다가 1995년 철거되었습니다. 오늘날 광화문과 근정전 앞 공간 등은 복원 공사를 거쳐 2010년부터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어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