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보수주의자 비스마르크, 노동자 위한 사회보험 만들다

입력 : 2017.02.02 03:09

[복지 제도의 도입]

독일 통일 후 사회주의 탄압하며 복지 제도 도입해 노동자 회유
경제 대공황·2차 대전 거치면서 영국 등 유럽에서 복지 제도 확산
심각한 비효율로 '복지병' 생기자 일 독려하는 '생산적 복지' 도입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주자들이 하나둘 복지 공약을 내놓고 있어요. 최근에는 기본소득제를 두고 정치인들이 날 선 공방을 벌이기도 했지요. 근래 선거에서는 어떤 복지 정책을 내세우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릴 정도로 복지 제도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복지 제도는 국민이 건강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국가·사회 제도를 뜻해요. 부양자와 소득이 없는 사람을 위한 기초생활수급보장을 비롯해 의료보험·산업재해보험·국민연금 등을 대표적인 복지 제도로 꼽을 수 있지요.

사실 복지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먼 옛날에도 먹을 것이 부족한 봄에 농민에게 쌀을 빌려주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보조금을 주는 정책이 있었지만, '가난한 백성이 불쌍해 나라가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여겼답니다. 오늘날처럼 국민의 복지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공유하는 복지 제도가 역사에 등장한 건 13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철혈재상의 품에서 태어난 복지 제도

근대적 복지 제도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독일의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1815 ~1898)입니다. 19세기 중반까지 독일은 여러 제후국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로 외세의 간섭을 받고 있었어요. 1862년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프로이센의 재상이 된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을 꿈꾸며 군사력을 증강하는 '철혈정책'을 추진했고, 그 결과 덴마크와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북독일 연방을 결성했답니다. 이어 1870년에는 강대국 프랑스와 전쟁에서 승리하며 독일을 통일하고 독일 제국을 수립하였어요.

1871년 프로이센의 국왕 빌헬름 1세가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의 황제로 취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독일 통일을 이끈 재상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최초의 복지 제도를 도입하였어요.
1871년 프로이센의 국왕 빌헬름 1세가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의 황제로 취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독일 통일을 이끈 재상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최초의 복지 제도를 도입하였어요. /위키피디아

통일된 독일을 강대국으로 발전시키려 했던 비스마르크는 곧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어요. 연이은 전쟁과 빠른 산업화로 생계가 어려워지거나 불만에 찬 노동자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지지하며 사회 운동에 나선 것이죠. 1875년에는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이 결성되어 의회에 진출하고 노동조합 운동도 활발해지면서 노사대립이 격화되었답니다.

이에 비스마르크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꺼내들었어요. 1878년 사회주의·공산주의 단체를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노동조합을 해체하는 강경책을 구사하면서 노동자를 포섭하기 위한 최초의 사회 복지 제도를 발표했어요. 1883년 의료보험범을 시작으로 공장에서 일을 하다 다친 사람을 위한 산업재해보험, 노인을 위한 노령연금제도 등이 차례로 도입되었답니다. 엄격한 보수주의자였던 비스마르크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복지 제도 도입을 통해 '노동자의 복지와 권리는 사회주의 정당이 아닌 국가가 지켜주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죠.

◇2차 대전과 베버리지 보고서

비스마르크 이후에도 서구에서는 자유방임주의의 한계가 드러나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이 성장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복지 제도가 빠르게 성장했답니다. 1930년대 전 세계를 덮친 경제 대공황은 정부의 시장 개입과 복지 제도의 필요성을 더 부각시켰어요.

더욱 광범위한 복지 제도가 도입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생존자도 삶의 터전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국가의 책임과 복지 제도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진 것이죠.

이에 영국에서는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전후 영국과 국민의 삶을 재건하기 위한 복지 정책을 담은 '베버리지 보고서'가 발표되었답니다. '결핍·질병·무지·나태·불결'이라는 5가지 중대 문제를 제거할 복지 정책을 제시한 이 보고서는 영국 국민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어요.

이후 집권 정당이 된 영국 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가족수당, 국민보험, 포괄적 의료제도 등 다양한 복지 정책을 펼치며 복지 국가로 나아갔습니다. 베버리지 보고서를 기초로 한 영국의 복지 제도는 큰 호평을 받으며 유럽 곳곳으로 확산되었지요.

◇대처리즘과 생산적 복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복지 국가도 문제가 생겼어요. 복지 제도가 확산되면서 정부와 공공부문이 비대해졌고, 이 탓에 경제와 사회 전반에 심각한 비효율이 발생했습니다. 과도한 복지에 기대어 무기력과 나태에 빠지는 사람도 늘어났고요. '영국병' '복지병'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답니다. 여기에 1970년대 오일쇼크로 전 세계에 경제 위기가 닥치자 경제 호황을 누렸던 복지 국가들의 재원에도 큰 문제가 생겼지요.

영국은 1979년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수상이 되면서 복지 제도의 비효율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어요. 대처는 강성 노조와 여러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금과 정부 지출, 과도한 복지 지출과 기업 규제를 줄이는 '대처리즘'으로 영국 경제의 부흥을 이끌어냈답니다. 여러 선진국도 과도한 복지는 줄이고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도록 독려하는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고요.

오늘날 각국의 복지 제도는 그 나라의 경제 사정과 정치·문화·사회적 차이에 따라 제각각 다르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어떤 복지 제도가 더 좋은 것인지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고 있지요. 앞으로 대선 주자들이 내놓을 여러 복지 공약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러분도 잘 고민해보도록 해요.

☞기본소득제란?

기본소득제도는 재산이나 소득, 취업 여부나 일할 의지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생활비를 국가가 지급하는 복지 제도예요. 핀란드에서는 지난 1일부터 실업자 2000명을 대상으로 2년간 월 560유로(약 70만원)의 소득을 국가가 지급하는 기본소득제가 시작되었어요.

기본 소득에 찬성하는 입장은 “기본 소득은 근로 의욕을 높이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복지 행정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대하는 쪽은 “기본 소득이 근로 의욕을 높이거나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국민의 세금 부담만 더 키울 것”이라고 말해요.

김승호 인천포스코고 역사 교과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