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연주 이끄는 지휘자의 열한째 손가락

입력 : 2017.02.04 03:08

[지휘봉]

서울시향 지휘자로 취임한 슈텐츠, 리허설 도중 지휘봉 부러져 화제
17세기 프랑스에선 지팡이로 지휘… 실수로 발가락 찧어 목숨 잃기도
가느다란 지휘봉은 19세기에 등장… 최근엔 맨손 지휘 늘고 있대요

지난달 서울시향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취임한 마르쿠스 슈텐츠(52)의 부러진 지휘봉〈사진〉이 화제가 됐어요. 취임 후 첫 공연을 준비하는 리허설에서 열정적으로 지휘하던 중 지휘봉이 세 동강 났다고 합니다. 지휘자가 연주에 심취해 지휘봉을 휘두르다 보면 보면대(譜面臺·연주할 때 악보를 펼쳐서 놓고 보는 대)나 다른 물체와 부딪쳐 이렇게 부러질 때가 있어요.

지휘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지휘봉은 막대 부분인 케인(cane)과 손잡이 부분인 핸들(handle)로 나뉘어요. 케인은 탄소섬유나 나무,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고 핸들은 알루미늄이나 코르크 등으로 만든 것을 많이 쓰지요. 지휘봉은 지휘자에 따라 길이부터 재질, 굵기가 다 제각각 다른데 같은 지휘봉이라도 지휘자의 키나 체구, 지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한답니다.

◇지팡이 지휘봉에 목숨을 잃은 륄리

19세기 전까지 지휘자들은 지금과 같은 가느다란 지휘봉을 쓰지 않았어요. 중세 시대에는 악보 뭉치를 막대기처럼 돌돌 말아 지휘하는 일이 드문드문 있었다고 합니다. 18세기 무렵에는 지휘자가 필요 없는 소규모 오케스트라의 악장(바이올린 연주자)이 박자를 제시하기 위해 바이올린 활로 지휘를 하기도 했지요.

지난달 서울시향 수석 객원 지휘자로 취임한 마르쿠스 슈텐츠(아래 왼쪽 사진)는 취임 후 첫 공연을 준비하는 리허설에서 지휘봉을 부러뜨렸어요(맨 위 사진).
지난달 서울시향 수석 객원 지휘자로 취임한 마르쿠스 슈텐츠(아래 왼쪽 사진)는 취임 후 첫 공연을 준비하는 리허설에서 지휘봉을 부러뜨렸어요(맨 위 사진).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자신이 직접 나무로 만든 지휘봉을 사용합니다(아래 오른쪽 사진). /연합뉴스·서울시향·뉴시스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지휘자들이 사람 가슴 높이까지 오는 굵고 무거운 지팡이로 연주자들을 지휘했답니다.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쳐 '쿵쿵' 소리가 나도록 해 연주자들이 박자를 맞추도록 하는 게 당시 지휘법이었지요.

이런 지휘 방식 때문에 지휘자가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어요. 안타까운 사건의 주인공은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1632~1687)입니다. 루이 14세를 위한 음악회에서 륄리는 너무 열정적으로 지휘한 나머지 그만 지휘용 지팡이로 자기 발가락을 세게 내리쳤어요. 이때 난 상처가 감염되면서 두 달 뒤 숨을 거두었지요. 이달 쾰른 필과 함께 내한 공연을 가질 지휘자 프랑수아 자비에 로트가 지난 2013년 륄리의 곡을 연주할 때 륄리의 지휘법을 그대로 재현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지휘자 따라 무게·크기·소재 달라

오늘날과 같은 가느다란 막대 형태 지휘봉은 19세기 초 독일에서 처음 등장했답니다. 이때는 나무를 깎아 지휘봉을 만들었는데 베토벤도 '합창' 교향곡 초연을 할 때 나무 지휘봉을 사용했어요. 가벼운 지휘봉이 등장하자 박자를 맞추는 데 집중하던 지휘자들은 연주 전반을 조율하고 지휘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바이올린 활이나 큰 지팡이를 쓰는 지휘법은 자취를 감추었지요.

최근에는 지휘봉을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요. 공기 저항을 받지 않고 연주자들에게 자유자재로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죠. 기성품을 사용하는 지휘자도 있지만 자기 취향에 맞게 지휘봉의 무게와 길이, 재질을 정해 주문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케인 길이는 보통 30㎝ 정도인데 멘델스존은 50㎝ 길이 지휘봉을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약 10㎝쯤 되는 작은 이쑤시개 모양의 독특한 지휘봉을 애용하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지휘자 켄튼 헤트릭은 지난 2006년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주하며 3m짜리 지휘봉을 사용해 '가장 긴 지휘봉'을 사용한 것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어요.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집 마당에서 기르는 올리브나무 가지로 손수 지휘봉을 만들어 사용한답니다.

지휘자들은 대부분 오른손으로 지휘봉을 드는데 왼손으로 지휘봉을 잡는 '왼손잡이 지휘자'도 아주 드물게 있어요. 핀란드 지휘자 파보 베르글룬드가 대표적입니다.

◇맨손 지휘가 늘어나는 이유는?

많은 분이 지휘봉을 지휘자의 상징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지휘봉 없이 무대에 올라 맨손으로 지휘하는 일도 많답니다. 과거에는 합창 음악 지휘자들이 맨손 지휘를 했는데, 최근에는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도 맨손 지휘가 늘어나는 추세예요. 피에르 불레즈,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대표적이고 20세기 초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도 지휘봉 없이 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했지요.

곡 성격과 분위기에 따라 지휘봉과 맨손 지휘를 섞어 쓰는 지휘자도 있어요. 두 지휘법이 각자 다른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지휘봉을 쓰면 지휘자가 연주자들에게 정확하게 신호와 지시를 보낼 수 있어요. 맨손으로 지휘하면 열 손가락으로 다양한 신호를 만들어 더 섬세한 연주를 끌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청중은 지휘자의 극적이고 격렬한 지휘 동작을 참 좋아해요. 하지만 결국에는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절묘한 앙상블에 가장 크게 감동한답니다. 어떤 지휘봉을 쓰고 어떤 포즈로 포디엄(지휘대)에 서는 것보다도 연주자들을 음악적으로 설득하고 이끌어 탁월한 연주를 해내는 것이 지휘자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김주영 피아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