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미국 국무장관의 '바보짓', 사상 최고의 거래로

입력 : 2016.12.22 03:10

[알래스카 조약]

크림전쟁 후 재정난 빠진 러시아, 미국에 알래스카 거래 제안… 수어드 장관, 720만달러에 매입
'바보 같은 짓'이라 비난받았지만 이후 지하자원 발견되며 가치 폭등… 현재 가치 수조달러에 달한대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차기 국무장관으로 거대 정유 회사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인 렉스 틸러슨을 지명했어요. 틸러슨은 17년 전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분을 쌓았고, 러시아 정부로부터 '우정훈장'을 받을 정도로 러시아와 가까운 인물이랍니다. 틸러슨이 미국의 외교를 이끌게 되면서 그간 사이가 좋지 않았던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요.

과거 러시아와 미국은 서로 영토를 사고파는 거래를 하기도 했어요. 당시 미 국무장관인 윌리엄 수어드(1801~1872)가 주도한 이 거래는 향후 두 나라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거래의 주인공은 바로 북아메리카 대륙 북서쪽에 있는 알래스카(Alaska)입니다.

◇러시아 모피 무역의 거점이 되다

'알래스카'는 알래스카 원주민인 알류트족의 언어로 '위대한 땅(또는 거대한 땅)'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한반도보다 7~8배 넓은 알래스카에는 약 1만년 전 북동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건너가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867년 윌리엄 수어드(왼쪽에서 둘째) 미 국무장관과 워싱턴 주재 러시아 공사 예두아르트 스테클(오른쪽에서 셋째)이 알래스카 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이에요.
1867년 윌리엄 수어드(왼쪽에서 둘째) 미 국무장관과 워싱턴 주재 러시아 공사 예두아르트 스테클(오른쪽에서 셋째)이 알래스카 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이에요. /위키피디아
이누이트족과 알류트족이 살던 알래스카는 1741년 안나 여제의 요청을 받은 덴마크 출신 탐험가 비투스 요나센 베링(1681~1741)에 의해 발견되면서 러시아제국의 영토가 되었어요. 이후 해달이 많은 알래스카로 러시아 모피 상인이 하나둘 이주하기 시작했고, 19세기 초 알래스카는 모피 무역의 거점으로 번성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1853년에 시작된 크림전쟁에서 러시아제국이 오스만제국과 영국·프랑스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에 패하면서 알래스카는 애물단지로 전락했어요. 크림전쟁 도중 연합군 함대가 캄차카 반도를 점령하자 러시아제국은 "우리 해군력으로는 시베리아 해안과 알래스카를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답니다. 게다가 과도한 모피 생산으로 해달이 멸종 위기에 처하면서 알래스카의 모피 무역도 전처럼 많은 돈을 벌어주지 못하고 있었어요.

◇720만달러에 알래스카를 매입하다

이런 상황에서 승전국인 영국이 알래스카를 빼앗으려는 조짐을 보이자 러시아제국은 영국과 사이가 좋지 않던 미국에 알래스카를 팔기로 결정했답니다. 영국에 거저 빼앗길 바에 적은 돈이라도 받고 파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크림전쟁 패배로 정부의 재정난이 심각했던 것도 러시아제국이 알래스카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선 또 다른 이유였어요.

미국 알래스카
러시아 측의 제안을 받은 앤드루 존슨 미국 대통령과 윌리엄 수어드 국무장관은 알래스카를 사들이기로 했어요. 이런 미국의 결정에도 영국이 큰 영향을 미쳤답니다. 과거 미국을 지배한 영국이 알래스카를 차지할 경우 다시 미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1867년 미국은 러시아제국과 협상을 통해 알래스카의 땅 1㏊당 5센트로 환산해 720만달러를 지불하고 알래스카를 사들였답니다(알래스카 조약).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내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왔어요. 당시 많은 사람이 "우리한테 왜 이렇게 큰 얼음 박스가 필요한 거냐"라며 알래스카를 사들인 정부를 조롱했답니다. 알래스카를 사들인 수어드 장관의 결정은 '수어드의 바보짓(Seward Folly)'이라고 불렸어요. 미국 사람들은 알래스카에 '수어드의 냉장고' '다 빨아먹은 오렌지' '북극곰의 정원'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붙이기도 했답니다.

◇'바보짓'이 '역사상 최고의 거래'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래스카는 '위대한 땅'으로 불릴 만한 반전을 선보였어요. 1897년에 금광이 발견된 이후 석유, 석탄, 천연가스, 철 등 각종 지하자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팽팽한 대립을 보인 냉전 시대가 열리자 알래스카는 군사적 요충지로도 거듭났어요. 미국은 시베리아와 가까운 알래스카에 미사일을 배치해 소련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었답니다.

1959년 미국의 49번째 주로 편입된 알래스카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사는 주 중 하나로 꼽혀요. 최근에는 잘 보전된 자연환경이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되어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답니다.

현재 알래스카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조달러라고 해요. 720만달러에 사들인 알래스카의 가치가 수십만 배 폭등한 것이죠.'수어드의 바보짓'이라 불렸던 알래스카 매입은 오늘날 미국 사람들에게 '역사상 최고의 거래'라는 칭찬을 받고 있답니다. 반대로 러시아 역사학자들은 알래스카 조약을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멍청한 짓'이라 한탄하고 있어요.

[알래스카를 향한 베링의 모험]

덴마크 출신으로 러시아 해군에 소속되어 있던 베링은 1724년 33대의 마차에 짐을 싣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했어요.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시베리아 동쪽 끝이 다른 대륙과 붙어 있는지 떨어져 있는지를 두고 갖가지 추측을 하고 있었답니다. 이에 황제인 표트르 1세가 베링에게 시베리아 동쪽 끝을 탐험해 답을 찾아내라고 지시한 것이죠. 약 9900㎞의 대장정을 거쳐 시베리아 동쪽 끝에 도착한 베링은 시베리아가 다른 대륙과 이어져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뒤 1730년 수도로 돌아왔답니다.

3년 뒤 베링은 "바다 너머에 땅이 있는지 확인하라"는 안나 여제의 지시를 받고 다시 시베리아 동쪽으로 갔어요. 1741년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던 베링은 우연히 알래스카를 발견하였지만, 곧 식량 부족과 괴혈병으로 목숨을 잃었답니다. 훗날 태평양을 탐험한 영국 해군 장교 제임스 쿡은 베링의 모험 정신을 기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 해협의 이름을 '베링 해협'이라고 지었어요.

김승호 인천포스코고 역사 담당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