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외국산 흰색 계란, 명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18세기 프랑스 화가 샤르댕, 정물화에 흰 계란으로 생동감 더해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달리, 작품에 '부활' 상징하는 계란 활용
김성복의 계란은 인생의 고난 상징
- ▲ 작품1 - 장 시메옹 샤르댕, ‘주석을 댄 구리 냄비, 후추통, 부추, 달걀 세 개와 찜 냄비’, 1732년, 디트로이트 미술관 소장.
최근 조류인플루엔자 탓에 계란이 부족해지면서 미국에서 수입한 흰색 계란이 판매되기 시작했어요. 근래 국내에서 생산된 계란은 대부분 갈색 계란이지만, 1970년대만 해도 흰색 계란이 더 많이 생산되었답니다.
모처럼 국내에 선을 보인 흰색 계란은 유명 화가의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18세기 프랑스 화가 장 시메옹 샤르댕의 그림(작품1)에도 흰색 계란이 등장합니다. 돌 선반에는 계란 주위로 냄비 2개와 후추통, 부추도 놓여 있네요. 마치 맛있는 계란찜을 만들려고 주방 기구와 음식 재료를 준비해 놓은 것 같아요.
소박한 부엌 풍경을 그린 이 그림은 정겹고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구도와 색, 빛이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에요. 그림의 구도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데 화려한 원색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림 가운데 놓인 흰색 계란이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왼편에서 스며드는 부드러운 빛이 선반 위에 놓인 그릇과 음식 재료를 따뜻하게 감싸줘요.
일급 요리사는 비싼 식재료 없이 평범한 식재료만으로도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내죠? 소박한 소재와 단순한 구도, 안정된 색감과 따뜻한 햇볕만으로 명화를 만든 샤르댕도 일급 요리사와 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샤르댕이 '위대한 정물화가'라는 찬사를 받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 작품2 - 디에고 벨라스케스, ‘계란을 부치는 노파’, 1618년, 국립스코틀랜드미술관 소장.
17세기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도 계란을 그림의 소재로 활용했어요. 작품2를 보세요. 한 여관 주방에서 늙은 여인이 숯불 위에 질그릇을 올리고 계란 프라이를 부칩니다. 탁자에는 여러 그릇과 도자기 기름병, 야채가 놓여 있고 한 소년이 왼쪽에서 커다란 멜론과 포도주병을 든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군요.
언뜻 보면 서민의 주방을 그린 풍속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그림은 기독교 신앙을 담고 있어요. 늙은 여자가 왼손에 쥐고 있는 계란은 기독교의 부활 신앙을 상징합니다. 죽은 듯 움직이지 않다가 부화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계란을 기독교에서는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요. 부활절이 되면 기독교 신자가 계란을 선물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지요.
벨라스케스가 활동할 당시 스페인은 대부분의 국민이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였어요. 그래서인지 이 무렵 스페인에서 그려진 그림 대부분이 기독교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지요.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벨라스케스도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그림을 그렸던 거예요.
- ▲ 작품3 - 살바도르 달리, ‘나르키소스의 변형’, 1937년, 테이트 모던 소장.
약 300년 뒤 스페인에는 또 다른 거장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꿈을 그리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에요. 작품3은 달리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 전설을 꿈속의 한 장면처럼 표현한 그림이에요. 나르키소스 전설은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소스가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짝사랑하다 죽은 뒤 수선화로 변했다는 슬픈 이야기지요. 심리학에서 자신의 외모·능력을 지나치게 뛰어나다고 믿는 성향을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도 바로 나르키소스에서 따온 것입니다.
나르키소스는 그림 왼편 샘물가에서 왼쪽 무릎에 머리를 기대어 앉아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림 오른편에는 왼쪽 무릎이 엄지손가락, 왼팔은 검지손가락, 머리는 계란으로 바뀐 나르키소스가 있습니다. 계란이 깨진 틈에는 수선화가 피어나고 있고요. 나르키소스가 수선화로 다시 태어난 것을 부활의 상징인 계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 ▲ 작품4 - 김성복, ‘불확실한 위안’, 1999년.
우리나라의 조각가 김성복은 삶의 의지를 다지는 도구로 계란을 활용했어요. 작품 4를 보면 한 인물이 힘차게 앞으로 걸어갑니다. 씩씩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지만 몸동작에는 약간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평평한 땅이 아닌 계란 위를 걷고 있기 때문이죠.
작가는 왜 계란 모양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했을까요? 이는 "인생살이란 깨지기 쉬운 계란 위를 걸어가는 것처럼 위태로울 때가 많다"는 뜻이 있습니다. 고난과 위기의 순간이 닥쳐오면 용기가 꺾이고 의욕도 사라져 마치 계란 위를 걷는 듯한 불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들어지죠.
작가는 이 작품을 본 사람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이겨내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기를 바랐어요. 매끄러운 대리석이 아닌 단단한 화강암을 조각상의 재료로 선택한 것도 불굴의 의지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라는 작품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랍니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계란은 이렇게 명화를 빛내는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계란을 먹게 되면 가끔은 오늘 감상한 작품을 떠올리며 계란이 가진 여러 의미를 되새겨보는 건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