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면벌부 비판으로 시작된 개혁, 근대 세계를 열다
[종교개혁 500주년]
교황청, 성당 증축하려 면벌부 팔자 루터가 반박문 발표해 개혁 시작
교황청 지배 벗어난 신교도 급증, 유럽 전체로 신교·구교 갈등 번져
30년 전쟁 후 종교의 자유 획득… 중세 막 내리고 근대가 시작됐어요
올해는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이 시작된 독일에서는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열리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1483~15 46)의 유적을 찾는 관광객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대요.
1517년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기독교뿐 아니라 유럽 세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어요. 나아가 유럽 문명이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발전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이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루터, 면벌부를 공격하다
- ▲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 /위키피디아
유럽의 중세는 로마가톨릭교가 사회 전반을 지배한 시대였어요. 로마가톨릭교의 수장인 교황은 왕보다 더 강력한 권위로 각국 정치·군사·사회 문제에 깊숙이 관여했답니다. 교황 뜻을 거역하면 곧 신의 뜻을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추방하거나 사형에 처할 큰 죄로 여겼어요.
15~16세기 무렵 오랜 시간 막강한 힘을 휘두른 교회와 성직자들이 부패하면서 부정 축재를 일삼고 황제·군주와 결탁해 농민들을 착취하는 일이 흔해졌어요. 그러자 이를 비판하는 사람도 하나둘 늘어났답니다. 법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신부가 된 루터도 그중 하나였지요. 당시 교황청은 성 베드로 대성당을 증축하고자 사람들에게 면벌부(2003년 7차 교육과정 개편으로 '면죄부'가 '면벌부'로 바뀜)를 팔았어요. "면벌부를 산 사람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는 벌을 받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며 신도들을 상대로 장사를 벌인 것이죠. 보다 못한 루터는 면벌부를 파는 교황청과 로마가톨릭교의 문제를 지적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였답니다.
사실 루터는 종교개혁을 벌일 생각은 없었어요. 부패한 교회와 교황청을 비판하며 자신이 생각한 진정한 신앙을 주장했을 따름이었죠. 하지만 루터의 반박문은 교황과 황제의 억압을 받던 제후와 농민의 큰 지지를 얻었어요. 교황청은 루터를 파문하고 신교를 탄압했지만 오히려 신교도는 점점 늘어났고, 독일은 루터를 지지하는 신교 세력과 황제와 교황청을 지지하는 구교 세력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어요.
◇구교와 신교의 갈등, 전쟁으로 치닫다
로마가톨릭교의 변화를 주장하는 종교개혁의 불길은 독일을 넘어 유럽 곳곳으로 번져나갔어요.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한 신학자 장 칼뱅(1509~1564)의 프로테스탄트도 큰 호응을 얻으며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에서 신자가 늘어났답니다.
그러자 유럽 곳곳에서는 신교도와 구교도 간 유혈 충돌이 벌어졌어요. 1572년 샤를 9세를 대신해 프랑스를 통치하던 섭정 카트린 드메디시스가 프랑스 신교도 지도자들을 유인해 살해하고 6일 만에 신교도 3000여명이 구교도에게 죽임을 당한 성 바르톨로메오의 학살이 대표적입니다.
- ▲ 1572년 프랑스 신교도들이 대거 학살된 성 바르톨로메오의 학살을 묘사한 그림이에요. 종교개혁으로 유럽 곳곳에서 신교도와 구교도의 유혈 충돌이 벌어졌어요. /위키피디아
두 세력의 갈등은 급기야 국가 간 전쟁으로도 번졌어요. 1618년 보헤미아(오늘날 체코)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페르디난트 2세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칙령을 취소하자 신교도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30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신교 국가였던 덴마크와 스웨덴이 신성로마제국이 다스리던 독일을 침공하자 구교 국가인 스페인이 신성로마제국을 지원하였어요. 신교 국가였던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벌였고요. 독일 전역은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신교도와 구교도가 피를 흘리며 싸우는 전쟁터로 변했어요.
◇근대 세계의 문을 열다
유럽 최후의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은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신교 국가의 승리로 끝났어요. 계속된 전쟁과 끊임없는 약탈, 학살로 독일은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고 국토는 쑥대밭이 되었지요. 1648년 30년 전쟁을 끝내는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면서 신교도는 종교의 자유를 얻었어요. 신교를 믿어도 더 이상 탄압받지 않게 된 것이죠.
종교개혁은 종교의 자유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유럽 세계 전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어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중세를 지배하던 로마가톨릭 교회와 신성로마제국은 힘을 잃었습니다.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난 군주들은 근대적인 국가와 절대왕정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지요.
종교개혁은 자본주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어요. 중세 기독교는 부를 쌓고 상공업에 종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어요. 반면 프로테스탄트는 사유재산을 긍정하고 근면 성실하게 일해 자본을 모으는 것을 신의 축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결과 부를 많이 쌓은 상공업자들이 자본가가 되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되었지요. 근대를 대표하는 평등, 자유, 이성과 같은 가치도 종교의 자유와 신 앞의 평등을 주장한 종교개혁을 거쳐 발전하게 되었어요.
☞청교도(Puritan)와 장로교회
영국에서 칼뱅의 프로테스탄트를 따르는 신자를 청교도라고 불렀어요. 청교도는 크게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의 영향을 받은 장로파와 철저한 신앙의 자유를 주장한 독립파로 나뉘어 있었답니다.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가 청교도를 탄압하자 청교도 장로파 일부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으로 넘어갔어요. 이들은 장로를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미국 장로교회를 세웠지요. 미국 장로교는 선교사 언더우드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약 70%를 장로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