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12세 소년의 멜로디, 베토벤 마다한 괴테 사로잡다
[대문호 괴테와 음악 거장들]
슈베르트·베토벤이 존경한 괴테, 절제와 엄격함 갖춘 음악 선호
슈베르트가 보낸 가곡엔 '시큰둥', 베토벤의 음악은 과격하다고 느껴…
단정한 멘델스존 곡에 찬사 보냈죠
- ▲ 괴테, 멘델스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즐겨 듣는 명곡이 있어요. 바로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입니다. 사랑에 실패한 시인이 목적지도 없이 외로운 여행을 떠난다는 고독한 느낌의 가사와 슈베르트 특유의 아름답고 맑은 멜로디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곡이죠.
이 곡은 교사였던 시인 빌헬름 뮐러의 작품을 본 슈베르트가 강한 매력을 느껴 만든 곡이에요. 슈베르트의 또 다른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도 소박함이 느껴지는 뮐러의 시와 슈베르트의 감성적인 선율이 어우러진 작품이지요.
슈베르트의 친구들은 마음에 드는 시를 보면 곧장 곡을 쓰는 슈베르트를 보며 "너는 시를 고르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마음에 든 시를 보자마자 주옥같은 곡을 만들어낸 슈베르트의 천부적인 재능이 놀랍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시인 뮐러는 33세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서정시들은 슈베르트의 멜로디를 타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죠.
◇괴테를 만나고 싶어 했던 슈베르트
사실 슈베르트가 진심으로 존경하던 시인은 따로 있었어요. 바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입니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 우리에게 익숙한 걸작들을 남긴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인물이죠.
슈베르트의 초기 작품인 '마왕'과 '실 잣는 그레첸'은 물론 어린이들에게도 친숙한 '들장미'라는 곡의 가사가 모두 괴테의 시랍니다. 슈베르트가 괴테의 시로 지은 가곡이 70여 개나 되는 걸 보면 그가 괴테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짐작이 가지요?
괴테를 너무나 만나고 싶었던 슈베르트는 1816년 자신의 친구를 통해 자신이 쓴 가곡 44개를 괴테에게 전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아마도 괴테가 슈베르트의 곡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베토벤과 괴테의 '잘못된 만남'
슈베르트뿐 아니라 베토벤도 괴테를 존경했어요. 괴테와 교류하길 원했던 베토벤은 괴테를 위해 서곡(序曲·연극이나 연주회의 막을 열기 전이나 주요 부분을 시작하기 전 연주하는 노래) '에그몬트'를 작곡하기도 했지요.
1812년 여름, 베토벤과 괴테는 테플리츠라는 휴양도시에서 만나게 되었답니다. 휴양지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함께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베토벤이 괴테에게 직접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에게 아쉬움만 남긴 채 끝나고 말았답니다. 베토벤의 연주를 들은 괴테는 그의 음악이 너무 과격하고 지나치게 혁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반대로 베토벤은 귀족들에게 공손한 모습을 보이는 괴테를 보며 "과거의 당당한 기백을 잃었다"며 실망했다고 알려져 있지요.
괴테와 베토벤, 슈베르트는 각자가 추구하는 예술의 방향이 달랐던 것으로 보여요. 고대부터 당대의 음악은 물론 동양의 문화에도 아주 해박했던 괴테는 고전적인 엄격함과 절제와 규범을 갖춘 음악을 선호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베토벤과 슈베르트는 18세기 음악의 틀을 뛰어넘어 낭만주의를 예고하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고 있었지요.
◇괴테의 선택은 소년 멘델스존
슈베르트와 베토벤도 마다한 괴테가 좋아한 음악가는 바로 고전주의 낭만파 음악의 대가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입니다. 괴테는 열두 살에 불과했던 멘델스존이 작곡한 노래를 듣자마자 호감을 표했다고 해요.
- ▲ 독일의 대문호 괴테(오른쪽)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년 멘델스존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 판화예요. /Getty Images 이매진스
당시 멘델스존은 괴테와 아주 절친한 사이인 프리드리히 첼터에게서 음악을 배우고 있었어요. 70대 노인이었던 괴테는 친구가 가르치는 조숙한 천재 멘델스존의 곡을 듣고 "이 소년의 곡에는 훌륭한 절제가 살아 있다"는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마도 멘델스존이 보수적인 첼터의 영향을 받은 동시에 스스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이상으로 삼아 고전주의적인 단정함을 추구했기 때문에 괴테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여요.
괴테와 음악가들의 만남을 돌이켜보면 '위대한 예술가들이 좀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더 자주 만났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이들이 자주 만나 서로에게 영감을 주었다면 더 위대한 작품을 많이 남기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역사는 돌이킬 수 없기에 그들이 남긴 위대한 작품이 오늘날에도 많은 예술가에게 깊은 영감과 감동을 주고 있다는 사실로 위안해야 할 듯합니다.