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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주춤했던 핵 경쟁, 다시 불붙을까 걱정돼요

입력 : 2016.12.29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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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감축]

미국 트럼프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 핵 능력 강화 주장해 전 세계 긴장
2차 대전 후 냉전 돌입한 미국·소련, 핵무기 수 늘려 '공포의 균형' 유지
1991년 핵무기 감축하기로 합의… 현재 7000여 개 정도로 줄였대요

지난 22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략핵무기 부대의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발언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이를 받아치듯 트위터에 "세계가 핵무기에 대한 분별력을 가질 때까지 미국은 핵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어요. 같은 날 두 사람이 핵 능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전 세계가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답니다. 두 나라 간의 핵무기 경쟁이 다시 시작될 경우 수십 년에 걸쳐 핵무기 수를 줄여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죠.

◇2차 대전과 맨해튼 프로젝트

핵무기는 원자핵의 분열·융합에 의해 발생하는 엄청난 폭발 에너지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무기예요. 1930년대 말 핵무기의 원리가 밝혀졌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처음으로 사용되었지요.

핵무기를 처음으로 개발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2차 대전 때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을 온 과학자들이 미국 정부에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건의했어요.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를 수락하면서 1942년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됐답니다. 독일계 유태인의 후손인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에는 연인원 13만명과 약 3000억달러의 예산이 투입됐고 여러 나라 과학자가 참여했어요.

 

핵탄두 폭발 사진
사진=Getty Images Bank

미국 뉴멕시코 사막에서 이루어진 핵실험 결과 원자폭탄의 위력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무시무시했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오펜하이머가 "이제 나는 세계의 파괴자, 죽음의 신이 되었다"고 자책할 정도였지요.

1945년 최초의 원자폭탄이 완성되었고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어요. 단 두 발로 약 2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어요. 핵무기의 끔찍한 파괴력이 드러나면서 2차 대전은 막을 내렸어요.

◇냉전과 핵 경쟁 시대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개발된 핵무기는 오히려 2차 대전이 끝난 뒤 그 수가 더 늘어났어요. 자본주의 진영을 주도한 미국과 공산주의 진영을 주도한 소련이 냉전(cold war)에 들어가면서 치열한 군비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에요.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한 이후 미·소 양국은 경쟁적으로 핵무기 수를 늘렸어요. 미국은 1960년대 중반 핵탄두 3만 1000기를 보유했고, 소련은 1980년대에 4만기 가까이 핵탄두 수를 늘렸답니다. 두 나라는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서로를 완전히 파괴할 정도의 핵무기로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였어요.

핵무기는 미·소 외에도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어요. 영국과 프랑스가 1952년과 1960년에 핵실험에 성공하며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고 미·소와 갈등을 겪은 중국이 1964년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답니다. 1970년 5개 나라만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한 NPT가 발효됐지만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도 핵무기를 갖게 되었지요.

◇핵무기 감축을 위한 노력

핵무기의 수가 늘어나자 "이대로 가면 인류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어요.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에서는 전쟁과 핵무기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졌고, 두 나라 모두 핵무기 경쟁에 투입된 막대한 예산으로 인해 경제에 큰 부담을 느꼈답니다.

두 나라는 1969년부터 핵무기를 제한·감축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했어요. 여러 협정을 통해 탄도미사일 등을 줄이기로 했지만 두 나라의 핵무기 양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답니다.

핵무기 감축은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장거리 핵무기를 7년에 걸쳐 각각 30%, 38% 줄이기로 하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체결했답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도 러시아와 미국은 여러 차례 핵 감축 협상을 벌여 2만기 넘게 갖고 있던 핵무기를 현재 7000여 개 정도로 줄였어요. 두 나라 외에 영국과 프랑스, 중국이 각 200~300개, 인도와 파키스탄이 120개 내외, 이스라엘이 8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요.

트럼프 당선인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23일 "핵무기 경쟁을 하자는 취지는 아니었다"며 자신들의 발언이 너무 확대되었다고 해명했답니다. 아무쪼록 그 말을 지켜 인류의 미래와 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가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2차 대전 때 원자폭탄 개발을 주장하였다가 이후 크게 후회했던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어요. "총알은 사람을 죽이지만, 핵무기는 도시를 파괴한다. 탱크로 총알을 막을 수 있지만,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핵무기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펜하이머

☞비운의 과학자 오펜하이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 967·사진)는 상대성이론과 블랙홀 등에 중요한 연구 업적을 남긴 천재적인 물리학자였어요. 초·중·고 시절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고 1925년 하버드대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답니다.

원자폭탄을 만든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던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2차 대전이 끝나자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미국 내에서 국가적 영웅이 되었어요. 하지만 정작 본인은 원자폭탄으로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것을 보고 심한 양심의 가책과 과학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꼈다고 합니다.

이후 미국 정부가 원자폭탄보다 강한 수소폭탄을 개발하려 하자 오펜하이머는 여기에 반대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공산주의자로 몰리면서 자신이 맡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어요.



윤형덕 하늘고 역사 담당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