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오리고 붙이고 지우고… 신문, 예술과 만나다
입력 : 2017.01.07 03:09
[명화와 신문]
입체주의 프랑스 화가 브라크
작품 중앙에 실제 종이 신문 붙여 고정관념 깬 '파피에 콜레' 발명
신문 읽는 아버지 그린 세잔, 친구 위해 신문 제목 강조해 그렸죠
오늘날과 같은 신문이 처음 등장한 곳은 인쇄술과 우편제도가 발달한 17~18세기 유럽입니다. 신문을 가리키는 '뉴스페이퍼(newspaper)'라는 말도 17세기 말 영국에서 처음 사용되었지요. 신문이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이 손쉽게 새로운 소식과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어요. 동시에 신문은 예술 작품의 새로운 소재가 되기도 했답니다.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준 프랑스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작품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어요. 작품1에서 신문을 읽는 사람은 세잔의 아버지 루이 오귀스트 세잔입니다. 그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엑상프로방스에서 은행을 운영할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였는데, 매일 신문을 즐겨 읽었대요.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준 프랑스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작품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어요. 작품1에서 신문을 읽는 사람은 세잔의 아버지 루이 오귀스트 세잔입니다. 그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엑상프로방스에서 은행을 운영할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였는데, 매일 신문을 즐겨 읽었대요.
이 초상화가 그려진 1866년 당시 새로운 미술사조인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마네가 전시회에 그림을 응모했다가 심사위원단으로부터 혹평을 받은 일이 있었답니다. 인상주의를 지지하던 졸라는 마네의 그림이 가진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심사위원단의 편협한 관점을 비판하는 글을 레벤망에 실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인상주의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독자들이 졸라의 글에 거세게 항의했고, 이후 졸라는 레벤망에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답니다.
마네와 같이 인상주의 작품을 그리던 세잔은 인상주의를 변호한 친구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기 위해 이 작품 속에 '레벤망'이라는 신문 제목을 일부러 눈에 띄게 그렸어요. 이후 그림 속 신문은 졸라가 미술비평의 선구자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19세기 위대한 예술가로 평가받는 세잔과 졸라의 우정을 보여주는 소중한 단서가 되었지요.
종이 신문은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미술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어요. 피카소와 함께 '입체주의'를 탄생시킨 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1882~1963)의 작품 '바이올린과 파이프'〈작품2〉를 보세요. 작품 한가운데 신문 '르 코타디앵(le quotidien)'이 있어요. 작품 속 신문은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 신문을 화폭에 붙인 거랍니다.
이렇게 화폭에 실제 신문과 종이 등을 붙이는 기법을 '파피에 콜레(papier coll�·종이 접착)'라고 해요. 1912년 브라크가 개발한 이 기법은 작품에서 현실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가 뛰어나고 화면에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요. 파피에 콜레가 등장하면서 화가들은 '그림은 반드시 물감으로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술 영역을 탐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일본 작가 온 가와라의 작품에도 종이 신문이 등장합니다. 작품3은 '1977년 12월 29일'이 캔버스 앞면에 그려져 있고 캔버스 뒷면에는 그날 발행된 미국 뉴욕타임스 신문이 붙어 있어요.
온 가와라는 여러 가지 바탕색이 칠해진 캔버스에 흰색 물감으로 날짜를 그려 유명해진 화가입니다. 1966년 1월 4일 처음 날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2014년 7월 10일까지 50여 년간 하루에 그날의 날짜만 그렸어요. 자정까지 그날의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면 미련 없이 그리던 작품을 파손했다고 합니다.
온 가와라는 왜 날짜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날 발행된 신문을 캔버스 뒷면에 붙였을까요? 그는 '오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단 한 번뿐인 소중한 날'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하루하루가 똑같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한국 작가 최병소에게 종이 신문은 자기 수행의 도구입니다. 작품4의 화폭은 신문지이고 새까맣게 번들거리는 것은 신문지를 볼펜으로 긁은 자국과 연필로 그은 흔적이 합쳐진 거예요. 최 작가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신문지를 검정 볼펜으로 수천 번 긋고 그 위에 연필로 다시 수천 번 까맣게 칠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신문 한 면을 다 지우는 데 볼펜 20자루와 연필 2자루가 쓰일 정도로 힘든 작업이지요.
'신문은 살아 있는 역사'라고 생각한 그에게 신문을 지우는 작업은 역사의 어두운 면을 지우고 새로운 역사를 채워나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참된 나'로 거듭나기 위한 자기 수행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는 "신문을 지우는 일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그리기인 동시에 지우기이고, 채우기인 동시에 비우기"라고 말했지요.
이렇게 신문은 예술가의 손을 거쳐 관객에게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예술 작품이 됩니다. 여러분도 신문을 열심히 읽고 난 뒤 어떻게 신문을 활용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