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이상함과 익숙함의 조화…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요

입력 : 2017.02.11 03:10

[포르나세티 특별전]

이탈리아 장식 미술가 포르나세티
다양한 사물과 전통 소재로 독창적인 디자인·장식·그림 창작
여러 물건 수집해 이리저리 맞춰 자신만의 아이디어 만들어냈죠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장식을 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토끼털 장식이 달린 귀걸이를 하면 추위를 막을 수 있을까요? 새로 돋은 연두색 풀 이파리를 탕수육 접시 가장자리에 살짝 얹으면 탕수육 맛이 한결 신선해지는 건지 궁금합니다. "무엇을 위해 장식이 필요한지 묻지 마세요. 여러분이 그걸 보면서 어떤 상상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이탈리아의 장식 미술가 피에로 포르나세티(Piero Fornasetti·1913~1988)가 한 말입니다. 우리의 뇌를 간지럽혀서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게 장식과 디자인의 역할인가 봐요.

작품4
작품4 - 피에로 포르나세티, ‘책-스크린을 위한 구성’, 1950년대, 석판화.

포르나세티는 그림 그리기로 출발해 여러 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그는 화가나 디자이너보다 '스타일리스트(물건에 스타일을 입히는 사람)'로 불리길 원했답니다. 디자인과 장식에 이탈리아 전통 소재를 자주 사용해 '이탈리아 스타일'을 대표하는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져 있어요. 내달 19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포르나세티 특별전'에 전시된 그의 작품으로 장식과 디자인, 그리고 창의성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봅시다.

작품4는 포르나세티가 석판화로 찍은 그림이에요. 가림막에 어떤 장식을 넣을지 구상해 그린 것이죠. 우리 민화의 한 종류인 '책거리 병풍'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종이책은 무겁고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만, 사람들은 근사한 책을 여러 권 방에 꽂아두길 원해요. 책은 우리에게 지식과 교훈을 주기도 하지만, 좋은 실내장식이 되기도 하니까요. 포르나세티는 이 점을 활용해 책을 여러 사물과 잘 배열해 그리기만 해도 아주 멋진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포르나세티는 책 수집가였어요. 사실 책 외에도 이것저것 수집하는 걸 즐겼답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그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 우리의 기억에서 추출되는 거래요. 포르나세티는 여러 물건을 수집해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이리저리 맞춰보며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냈어요.

작품2
작품2 - 바르나바 포르나세티, ‘신뢰’, 2009, 러그, 손으로 짠 양모.
작품2는 양모로 짠 깔개입니다. 깔개를 밟고 지나가려니 고양이 한 마리가 방해하지 말라는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봐요. 잘 생각해보니 바닥에 하루 종일 동그랗게 웅크리고 앉아있는 게으른 고양이는 바닥에 깔려있는 둥그런 깔개와 비슷한 것 같아요. 고양이의 털 무늬는 체스판처럼 흑과 백의 네모로 이루어져 있어요. 깔개를 밟고 지나가려면 이 고양이와 체스를 두어 이겨야 할 것만 같군요.

이 작품은 포르나세티의 아들 바르나바 포르나세티가 만들었어요. 바르나바는 아버지의 아이디어를 응용해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있답니다. 바르나바는 깔개와 고양이의 비슷한 면을 활용하면서도 고양이 털 무늬를 체스판처럼 바꿔 예상치 못한 색다른 느낌을 줘요.
작품3
작품3 - 피에로 포르나세티, ‘날아가는 이탈리아’, 1950년대, 드로잉, 실크 위에 핸드프린트.

밑그림을 그리는 건 포르나세티에게 공부 겸 훈련의 과정이었어요. 나아가 밑그림 자체가 근사한 전시용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작품3은 밑그림 위에 스카프를 올려놓은 것이에요. 스카프는 바람에 살짝 날릴 때 가장 멋져 보이죠. 바람에 펄럭이듯 반쯤 접힌 빨간 스카프 아래로 밑그림이 슬며시 보여요. 스카프 위에는 성당의 둥근 지붕도 보이고 높게 세워진 종탑도 보입니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유명한 건물들이 구름 위에 둥둥 실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거 같아요.

포르나세티는 물건과 이미지를 연결지어요. 작은 모양과 큰 모양, 옛것과 새것, 가까이 본 모습과 멀리 보이는 모습, 이상한 면과 익숙한 면을 서로 만나게 합니다. 어색해 보이는 두 대상을 조화롭게 엮는 비법을 물으면 포르나세티는 "여기에 무엇이 그려져 있으면 좋을지 신중하게 선택하세요. 그리고 잘 어우러지도록 구성해야 합니다. 마치 하나의 심포니를 지휘하는 것과 같은 일이죠"라고 답했답니다.

2m 크기의 나무판에 그린 작품1은 포르나세티가 여러 사물을 얼마나 잘 지휘하는지 보여줍니다. 옷장 주인의 취미와 취향을 보여주는 듯한 이 그림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코트와 부츠, 우산과 넥타이, 긴 총과 골프채 등이 여기저기 무심히 놓여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발 떨어져 열린 옷장을 바라보면 어색한 느낌 없이 아주 조화롭게 보입니다. 심지어 '이 옷장의 주인은 아주 세련된 취향을 가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작품1
작품1 - 피에로 포르나세티, ‘옷장 인테리어’, 1950년대, 나무에 그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포르나세티 특별전’
포르나세티의 디자인과 장식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요? 그의 말대로 디자인과 장식은 우리에게 많은 상상을 하게 합니다. 장식과 디자인이 없다면 우리의 생각과 느낌의 폭은 아주 좁아지지 않을까요? 여러분도 포르나세티처럼 주변에 있는 평범한 물건과 디자인을 보며 자신만의 장식과 디자인을 만들어보세요.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