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다각형으로 뚝딱뚝딱… 네모난 캔버스의 화려한 변신

입력 : 2016.12.17 03:07

[캔버스]

16세기부터 유화에 널리 사용
미국 화가 스텔라, 여러 모양 제작… '캔버스는 네모'라는 편견 벗어나
홍순명, 옛 물건에 캔버스 천 붙여 추억 담은 '타임캡슐' 만들었어요

화가를 떠올리면 어떤 모습이 그려지나요? 아마 캔버스(canvas)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가장 많이 떠올릴 거예요. 캔버스는 그림을 그릴 때 쓰는 천으로, 주로 안료와 기름을 섞어 만든 물감으로 유화(油畵)를 그릴 때 사용한답니다.

작품1 - 코르넬리우스 노르베르투스 히스브레흐츠, 뒤집어진 캔버스, 1668~1672, 캔버스에 유채, 코펜하겐국립미술관 소장.
작품1 - 코르넬리우스 노르베르투스 히스브레흐츠, 뒤집어진 캔버스, 1668~1672, 캔버스에 유채, 코펜하겐국립미술관 소장.

캔버스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아요. 다만 16세기 초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이후 캔버스는 유화를 그리는 화가들에게 필수적인 미술도구가 되었어요. 캔버스가 흔하게 사용되기 전 화가들은 주로 나무판에 그림을 그렸는데, 나무 화폭은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힘들고 크게 만들기도 어려운 단점이 있었어요. 반면 캔버스는 나무틀에서 캔버스 천을 벗겨내 둘둘 말아 보관하면 어디든 갖고 다닐 수 있어요. 크게 만들기도 편해 큰 그림을 그리기에도 좋고요.

나아가 캔버스는 그 자체로 화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는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작품1을 보세요. 캔버스의 뒷면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은 화가가 그린 그림입니다. 이렇게 실물처럼 착각하도록 그린 작품을 '눈속임 그림'이라고 불러요. 많은 관객이 그림을 실제 캔버스의 뒷면이라고 착각해 "캔버스 앞면에는 뭐가 그려져 있지?"라며 그림을 뒤집어 보고 싶어 했어요.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인 이 그림을 그린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코르넬리스 노르베르투스 히스브레흐츠는 눈속임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렸어요. 히스브레흐츠는 일상 속 여러 대상을 마치 실물처럼 그릴 수 있는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기 위해 눈속임 그림을 즐겨 그렸답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이 없던 그 시절에는 현실에 있는 대상을 평평한 캔버스에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그리는 화가를 뛰어난 예술가로 존중했기 때문이죠.

작품2 - 루초 폰타나, 공간 개념 ‘기다림’, 1960, 캔버스, 테이트 모던 갤러리 소장.
작품2 - 루초 폰타나, 공간 개념 ‘기다림’, 1960, 캔버스, 테이트 모던 갤러리 소장.
20세기 이탈리아 화가 루초 폰타나는 캔버스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어요. 작품2는 캔버스를 그린 그림이 아니라 실제 캔버스예요. 캔버스 한가운데 찢긴 자국도 실제로 폰타나가 캔버스를 칼로 찢은 것이랍니다.

폰타나가 멀쩡한 캔버스를 찢어 망가뜨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캔버스는 그 자체로 평면입니다. 하지만 캔버스를 찢으면 평면 사이로 캔버스의 앞과 뒤가 열리게 되죠. 폰타나는 캔버스를 찢어 2차원의 캔버스로 3차원의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죠.

히스브레흐츠는 캔버스의 뒷면을 진짜처럼 보이게 그림을 그렸지만, 그것은 그림일 뿐 진짜 캔버스의 뒷면은 아니에요. 반면 폰타나는 실제 캔버스를 통해 '그림으로 그린 가짜'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을 보여줍니다.

사진1에 보이는 그림들은 미국 작가 프랭크 스텔라가 캔버스를 자유자재로 변형해 만든 작품들입니다. 스텔라는 '왜 캔버스는 꼭 사각형이어야만 하지? 여러 가지 모양의 캔버스를 사용하면 안 되는 걸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생각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해 다각형 모양의 변형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답니다.

사진1 - 바젤미술관 ‘Frank Stella Paintings & Drawings’ 전시 전경.
사진1 - 바젤미술관 ‘Frank Stella Paintings & Drawings’ 전시 전경. /바젤현대미술관, Julian Salinas

그림을 그리는 방식도 다른 화가들과 다른 점이 많았어요. 도구를 사용해 재단을 하듯 줄무늬를 반복하거나 대칭과 비대칭의 기하학적 도형들을 반복적으로 그렸지요. 미술의 관습과 전통에 도전한 스텔라의 변형 캔버스는 '캔버스는 사각형이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렸답니다.

작품3 - 홍순명, 서대문, 2014.
작품3 - 홍순명, 서대문, 2014.

한국 작가 홍순명은 캔버스를 정겨운 기억을 보관하는 타임캡슐로 활용했어요. 이상한 모양의 덩어리를 뚫고 나온 나뭇가지가 거꾸로 세워져 있는 작품3은 한눈에 보아도 참 특이해요. 이 안에는 작가가 서울 서대문 근처에서 직접 주워온 돌멩이, 깨진 화분, 고장 난 장난감 등 쓰레기가 가득 들어 있답니다.

작가는 어릴 적 이모와 외삼촌들이 살던 서대문 근처로 자주 놀러다녔다고 해요. 그래서 서대문 일대는 그에게 정겨운 추억과 동심이 남아 있는 곳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이 일대가 재개발될 거라는 소식이 들렸어요. 자신의 추억이 남은 곳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 홍순명은 재개발 현장으로 가 버려진 물건들을 차에 가득 실어 작업실로 가져왔답니다. 쓰레기처럼 버려진 물건들이 옛 기억과 동심, 정과 그리움을 상징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마음의 고향인 서대문을 의미하는 물건들을 영원히 보관한다는 의미로 서로 단단히 엮어 모양을 만든 뒤 투명 랩으로 일일이 감쌌어요. 그리고 그 위에 조각난 캔버스 천을 정성껏 붙여 작품으로 만들었답니다. 캔버스 천 표면에는 서대문 주변의 재개발 풍경을 그렸지요.

이 작품에 작가는 '기억의 풍경-서대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그림이자 조각이며 설치미술로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기억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줘요.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