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알 카포네, 정치인 구워삶아 억만장자 됐지만…
[정경유착]
1920년 술 판매·제조 금지되자 시장·경찰에 뇌물 줘 처벌 피해
법 어기고 술 팔아 막대한 부 축적
중국 역사상 최고의 상인 호설암
정경유착으로 10년 만에 거상 등극, 후원자 몰락하자 순식간에 파산
최근 삼성과 LG, SK 등 우리나라 주요 그룹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탈퇴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사실상 전경련이 해체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요. 전경련은 1961년 자유시장경제의 발전과 올바른 경제정책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설립되었지만 근래 대통령의 비선실세를 후원하고 그 대가로 부정한 혜택을 받는 정경유착(政經癒着)의 창구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있습니다.
정경유착은 기업가가 정치인에게 자금이나 뇌물을 주고, 정치인은 그 대가로 기업가에게 여러 특혜를 베푸는 부도덕한 밀착 관계를 뜻합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는 이런 정경유착이 끊임없이 벌어졌어요. 세계사에 등장하는 정경유착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상인
중국에는 "정치를 하려면 모름지기 증국번(19세기 중국 청나라 정치가)을 봐야 하고, 장사를 하려면 호설암(胡雪巖)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호설암의 본명은 호광용(胡光墉·1823~1885)으로 설암은 그의 호입니다. 19세기 말 중국 청나라에서 활동한 호설암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상인'으로 불려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호설암은 단 10년 만에 중국 최고의 부를 가진 거상이 되었고, 상인으로 드물게 높은 벼슬에도 올랐어요. 베풀기에 인색했던 당대 상인들과 달리 수해나 가뭄이 난 지역에 구호물자를 아낌없이 보낸 의인(義人)이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호설암이 상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정경유착의 힘을 빌렸기 때문이에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호설암은 고향을 떠나 저장성 항저우에 있던 전장(錢莊·은행 이전에 있던 금융업체)에 말단 사원으로 들어갔어요. 이 때 행색이 초라한 선비 왕유령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호설암은 회삿돈 500냥을 마음대로 꺼내어 왕유령에게 빌려주었어요.
이 일로 호설암은 전장에서 해고되었지만, 놀랍게도 왕유령은 빌린 돈을 활용해 저장성의 재정과 식량을 총괄하는 높은 관료가 되었어요. 호설암은 왕유령의 후원 하에 사실상 저장성의 재정 관리를 맡게 되었고요. 이를 통해 호설암은 자신의 전장을 열고 저장성의 군량미 운반과 무기 납품을 독점해 막대한 돈을 벌었어요. 비단업과 찻집, 약국 등으로 사업을 넓혀 중국 전역에 점포를 둔 거상으로 성장했답니다.
1851년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고 이를 진압하던 왕유령이 전사하자 호설암은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러 저장성에 온 좌종당(左宗棠·1812~1885)과 결탁했어요. 군사를 먹일 군량미가 없던 좌종당에게 군량미를 지원해 정경유착을 맺은 것이죠.
호설암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정경유착은 다시 그의 몰락을 불렀어요. 좌종당이 권력투쟁에서 패해 몰락하고 그의 라이벌이던 이홍장이 청나라 권력을 쥐게 되면서 호설암도 버림을 받은 것이죠. 외국 상인과 경쟁하던 호설암은 이홍장의 계책에 휘말려 순식간에 파산했고, 파산한 지 1년 만에 화병으로 생을 마감하였어요.
◇금주법 덕분에 갑부가 된 마피아
유럽에서는 왕권과 상업이 동시에 발달한 절대왕정 시기에 정경유착이 만연했어요. 상인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왕에게 뇌물을 바쳐 독점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들이 등장한 것이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등장한 후에도 정경유착은 사라지지 않았답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범죄조직이 정경유착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기도 했어요.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본명 '알폰소 카포네'·1899~1947)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이탈리아 이주민의 아들로 태어난 알 카포네는 성인이 된 후 시카고를 주름잡던 폭력 조직 '마피아'의 두목 조니 토리오의 경호원이 되었어요. 토리오의 오른팔로 다른 범죄조직을 제압해 신임을 얻은 알 카포네는 1925년 두목 자리를 물려받아 암흑가의 제왕이 되었습니다.
이후 알 카포네는 폭력과 살인을 일삼으며 불법적인 사업으로 돈을 벌었지만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어요. 시카고 경찰과 정치인들에게 뇌물과 후원금을 주는 대가로 단속과 처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죠. 시카고 시장이던 윌리엄 톰슨은 알 카포네와 마피아를 도와주는 대가로 이들에게 정치자금을 받고 선거에 마피아 조직원을 동원하기도 했답니다.
- ▲ 193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보안관들이 압수한 밀주(허가 없이 몰래 만든 술)를 버리는 모습이에요. 1920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 전역에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금주법이 시행되자 시카고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오른쪽 사진)는 정경유착을 통해 술을 팔아 막대한 돈을 벌었어요. /위키피디아
특히 1920년부터 1933년까지 시행된 금주법(禁酒法)은 알 카포네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었어요. 사람들은 술을 구하기 어려워진 반면 알 카포네는 불법으로 술을 만들어 팔아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1927년 알 카포네가 공식적으로 벌어들인 돈만 1억달러가 넘었다고 합니다.
시카고 당국의 비호를 받는 알 카포네의 악명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자 결국 미 연방정부가 나섰어요. 1931년 연방정부 특별수사대가 알 카포네를 탈세 혐의로 고소했고, 알 카포네는 11년 징역형을 받아 감옥에 갇혔어요. 1939년 감옥에서 나온 알 카포네는 병을 앓다가 5년 뒤 쓸쓸히 죽음을 맞았습니다.
☞금주법(禁酒法)
금주법은 술의 제조와 판매·유통을 금지하는 법으로 미국에서는 1920년부터 1933년까지 13년 동안 시행되었어요. 제1차 세계대전으로 곡물이 부족해지자 ‘술 생산에 들어가는 곡물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를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과 근로자의 과도한 음주를 꺼려했던 산업자본가들이 지지하면서 미 의회가 금주법을 제정하였지요. 하지만 취지와 달리 금주법은 오히려 불법적인 술 제조·유통을 키웠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마피아 등 범죄 조직이 활개를 치는 배경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