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녹색 도시' 꿈꿨어요

입력 : 2017.01.21 03:08

['훈데르트바서-그린 시티'展]

오스트리아 미술가 훈데르트바서, 건축가·환경운동가로도 활동
사람·나무·건물 함께 그려 넣어 자연과 도시, 인간의 조화 추구
그림에 건강한 자연의 힘 담았어요

작품2 - ‘굿모닝 시티’, 1969-70.
작품2 - ‘굿모닝 시티’, 1969-70.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훈데르트바서-그린 시티’展

사람은 수평의 땅 위에 수직으로 서 있습니다. 땅 위엔 사람뿐 아니라 나무도 서 있고 아파트도 서 있어요. 이 세 가지는 땅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습니다. 평생 친하게 지내야 할 운명이기도 하고요. 이런 생각으로 사람과 나무와 건물을 그렸던 미술가가 바로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 ~2000)예요.

긴 이름을 가진 훈데르트바서는 1962년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에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가로 참여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미술가이자 건축가, 환경운동가였어요. 전 세계가 도시를 개발하느라 정신이 없던 50여년 전 훈데르트바서는 선지자(先知者·남보다 먼저 깨달아 아는 사람)처럼 자연과 더불어 사는 녹색 도시를 꿈꿨어요. 이런 생각을 담은 그의 작품은 최근 자연친화적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지요. 지난달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는 훈데르트바서의 판화와 포스터, 건축 모형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답니다.

작품2을 보세요. 높은 건물들로 가득 찬 도시의 모습입니다. 건물 가운데에는 둥그렇게 붉은 공기층이 아래쪽에 하나, 중간에 하나, 그리고 꼭대기 쪽에 하나 있어요. 마치 건물 안에서 과열된 기계들이 창밖으로 내뿜는 뜨끈한 공기를 나타낸 것 같습니다.

사람도 나무처럼 발을 땅에 딛고 서 있을 때 건강해진답니다. 비를 맞은 흙의 촉촉함과 나무에서 나오는 산소는 기계가 내뿜는 건조한 열기에 지친 사람을 식혀주지요.

과학기술의 시대인 20세기에 사람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과시하듯 높은 건물을 많이 지었어요. 높은 건물은 멋지고 대단해 보이지만 정작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흙을 밟는 시간이 줄어들고 숲의 맑은 공기를 마시기도 어렵지요.

일찍이 훈데르트바서는 아파트 단지에 사람 수만큼 나무를 심어 사람과 나무가 친구처럼 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아파트 창문을 열면 나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초고층 건물은 옥상에 정원을 만들어 높은 곳에 사는 사람도 땅의 기운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고도 했어요.

작품3 - ‘자연의 힘’, 1972. 작품4 - ‘끝없는 도시’, 1988.
작품3 - ‘자연의 힘’, 1972. 작품4 - ‘끝없는 도시’, 1988.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훈데르트바서-그린 시티’展

'끝없는 도시'라는 제목의 작품4는 이런 훈데르트바서의 생각이 잘 드러나있어요. 땅 위에 나무가 살고 건물에 사람이 살고 다시 건물의 옥상 위에 나무가 사는 풍경이 수평과 수직으로 반복되고 있어요. 오직 수직으로만 높이 뻗은 마천루(摩天樓·하늘을 찌를 만큼 높은 건물)의 도시가 아닌 자연과 함께 사는 녹색 도시의 모습입니다.

작품3은 맨 위에 초록색 언덕이 보이고 언덕 아래 나지막한 지대에 사람이 사는 아파트가 빼곡하게 늘어서 있어요. 그림의 중앙에는 초록색 바탕에 눈·코·입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얼굴 같은 것이 있는데 아마도 자연을 표현한 듯합니다. 이 얼굴은 마치 비를 내리듯 신선한 생명의 물방울을 곳곳에 스며들게 하고 있어요. 사람을 건강하게 되살려내는 자연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기계적이고 규칙적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몸도 마음도 병이 나기 쉽다고 합니다. 사람은 기계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고, 기계처럼 규칙적이지도 않으니까요. 기계적인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늘 바쁘게 일해도 일이 밀려 있고, 아무리 달려도 곧 뒤처진 기분이 들어요.

기계적인 것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그 속도에 맞추어 살다보면 사람들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무언가를 놓쳐버리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훈데르트바서는 "아름다움이 만병통치약이다"라고 말했어요.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인간이 기계의 원리가 아닌 자연의 섭리대로 살며 인간성을 되찾는 것이에요.

작품1 - ‘노란 집들-함께 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픕니다’, 1966.
작품1 - ‘노란 집들-함께 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픕니다’, 1966.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훈데르트바서-그린 시티’展

작품1을 보세요. 밤이 되어 하늘은 깜깜해져 있는데 집집마다 전구가 켜져서 노랗게 밝혀져 있습니다. 자연은 어둠을 내려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로 돌아와 쉬라고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밖에서 일을 하고 있나봐요. 불을 켜놓은 집은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마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은 뒤늦게 후회해도 다시 돌이키지 못해요. 오늘부터라도 가족과 함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에 좀 더 집중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