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작곡·피아노 연주에 글쓰기까지 뛰어났던 '리스트'
[만능 음악가들]
독창적인 피아노곡 만들고 연주… 에세이 짓는 등 문필가로도 활동
19세기 중반 음악가 전문화됐지만 슈바이처, 의사·오르가니스트 겸업
러시아 보로딘도 화학자 겸 작곡가
지난가을에 열렸던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야 피셔의 내한 독주회는 피셔의 앙코르 연주로 화제가 되었답니다. 관객의 앙코르 요청에 바이올린을 들고 무대에 나온 피셔는 돌연 피아니스트의 곁으로 가 피아노 연탄(한 대의 피아노에서 두 명이 연주하는 것)으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완벽하게 연주했어요. 단번에 악기를 바꿔 완벽한 연주를 선보인 피셔의 재능에 많은 관객이 감탄했다고 합니다.
통상 '음악가'라고 하면 우리는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플루티스트, 지휘자, 작곡가 등 여러 직업을 두루 떠올리죠. 불과 200년 전 유럽에서 '음악가'는 그저 음악가일 뿐이었습니다. 작곡은 물론 악기도 잘 다룰 줄 알아야 음악가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이죠.
가령 관악기를 위한 곡을 작곡했다면 자신이 관악기를 연주할 수 있어야 했고, 교향곡을 만들었다면 자신의 곡을 직접 지휘하는 것이 음악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
◇'수퍼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
오늘날 작곡가로 명성이 높은 인물들이 당대에는 연주자로 이름을 날린 경우도 많아요. '사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방방곡곡 여행을 다니며 자신이 쓴 협주곡을 연주했답니다. '보케리니의 미뉴에트' 으로 유명한 루이지 보케리니(1743~1805)는 첼로 연주의 명인이었고요.
두 사람과 같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사람은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입니다.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바이올린 곡을 많이 남긴 파가니니는 자신이 쓴 곡들을 직접 연주하며 관객들에게 강한 카리스마를 선보였다고 해요.
파가니니의 작품들은 지금도 바이올린 곡 중에 기교적으로 가장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답니다. 그가 뛰어난 연주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탁월한 작품들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 ▲ 1882년 프란츠 리스트가 관객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에요. 리스트는 독창적이면서도 난해한 기교를 담은 피아노곡을 작곡하고 연주한 음악가였어요. /위키피디아
여러 음악가 중에서도 헝가리 출신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다재다능함을 갖춘 '멀티 음악가', 나아가 '수퍼 음악가'로 부를 수 있는 천재적인 인물입니다. 리스트는 아주 독창적이고 난해한 기교와 음향을 담은 피아노 작품을 작곡하고 연주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다방면으로 여러 업적을 남겼어요.
리스트는 형식이 자유로운 관현악곡인 '교향시'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개척했고, 동료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등의 첫 공연에서 지휘자로 나서기도 했어요. 베토벤, 슈베르트 등 선배 작곡가들의 교향곡과 가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고 독일 바이마르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지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는 음악가였던 리스트는 자신의 추천이나 조언을 바라는 장문의 편지를 일 년에 2000통 넘게 받았다고 해요. 여러 일정으로 너무나 바빴던 리스트는 음악 잡지와 신문 등에 "앞으로 내게 악보나 편지를 일절 보내지 마시오"라는 내용의 광고를 내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편지는 멈추지 않았고 리스트는 그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해주었다고 해요. 그가 남긴 수많은 곡과 편지, 문필가로서 뛰어난 자질을 보인 에세이 등은 너무나 방대해 아직도 완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죠?
◇슈바이처 박사는 오르간 연주의 명인
오늘날처럼 연주자와 지휘자, 작곡가 등이 전문적으로 나뉘게 된 건 19세기 중반 무렵입니다. 그럼에도 다방면으로 재능을 발휘한 음악가들은 계속해서 등장했지요.
음악과 전혀 다른 분야를 겸업했던 사람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러시아의 알렉산더 보로딘(1833~1887)입니다. 대학에서 화학과 의학을 전공한 보로딘은 작곡가 발라키레프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작곡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러시아 국민음악파 5명 중 한 사람이 되었어요. 대표작으로 교향곡 2번, 교향시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등을 남겼는데 화학자로서 여러 연구를 하느라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답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1875~1965)는 의사로서 아프리카 등에서 헌신적인 활동을 펼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지요. 동시에 그는 바흐의 음악을 연구하고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탁월하게 해석해낸 오르가니스트이기도 했답니다. 괴짜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굴다(1930~2000)는 자신의 음악회에서 클래식과 재즈를 동시에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인 재즈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어요.
1929년 독일에서 태어난 미국 음악가 앙드레 프레빈은 10대부터 재즈 피아니스트와 편곡자, 영화음악 작곡가로 일했어요. 그러다 1960년대 초부터 클래식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답니다. 오늘날 프레빈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런던 심포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지휘자로 알려져 있고, 영화음악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탁월한 영화음악 작곡가로 알려져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