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대공황 틈타 집권한 나치당, 최악의 전쟁을 일으키다

입력 : 2016.12.15 03:11

[유럽 극우 정당]

오스트리아 대선서 극우파 선전… 호퍼, 6.6%p 차로 아슬하게 패배
유럽 곳곳에서 극우 정당 인기몰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 배상금·대공황으로 심각한 경제난
분노한 시민들, 히틀러 뽑았어요

판데어벨렌, 노르베르트 호퍼
판데어벨렌, 노르베르트 호퍼
지난 4일(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 알렉산더 판데어벨렌이 53.3%의 표를 얻어 46.7%를 얻은 극우파 노르베르트 호퍼(오스트리아 자유당) 후보를 6.6%p 차이로 꺾고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었어요. 선거 결과에 대해 외국 언론들은 "극우파 후보가 당선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오스트리아 국민이 판데어벨렌을 지지했다"고 평가했답니다.

이번 선거는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어요. 만약 호퍼가 당선되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유럽에서 극우 성향의 국가 지도자가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죠. 호퍼가 속한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독일 나치당을 추종했던 오스트리아 인사들이 설립한 극우 정당입니다.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는 최근 줄곧 외면당했던 극우 정당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요. 오늘은 많은 사람이 극우 정당의 인기몰이를 걱정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베르사유 조약과 뮌헨 폭동

극우 정당은 극단적 우파 성향을 가진 정당입니다. 극단적 우파는 파시즘(fascism)이라고도 하는데, 이들은 "개인보다 국가와 민족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민족·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그래서 자유·평등·인권 같은 가치를 무시하고 국제 질서와 국제법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답니다. 또 자국의 민족·인종이 다른 민족·인종보다 우월하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민족·인종을 배척하거나 공격하는 성향을 띠고 있어요.

극우 정당이 역사의 무대에 주연으로 등장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예요.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1차 대전이 끝나자 전쟁을 마무리하는 베르사유 조약(1919년)이 체결됐어요. 이 조약으로 독일은 전쟁 범죄자로 규정되었고 보유하던 식민지를 모두 잃었어요. 무엇보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내야 했답니다.

그 결과 독일은 빵 한 쪽을 사려면 손수레가 가득 찰 정도의 지폐가 필요할 만큼 물가가 폭등하는 등 심각한 경제난에 빠졌어요. 그러자 독일 국민은 기성 정치인들과 베르사유 조약을 강요한 승전국들에 큰 불만을 품게 되었답니다. 특히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 너무 가혹한 책임을 물린다는 목소리가 커졌어요.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등장했어요. 이들은 1923년 11월 "위대한 독일 민족을 부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뮌헨 폭동'을 일으켰답니다. 시민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정부를 몰아낸 뒤 극우파 정권을 세우려 한 것이죠.

하지만 폭동은 곧 진압되었고 히틀러와 나치당 행동대는 감옥에 갇혔어요. 당시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와 나치당의 극단적인 주장에 공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1923년 11월 독일 뮌헨에서 폭동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사진 맨 오른쪽)와 나치당 행동대의 모습이에요.
1923년 11월 독일 뮌헨에서 폭동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사진 맨 오른쪽)와 나치당 행동대의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히틀러는 감옥에서 풀려난 뒤에도 극우적 주장을 계속했어요. "독일 내 공산주의자들과 유대인들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며 독일이 처한 위기를 그들 탓으로 돌렸어요. 나아가 공산주의자와 유대인을 독일에서 몰아내고 베르사유 조약에서 벗어나 독일 민족을 위한 강대국을 세우자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뮌헨 폭동 이후 슈트레제만 총리의 노력과 미국의 지원 덕분에 독일 경제는 안정을 되찾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히틀러의 말에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보였어요. 히틀러와 나치당원을 가리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답니다.

◇대공황과 나치당의 집권


그런데 1929년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독일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자 독일 국민은 절망과 분노에 빠져들었어요. 나아가 "1차 대전 패배와 계속된 위기는 공산주의자와 기성 정치인, 유대인들 탓"이라는 히틀러와 나치당 주장에 넘어가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군소 정당이던 나치당은 1930년 의회 선거에서 107석을 얻었고, 1932년 선거로 230석을 차지해 독일 내 최대 정당이 되었어요.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던 히틀러는 이렇게 합법적 선거에 따라 독일의 총리가 되었어요. 총리가 된 히틀러는 군부·자본가들과 손잡고 나치당에 반대하는 정당·정치인을 탄압한 뒤 일당 독재 체제를 갖추었답니다.

재벌과 군부의 지원 속에 경제 위기를 타개하는 데에도 성공했지만, 세계 정복을 꿈꾼 히틀러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인물로 기록되었어요. '독일 민족이 가장 우월하다'는 위험한 생각으로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 탓에 군인 2700만명과 민간인 2500여만명이 2차 대전 도중 목숨을 잃었답니다. 이 기간에 나치당은 '인종 청소'라는 명분으로 죄 없는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했어요.

최근 유럽에서 극우 정당들이 인기를 얻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불과 80여년 전 극우 정당인 나치당이 이런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기 때문이에요. 여러 전문가는 "난민 문제와 경제 불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극우 정당의 인기는 계속해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답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

1929년 10월 24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가가 갑자기 폭락하기 시작했어요. 약 2주 사이에 300억달러의 주식 가치가 허공으로 사라졌어요. 주가 폭락은 물가 폭락과 기업들의 줄도산을 불렀고, 미국 경제는 순식간에 심각한 위기에 처했어요.

미국의 경제 위기는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으로 옮겨갔고 전 세계가 심각한 경제난에 빠지게 되었어요. 그 결과 독일과 일본 등에서는 "제국을 건설해 경제 위기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한 극우파들이 정권을 잡게 되었답니다. 여러 역사학자는 "대공황이 극우파의 집권과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윤형덕 하늘고 역사 담당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