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식물] 美 유타주 사시나무 4만 그루, 한 뿌리로 이어져 있어요
사시나무 군락
- ▲ 하나의 뿌리에서 동일한 유전정보를 물려받은 사시나무가 무성한 ‘판도’의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사시나무는 흰 나무껍질에 검은 흉터를 가진 키 12~30m의 버드나뭇과 나무예요. 넓은 잎을 가진 활엽수로 우리나라에는 수원사시나무, 은사시나무 등이 살고 있답니다. 사시나무의 잎은 다른 나뭇잎보다 잎자루가 유독 길어 약한 바람에도 파르르 떠는 모습을 보여요. 몸을 몹시 떠는 모습을 보고 '사시나무 떨듯 한다'고 말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미국 유타주에는 '판도(Pando)'라고 부르는 무려 팔만 살 먹은 미국사시나무 군락(群落·같은 조건에서 떼를 지어 자라는 식물 집단)이 있답니다. 인류가 돌을 떼어 도구로 사용한 구석기시대에 태어난 판도는 지금도 4만여 그루의 사시나무가 울창한 모습을 뽐내고 있어요.
판도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43㏊(헥타르·1㏊는 100m x 100m)로 일반적인 사시나무의 군락보다 무려 10배 이상 넓어요. 재미난 점은 판도를 이루는 이 4만여 그루의 나무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와 똑같은 유전정보를 물려받은 녀석들이라는 점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4만여 그루의 나무지만, 모두 한 뿌리로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이는 '포기 나누기'라고 부르는 사시나무의 독특한 번식 방법 때문이랍니다. 사시나무는 뿌리를 넓게 펼치다가 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나면 그 지점에서 나무줄기를 땅 위로 뻗어 올립니다. 그 줄기가 새로운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는 것이죠. 이 나무는 다시 뿌리를 뻗어 같은 방법으로 다른 곳에 줄기를 올려 한 그루의 나무를 만듭니다. 판도는 8만여 년 동안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죠. 'Pando'라는 이름도 라틴어로 '나는 뻗어나간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랍니다.
미국사시나무 중에서도 판도만 유독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어요. 그중 하나는 기후변화입니다. 약 1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찾아온 뒤 미국 서부의 기후가 아주 건조해졌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수나무의 꽃가루가 암나무에 수정되는 방식의 번식 방법을 사용하기 어려워지자 사시나무가 뿌리를 뻗어 줄기를 올리는 '포기 나누기'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고 추정해요.
건조한 기후 탓에 이 지역에 산불이 빈번히 일어난 것도 판도가 커질 수 있었던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산불로 다른 나무들이 불에 타 사라지는 동안 지표면 아래 이어진 판도의 뿌리만 살아남아 거대한 군락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죠. 사시나무는 보통 전나무나 소나무에 밀려 숲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는데, 잦은 산불이 사시나무의 경쟁자들을 없애주어 판도가 커질 수 있었다는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