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녹색 커튼 덮인 밤하늘… 벅찬 감동까지 담아냈어요

입력 : 2016.12.31 03:08

[스미스소니언 사진展]

카누 타고 여행하던 중 만난 오로라·나무 구멍 속 위장한 올빼미 등 자연 속 진귀한 장면 사진으로 촬영
버려진 오리엔트 특급열차 속 꼼짝 않는 모델 강아지 앉혀 '찰칵'…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 남겼대요

2016년이 이제 이틀 남았네요. 한 해 동안 여러 순간이 우리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죠? 사람들은 가끔은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럴 때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요. 그 작은 기록들이 켜켜이 쌓여 지식이 되고 문명을 이룹니다.

인류의 지식을 넓히기 위해 아무리 작은 기록이라도 소중히 지키려는 교육 연구기관들이 있어요. 그중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미국의 스미스소니언협회랍니다. 지난 10일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해마다 열었던 사진 콘테스트에 선발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어요.

작품1~4
혹시 오로라를 본 적이 있나요? 죽기 전에 오로라를 한 번이라도 꼭 보는 것이 소원인 분이 아주 많지요. 작품1을 촬영한 사람은 그 꿈을 이루었어요. 사진을 찍은 이는 혼자서 카누를 타고 일곱 달 동안 여행을 하던 중이었대요. 맑은 물과 공기를 맞으며 때로는 자연의 소리를 오롯이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기도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밤 드디어 오로라를 만났어요. 녹색의 커튼이 하늘에서 요동치는 듯한 어마어마한 광경을 그는 세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켜보았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동의 세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그는 셔터를 눌렀어요.

자연 곳곳에는 오로라처럼 진귀한 장면들이 숨어 있어요. 그런 장면을 사진에 담기 위해 여섯 시간 동안 숨도 크게 쉬지 않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린 사람이 있어요. 바로 작품2를 촬영한 사진작가입니다. 이 사진에는 나무만 보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껍질처럼 보이는 얼룩얼룩한 무늬를 가진 새가 숨어 있어요.

이 새는 '귀신소쩍새'라고 불리는 올빼미로, 위장술이 뛰어나 도무지 눈에 띄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답니다. 올빼미답게 밤에만 활동하고 낮에는 나무 구멍 속에서 가만히 시간을 보낸대요. 사진작가는 귀신소쩍새가 사는 나무 구멍 앞에서 여섯 시간을 기다린 끝에 이 새가 잠깐 둥지 밖으로 얼굴을 내민 장면을 찍을 수 있었어요.

운이 좋으면 한 시간 만에도 흥미로운 볼거리를 사진에 담을 수도 있어요. 작품3은 자신의 입안에 알을 잔뜩 품고 있는 노란머리조피시 수컷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노란머리조피시는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알을 입에 품어 돌보는 독특한 물고기랍니다. 입에 알을 품는 동안 수컷은 먹이를 먹을 때 알들을 잠깐 뱉어내고 먹이를 삼킨 후 뱉어놓은 알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잽싸게 다시 입에 넣습니다. 보는 사람이야 재미있지만 알이 상하지 않게 보살펴야 하는 수컷에겐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겠죠?

사진 속 조피시는 사진작가가 한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자신의 적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입을 커다랗게 열어 품은 알들을 자랑하듯 보여주었대요. 사진작가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칠까 봐 찰칵하고 셔터를 누른 것이죠. 이렇게 사진기의 눈은 사람의 눈보다 세상을 훨씬 가깝게 끌어당겨 보여줄 수 있어요. 이런 사진을 보면 작은 세상에 담긴 커다란 우주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사진작가가 기막힌 장면을 찍으려면 좋은 모델이 필요할 때도 잦아요. 최초의 사진은 1839년경에 촬영되었는데, 은판에 이미지가 새겨지려면 시간이 제법 걸렸던 탓에 모델이 반나절 동안 꼼짝 않고 사진기 앞에 있어야 했대요. 참을성 없이 부산하게 꼼지락대는 강아지는 꼬리가 서너 개 달린 흐릿한 모습으로 찍히기 일쑤였답니다.

하지만 작품4에 등장하는 개는 달라요. 올해로 세 살인 이 개의 이름은 클레어인데, 사진 모델을 정말 잘하는 개랍니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보통 개들과 달리 클레어는 사진기 앞에서는 눈도 깜빡거리지 않는다고 해요. 클레어의 주인은 버려진 건물이나 장소를 찾으면 그것이 영영 사라져 버리기 전에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해요. 사진 속 클레어가 타고 있는 오리엔트 특급열차도 지금은 아무도 타지 않지만, 한때는 새것이었고 많은 사람이 이 열차를 타고 들뜬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지요.

추억이 담긴 무언가를 더 이상 실제로 볼 수 없게 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래서 그걸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사진작가는 셔터를 누릅니다. 언젠가는 사진을 통해 잊혀가는 것들을 그리움으로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어쩌면 의미 있는 순간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숨죽여 기다리고 또 멈추어 붙잡아두려고 했기 때문에 그 순간이 특별해진 것인지도 몰라요. 오늘 보여 드린 사진 속 순간들처럼 말이죠.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